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우리 사회는 사이코패시라는 병리적 성향을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으로 비춰주고 있다. 이것을 소위 사이코패스적 영민함이라 이야기하며 대범함, 냉철함, 무정함, 불안감에서 벗어난 특성들을 부러워하며 장려하는 듯한 분위기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지배성을 갖고 권력과 힘을 얻으려고 기꺼이 인생을 바치려 한다. 그 도구적 힘에 진정 삶의 의미가 있음을 출생 때부터 가르치며 무조건 최면을 걸고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이분법적 사고로 직장에서, 학교에서, 정치판에서 생존해 갈 것인지 세뇌하는 듯하다. 사이코패시가 강한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목소리를 내며 직간접적인 가학성을 약한 자에게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사회에서 사이코패시가 갖는 부정부패, 불안, 혼란, 거짓, 이중성, 속임, 갑질이 우리 사회를 수놓는 핵심적인 가치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무조건 사랑과 관심이 끼어들 수 없는 이곳, 어쩌면 영화보다 케빈이 사이코패스로 더 잘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곳일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그 차이를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자란 또 다른 케빈은 사회에 숨어들어 살인은 하지는 않겠지만, 일상에서 이웃에 살며 영혼의 살인을 주저 없이 저지를 것이다. 아무런 가책과 아무런 후회와 일말의 괴로움도 없이 영혼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희열을 느끼고 그 가학적 과정을 사랑할 것이다.
그들을 치유해야 한다.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다. 사이코패스를 치유할 수 없다는 학자도 있으나 가정폭력과 학대에 내몰린 우리의 안타까운 아이들에게, 버려진 우리의 조그만 보석에 따뜻한 시선이 머물기를 바란다. 설령, 악의 씨앗을 타고난 아이들에게 따뜻한 말과 손길을 건넸으면 한다. 왜냐면 이럴 때야만 그들이 성장해서 그 따뜻함과 사랑을 우리가 한 대로 우리 사회에 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연구자들과 나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