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한국수필] 전신인 [수필문예]에 「얼굴」이라는 글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때 내 나이는 겨우 서른한 살이었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나는 글을 써 왔다. 번역물을 비롯하여 문예적인 글(콩트)도 썼고 비문예적인 글(신문 기사)도 썼다. 그러다가 수필 전문지에 글을 내면서부터 내 글에 ‘수필’이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등용문을 거치지 않은 ‘무면허’ 수필가였다. 주위의 권유에 의해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정식 수필가가 되었지만, 문인협회에 가입한다든가 문단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문인’이라고 자처할 만큼 자신도 없었을 뿐 아니라 작가는 글로써만 말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 우송 김태길 회장님의 추천으로 수필문우회에 가입하면서부터 수필계에 정식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때 수필문우회에는 거목 같은 분들이 많이 계셨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분들의 굄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로부터 20여 년 동안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수필은 물론 평론도 쓰게 되어 1998년에는 『한국수필평론』이라는 묵직한 책까지 내었다.
거목 같은 분들의 굄을 받던 40∼50대는 내게는 전성기와도 같았다. 그러나 세월은 어쩔 수 없어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조사(弔詞)와 함께 떠나보내 드리면서 나도 황혼기에 접어들었다.
이 수필집은 내 수필보다 그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가를 되새기고 싶어 엮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한 개인을 위한 글들이지만 혼자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다른 수필인들도 선생들의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여기에 곁들인 내 몇 편의 수필들은 어느 단행본에도 들어 있지 않은 신작들이다.
이제 나는 황혼기도 아닌 노년기에 접어들었다. 어찌 보면 이 책은 내 수필 인생의 총 정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총 정리라는 말보다 중간 정리라는 말을 쓰고 싶다. 미완성인 책이 아직도 몇 권 더 있으니….
돌아보니, 미욱한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귀한 인연들 덕분이다. 그 고마운 인연들은 그리움이 되어 때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자전적인 성격의 글들을 기꺼이 책으로 엮어 주신 범우사 윤형두 회장님, 젊은 시절을 함께한 그분과의 인연도 참으로 깊다.
2020년 3월 26일
산영재(山影齋) 이정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