스무 살 때 엄마는, 그리고 오늘
원풍노조 강제해체 30주년을 앞둔 2012년 2월 만해마을에 모인 원풍노조원들 아이들 속의 딸 혜인은 내가 노조를 알고 연대투쟁을 하다 감방에 갇힌 스무 살, 딱 그 나이였다. 나의 시간과 딸의 시간은 이어지는 걸까. 엄마와 나의 시간은? 반세기를 거슬러 사라지고 이어지는 시간을 돌아본다.(15쪽)
본문의 첫 장면, 원풍모방 노조조합원들의 자녀 모임. 저자의 딸을 포함한 청춘들은 공권력에 맞서 울부짖는 영상 속 스무 살 엄마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이를 지켜보는 저자는 ‘공순이’에서 불온한 해고자가 되어 걸어온 지난 5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본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경한 저자는 평생 책과 공부에 허기를 느낀다. 1978년 원풍모방 입사는 ‘서울대 입학’에 준하는 벅찬 출발이었다. 왕성한 독서와 노조 활동으로 의식은 확장되고 단단해진다. 여성노동자들에게 똥물을 끼얹은 ‘동일방직 사건’에 연대 시위한 이른바 ‘부활절 사건’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복직 후 활발한 노조 탈춤반 활동 등으로 1980년 계엄사에 의해 해고되는 과정과 더불어 YH노조 김경숙의 죽음, 신군부의 무자비한 노조 탄압, 82년 원풍노조 해산, 집단 해고 등 야만적인 시대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일터를 빼앗긴 후 삶의 여정은 당시 민주화운동의 좌절과 궤를 같이한다. 저자는 주저앉지 않고 80년대 여러 노동투쟁 현장 안팎에서 지원, 홍보하는 역할에 주력한다. 생계의 불안 속에서도 현실적 계산을 하지 않는 무모함은 대우조선 해고노동자와의 결혼 등 매 순간의 선택에서 엿볼 수 있다. 스스로 가장 이기적인 선택으로 꼽는 것은 50의 나이에 검정고사를 거쳐 대학 공부를 하게 된 것. 이는 오랜 창작의 열망이기도 한데, 작가의 길은 멀다고 토로하지만 단단한 글쓰기는 이미 공인된 바다.
마지막 장은 2019년 10월 ‘원풍모임’ 37주년을 맞아 원풍노조원 126명의 구술증언록 《풀은 밟혀도 다시 일어선다》의 출판기념회에 재개된 탈춤 공연이다. 저자를 비롯한 탈춤반 출신 아홉 60대 중노인들의 공연은 해프닝의 연속이지만 삼대의 어울림 속에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오늘로 불러내는 값진 시간이다.
“참 놀라운 역사입니다”
《김경숙》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엄마와 같은 58년생 개띠, 원풍모방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엄마, 김경숙이 죽기 하루 전날 농성장인 신민당사에 찾아가 같이 동참하다 기숙사 입소시간에 쫓겨 돌아왔고, 다음날 아침 소식을 듣고 털썩 주저앉았다는 엄마. 가난한 집안의 둘째딸로 태어난 죄로 중학교도 다니지 못한 엄마는 교복 입고 다니는 친구들을 피해 소를 몰고 먼 길을 돌아다녔고, 오십이 가까운 나이에 대학교 1학년생이 되어 내게 영어를 배우신다.(63~64쪽)
“참 놀라운 역사입니다”는 엄마에게 보내는 딸의 경탄어린 헌사다. 저자의 딸이 30여 년 지켜본 엄마의 삶은 굴곡도 고비도 많았지만 달라지지 않은 모습들이다. 어린 날 원하던 교복을 입어 보지 못하고 집안의 무게를 짊어져야 했던 엄마의 기억을 함께 아파한 만큼 이후 생존권을 박탈한 국가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과정, 수십 년간 포기하지 않은 엄마와 이모들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용기 있는 삶 덕분에 자신들이 좀 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도 공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7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도 주역으로 대접 받지 못한 이들은 ‘공순이’란 이름으로 차별과 멸시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이다. 강고한 유신독재체재를 무너뜨린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YH사건 등 역사의 한 장을 연 여성노동자들과 사건들은 이 책 곳곳에서도 만날 수 있다. 불구하고 여성노동자 중심의 70년대 노동운동(민주노조운동)은 저자도 아프게 토로하듯 한때 경제주의 조합주의로 80년대 운동과 단절되는 한계를 가진 운동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과 삶에 대한 자각, 인간다움이 있었기에 “가장 기본적인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부터 새로이 역사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문제제기 등이 일고 있다.
우리는, 아니 나는 전선의 한 귀퉁이에 있었고, 무엇을 논의하고 결정할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꿈은 소박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공순이 공돌이로 멸시당하지 않는 환경,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는 것, 8시간 정도 일하고 적금 부어 작은 집 한 칸이나마 마련하는 것, 불안하지 않은 노동환경이 미래로 이어지는 것, 그로써 인간다운 사회를 이루고 좋은 사회에서 ‘더불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그런 것이었다.(147쪽)
저자의 소박한 꿈은 이루어졌을까? “40년이 지나도 되찾지 못한 나의 ‘빼앗긴 일터’에 남편의 비정규직 인생이 얹힌다. 안착이 어려우니 숱하게 묶고 풀고 또 이삿짐을 꾸렸다”는 저자는 새로운 터전으로 바람의 땅 제주에 서게 된다.
자기서사, 생활글의 힘
부여잡은 손, 모아 지르던 외침, 그 많은 얼굴은 다 어디 있는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 씁쓸한 기억도 많지만 그리운 건 또 사람이다. 제주 길을 걸으며 지나온 시간의 나를 만난다. (305쪽)
인생 후반기 제주에서 조용한 일상 속에서 찾은 평온함의 이면에는 지난 시절에의 회한이 없지 않으나 기본적인 정서는 낙관적이다. 꽃이 피고 지듯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내가 걷는 이 길”을 누군가도 또 걷게 될 테니 말이다.
“내 몸의 촉수는 늘 노동, 그리고 기록에 닿아 있다”고 토로하는 저자는 제주의 역사를 공부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바 글을 매개로 하는 시간과 공간의 확장이 기대된다. 평생토록 지닌 책에 대한 애정과 글쓰기의 욕구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동력으로 작용해온 듯하다. 결코 평탄치 않은 길을 걸어온 자신의 이야기, 자기 역사를 담백하게 그려낼 수 있는 힘도 거기서 비롯된 게 아닌가.
서두에 실린 프롤로그격의 〈웅덩이〉는 옛 고향집 엄마의 부엌과 뒷간에 관한 삽화다. 늘 물이 고여 있던 부엌 웅덩이는 벗어나고픈 가난의 질곡인 동시에 근원적인 그리움의 상징일 수 있다. ‘글쓰기의 원천‘인 어린 날의 풍경에 담긴 저자의 따뜻한 시선은 잃어버린 것과 꿈꿔온 바를 공감하게 하며, 감성적 묘사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이후 지난한 어려운 시절의 얘기에 거부감 없이 빠져들게 하는 것도 문장의 힘이자 생활글의 구체성이 갖는 미덕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