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서[習] 깨달아[學] 영혼을 살찌우듯이
성인의 말씀을 먹듯이 하라는 음식지도(飮食之道)의 근본을 만나다!
조선왕실 연향에서 차려졌던 상을 기반으로 하여
꾸밈[美]과 질서[禮]로 엮어낸 미학적인 상차림.
조선왕실의 문화 규범인 의궤를 고증하여
명징하게 구현한 조선왕실 접대상차림!
조선왕실 의궤에 기초한 접대상차림의 원형
이 책은 조선왕실의 의궤를 바탕으로 한 왕실 상차림의 규범을 기반으로 그 원형을 구현했다. 조선왕실의 연향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 『가례도감의궤』, 『풍정도감의궤』, 『진찬의궤』, 『진연의궤』, 『영접도감의궤』 등의 문헌을 기반으로 한 상차림의 원형을 구현한 것이다. 예를 갖춰 손님을 접대하는 상차림에 대하여 단지 음식을 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접대 상차림에 담긴 문화적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한식의 아름다움과 고품격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 책에서는 손님 접대상 중 음식을 차리는 상뿐 아니라 시접(숫가락과 젓가락), 찬품단자(메뉴판), 휘건(앞치마) 등을 올리는 시접상과 술상, 찻상 등을 함께 구성하였다.
상차림 구성으로는 2개의 형식을 구현하였다. 조선왕실의 잔치에도 규모가 큰 진연과 조촐하게 치러진 진찬이 있었으며, 다른 나라의 사신을 맞이하는 상차림에서도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올리는 상차림과 아랫사람에게 차려지는 상차림이 달랐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은 같으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상차림이 다를 수 있어 2개의 형식을 구현한 것이다.
각개 상에 올라가는 찬품의 종류와 수는 초미는 처음 대접하는 상이기 때문에 가짓수도 많고 손님의 장수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국수류를 올렸다. 다음 상의 찬품의 수는 초미보다 적으며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로 갈수록 찬품의 양은 줄어든다. 탕, 적, 편 등의 무거운 음식과 떡, 과자 등 후식류의 가벼운 음식을 조화롭게 구성하였다.
아름다운 상차림의 의미
우리 밥상차림의 뿌리는 음양사상에서 출발하였다. 현재 우리의 밥상차림과 유사한 차림 형태가 약 3000년 전 주공(周公)이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의례(儀禮)』에서 보인다. 밥, 국, 갱, 초장, 수육, 야채소금절임과 육젓, 술의 7종류로 구성된 정찬(正饌, 상을 차릴 때 반드시 차려야 하는 음식) 차림은 현재 밥과 국을 기본으로 한 우리의 밥상차림과 아주 유사하다.
『의례』는 음식에 있어서도 음과 양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겨 양성(陽性)의 음식은 음성 (陰性)의 그릇에 담고, 음성의 음식은 양성의 그릇에 담았다. 상차림에서 밥과 국이 한 조가 되는 것은 밥은 음에 속하고 국은 양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음양사상[주역(周易)]을 기본으로 한 유학에서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배워서[習] 깨달아[學] 내 영혼을 살찌우듯이, 음식을 먹는 것도 성인의 말씀을 먹듯이 해야 한다. 이것이 군자의 음식지도이다.
음식을 만들고 섭취하는 생활에서도 곧고 반듯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음식을 만들 때에는 그 재료 하나하나를 반듯하게 썰고 정갈하게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야 하며, 이렇게 만든 것으로 꾸밈[美]과 질서[禮]가 있도록 차린다. 이것을 먹는 사람은 성인의 말씀을 먹듯이 겸손하고 또 공경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음식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차리는 것, 먹는 것에 이르기까지 성인의 말씀을 대하듯 하는 것이 음식지도이다.
꾸밈[美]은 형이상학적 영역이고, 질서[禮]는 형이하학적 영역이다. 접대음식에 아름다움[美]을 담는다는 것은, 보이는 아름다움 뿐 아니라 미의식(美意識)을 드러내어, 그 음식을 잡수
시는 분의 영혼을 맑게 해 드린다는 의미가 있다. 원래 한식은 정갈하고 반듯하게 재료를 다루고, 그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마음가짐이 있으며 질서[禮]를 갖추면서도 음양의 이론에 맞게 상을 차린다. 또 상 위에 올려진 음식 하나하나가 식치관(食治觀,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기)을 구현한다는 점에서 음식이 추구하는 가치 즉 미의식(美意識)이 아주 짙게 배어 있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품위 있는 음식이다.
유교의 철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왕실의 아름다운 미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접대음식 문화를, 현재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 품격 있는 한식문화로 적용시켜, 한식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이 책을 내는 목적이다. 이 책을 통해 한식에 스며 있는 근원적인 아름다움(味와 美)이 우리 음식 문화로 계승, 발전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차림 구성
조선왕실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연향(燕享)에서는 왕과 신하가 음식과 술을 나누는데 연(燕)은 왕이 신하에게 내리는 행주를 통하여 자혜를 드러내 보이고, 향(享)은 신하가 왕에게 올리는 헌수주를 통해서 공검을 보이는 것이다.
행주가 행해질 때마다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술과 안주가 차려지고 노래와 춤이 동원된다. 즉 연례란 왕이 신하를 손님으로서 접대하는 예이다. 주인(왕)이 겸손한 덕으로 도리를 다하여 손님(신하)을 위해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다. 이때 차려지는 술안주상인 미수는 손님을 접대하는 지극한 정성으로 차린 상차림이다.
조선왕실의 연향에서 임금이 신하에게 술과 음식을 내려주는 행주는 상황에 따라 5번 또는 7번 또는 9번이 행해지는데 이는 『의례』에 나타난 음식의례를 따른 것이다. 다섯 번의 행주가 이루어질 경우 술안주상은 5미수가 차려진다. 첫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초미(初味), 두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이미(二味), 세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삼미(三味), 네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사미(四味), 다섯 번째 행주에서 차려지는 술안주를 오미(五味)라 했다. 일미를 올리고 다시 새로운 이미를 올리며 또다시 새로운 삼미를 올렸다.
행주에 따라 술안주를 바꾸어 올리는 것이다. 이것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상차림의 전범이 되었다.
이 책에서는 조선왕실에서 행주례 때 차려졌던 오미수를 기본으로 하고 이외에 손님이 음식을 드시기 전에 수저와 찬품단자(음식명을 적은 종이), 휘건(음식을 먹을 때 사용하는 앞치마) 등이 올라 있는 시접상과 술잔과 술병이 올라간 수배상, 차와 다식이 차려진 다과상으로 상차림을 구성하였다.
또 상차림을 두 가지 형식으로 구현하였다.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는 정성은 다르지 않으나 그 형식은 형편의 고하와 그때그때의 상황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찬품에 대하여
상 위에 올라가는 각 찬품에 대한 역사와 문화적 의미를 해설하였다. 찬품의 재료와 분량은 원전의 것을 기록하였으며 원전 이미지도 함께 실어 고증하였다. 현대화한 분량은 5인분을 기준으로 하였다. 원전의 분량이 많은 것은 음식을 만들어 손님만 대접한 것이 아니라 함께 따라온 사람들도 대접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여 이 책에서는 소량화하였다. 이어서 찬품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특히 조선왕실에서 만들어 먹었던 그 재료에 충실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분량, 만드는 방법을 설정하였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양념의 획일화, 많은 양념의 사용 등으로 재료가 가진 자연의 맛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