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 테이블 건너편에 앉은 내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나지막이 털어놓는다. 상담자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그동안 내담자가 조심스럽게 보호해 온 마음 상처의 딱지를 부드럽지만, 주저 없이 떼어버린다. 뜻밖의 공격에 왈칵하고만 내담자는 눈물과 콧물을 훔치기 시작한다. 이때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다정다감한 표정을 유지하며 되도록 천천히, 여유 있게 내담자에게 화장지 상자를 건네며 비로소 상담자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던 초보 상담자 시절이 있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직장 생활은 늘 결과물을 원했고 추상적인 숫자와 통계로 평가받았다. 그런 무정서의 디지털 생활이 싫어 사람을 살리겠다고 인생의 전향을 감행했다. 하지만 심리상담도 기대와는 달리 마찬가지로 질보다는 양, 그리고 5점 척도의 만족도 점수를 요구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마무리한 상담도 5점 혹은 1점이었고, 완전히 망한 사례일지라도 이따금 자애로운 내담자 덕에 같은 5점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담자 100명이 흘린 진정한 치유의 눈물방울을 유리병에 가득 채우면 위대한 상담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는 환상 속 목표를 설정했을지도….
이제 시작한 글쓰기는 내게 또 어떤 숫자를 요구할지 두렵다.
내담자 100명의 눈물 속에 탄생하는 상담자 신화를 별 뚜렷한 계기도 없이 벗어나자 내담자 각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선한 주인이라는 믿음이 상담의 원동력을 대신했다. 이 깨달음 또한 전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닌 줄 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도통 답이 보이지 않는 상담에서 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혹시 나를 마지막이라고 다짐하고 찾아온 이에게 지지부진한 상담의 책임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 믿음이 있어 내담자를, 그리고 사람들을 조금 더 지켜보고 기다리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그 조금이 조금 어렵다는 건 사실이다. 덕분에 굳이 각 잡고 마주 앉아 서로를 탐색하는 데 온 힘을 쏟지 않고도 시간을 갖고 소통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누고 싶어 책을 쓰기로 했다.
한국인들에게 더는 이국적이거나 특별하다고 할 수 없는 몽골의 푸른 초원.
보통의 아버지와 아들들.
그리고 말(馬), 별(星), 불(火).
이쯤 되면 저절로 힐링 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다.
생소한 경험과 육체적 피곤함, 느릿한 시간, 실재적 위험.
이곳에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성장한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상담이 되고 상담은 따뜻한 위로가 된다.
말에 대해서, 별들에 대해서, 생명에 대해서, 기억에 대해서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 이 모든 것, 그리고 상담이 이야기가 되었고 소설이 되었다.
이 글이 거친 광야를 함께 달려 준 친구들과 아들들에게 좋은 기록이 되길 염원한다.
바이러스에 계절을 뺏긴 다시 그 봄에
안승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