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현대수필]로 등단한 이혜숙 수필가는 그 동안 수필집 『나는 팝콘이다』, 『아직도 들고 계세요?』, 『꽃을 솎는 저녁』을 발간했으며 지난 2018년에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되어 이번 산문집 『1990 독산동 세 여자들』을 출간하게 되었다.
1990년대 초반 서울의 변두리 구로구 독산동 골목 동네에서 없는 살림에 도움이 되기 위해 작은 팬시점 ‘비밀수첩’을 열고 아이를 키우며 열혈 젊은 엄마로 살았던 4년 동안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나를 비롯해 주인공 또래의 영희가 아들 정훈이를 데리고 문방구를 열기 위해 이사를 왔고, 화장품가게를 인수한 지수까지 세 여자를 중심으로 눈물콧물 짜내는 좌충우돌 스토리가 펼쳐진다.
작은 선물의 집이지만 살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늘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주인공을 이웃들이 먼저 챙겨주었다. 앞집 채소가게 부부는 첫날부터 살갑게 대해주었고 8개월이 막 지난 딸아이를 손녀처럼 돌봐주기도 했다. 여학교 앞 진영슈퍼의 열 살쯤 많은 아주머니도 주인공을 동생처럼 너그럽게 대해주었다. 수정목욕탕 주인아주머니도 목욕탕 카운터를 보느라 밖으로 자주 나오진 못해도 어쩌다 말을 나눠보면 배운 티도 났기에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얼마 지나서 채소가게 2층에 사는 다희 엄마를 알게 되었고, 문방구를 하던 노총각이 떠나고 부지런하고 명랑한 영희가 왔고 얼마 후 화장품가게를 연 까칠하고 직선적인 지수가 왔다. 성격이 상이한 두 여자와 즉흥적이고 기분파인 주인공까지 세 사람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서른 안팎의 여자 셋은 살아온 날도, 장사를 시작한 이유도 제각각인 데다 성격도 달랐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다는 공통점으로 뭉쳐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이혜숙 수필가는 독산동 이야기로 책까지 낼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다. 누추하고 초라하고 궁상맞은 이야기기에 글로 쓸 가치를 조금도 못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 정작 쓸 이야기는 쓰지 않고 다른 이야기만 쓰고 있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고 한다.
이혜숙 수필가는 「작가의 말」에서 “첫 원고를 쓸 때 한글 문서를 4개 열어놓고 선물의 집, 주인집 여자, 영희, 지수 이야길 썼다. 며칠 지나지 않아 문서는 8개로 늘어났다. 기억이 가지를 치기 시작하니 여기 쓰다 저기 쓰다 하기에 바빴다. 시작은 쉬웠는데 마칠 때까진 2년이 걸렸다. 어떤 이야기는 마음 아팠고, 미안했고(그래서 가명을 썼다), 내 얘기는 부끄러웠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고백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진짜 사람 사는 이야기에 빠졌다. 평범한 이웃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무대는 하나인데 거기 오른 주인공은 서른, 마흔 명이었다. 누군들 자기 인생에서 조연일 수 있을까. 무대에 오른 우리들이 빛나자 내 청춘의 한때도 비로소 반짝이기 시작했다”고 그 시절을 회상했다.
이혜숙 수필가는 『1990 독산동 세 여자들』을 쓰는 동안 그 골목에서 그들을 빼놓고는 어떤 추억도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추억은 자신 혼자가 아닌 셋이서, 또 거기에 다른 이웃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독산동 골목 동네에는 사람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숨길 것도 보탤 것도 꾸밀 것도 없는 사람 사는 이야기, 웃프고도 짠내나는 우리가 함께했던 이야기들 말이다.
손광성 수필가는 “진실한 자기성찰의 자세, 진솔한 언어구사의 능력, 그리고 각기 다른 이야기면서 동시에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 수필의 이 같은 새로운 문법의 시도에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며 이혜숙 수필가의 산문집 『1990 독산동 세 여자들』에 의미를 부여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