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이름의 은밀한 지배자
도망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어두운 부모의 그림자
공격적인 부모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다면,
그리고 자신이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면 꼭 읽어야 할 책!
공격적인 부모와 고통 받는 자식들의 이야기
#1.
엄마는 꼼꼼한 성격의 완벽주의자로 항상 집안을 반짝반짝하게 청소해놓으셨어요. “저런 냉동식품이랑 즉석요리 같은 걸 식탁에 올리다니 아이들이 불쌍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하루 세 끼 식사는 물론, 간식과 도시락도 전부 직접 만든 음식으로 채우셨죠. 엄마가 손뜨개질한 스웨터와 직접 만든 여름옷도 자주 입었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집을 어지르거나 옷을 더럽히면 갑자기 안색이 바뀌면서 “깨끗하게 치워. 엄마 말 안 들으면 고아원에 보내버릴 거야”, “옷 좀 더럽히지 마. 말 안 들으면 다시는 옷 같은 건 안 사줄 거야”라고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정말 무서웠습니다.
보통은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지만 저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바로 돌아오라는 강요를 받았습니다. 친구와 함께 잠깐 쇼핑센터를 구경만 해도, 음료 한 잔을 마시고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야단을 맞았어요. 게다가 “네가 그런 짓을 하면 엄마가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 엄마한텐 네가 세상 전부야”라며 울었습니다. (중략)
하나부터 열까지 이런 식으로 저를 엄마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했지만 저는 거역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조금이라도 말대답을 하면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 왜 그걸 몰라주니? 엄만 네가 조금이라도 잘못될까봐 걱정이 돼서 견딜 수가 없어”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눈물을 글썽였기 때문이에요.
엄마의 ‘네가 전부’라는 말을 들으면 뭐라 대꾸할 수가 없어 마지못해 따랐지만 숨이 막힐 것만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분전환을 위해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게 되었고 지금은 멈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2.
저에겐 두 살 위인 형이 있습니다. 형은 우수한 사람이라 명문 사립고와 명문 대학에 진학했고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형이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부모님은 온 친척들에게 전화해서 자랑을 하셨죠.
한편 저는 늘 형과 비교를 당하면서 부모님께 ‘변변치 못한 놈’이란 소리를 들었습니다. 형과는 달리 저는 지역의 공립 중고교로 진학했고, 대학도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의 공립대학을 다녔습니다. 형에게 상당한 교육비가 들어갔기 때문에 경제적 여력이 없었으리라는 것은 알지만, 너무 차별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을 졸업한 후 그리 크지 않은 지역 회사에 취직했고 결혼해서 본가를 나왔습니다. 아이도 두 명 있습니다. 사정이 바뀐 것은 최근입니다. 형은 박사학위를 취득했지만 대학교에서 정교수 자리를 찾지 못해서 계속 비상근직 강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수입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생활비를 보태줬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마흔 가까이 되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정년퇴직하시면서 연금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계속 보내는 것이 힘들어졌나 봅니다. 게다가 형도 대학에서 갑자기 계약해지를 통보받아 강사직마저 잃게 되어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형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어머니가 급하게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내가 외출했을 때를 노려서 집까지 오셔서는 “의지할 데가 너밖에 없다”면서 말을 꺼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하고 연금을 받아 살려니 힘들구나. 좀 도와줄 수 없겠니”라며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부모님에게 드린 돈은 아마 형의 생활비로 보내지겠지요. 힘들게 모은 돈을 그런데다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둘이라 교육비로 들어가는 돈 때문에 그럴 여유도 없고요.
어릴 때부터 형하고 차별을 당하고 ‘변변찮은 놈’이란 말을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을 하다니 정말 얼굴이 두꺼운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도 여유가 없어서 무리에요. 죄송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놈, 부모가 힘들다는데 도와주지 못한다니 역시 너는 변변찮은 놈이야”라고 욕을 퍼붓고 돌아갔습니다.
#3.
저희 어머니는 뭔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바로 짜증을 내면서 저에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작은 일로 다른 사람처럼 변해서 화를 냈기 때문에 저는 늘 무서워서 흠칫흠칫 엄마의 안색만 살피면서 살았어요.
예를 들어 제가 엄마 말을 듣지 않으면 “짜증나니까 나가버려”라고 히스테릭하게 말하고는 교과서와 책가방을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렸습니다. 조금이라도 말대꾸를 하면 “어디서 어린 것이 부모한테 기어올라?”, “너 같은 건 없어지는 게 속 편해”라고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반항 한 번 못했어요.
또 엄마는 교육에 열성이었는데, 어릴 때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뉴스 정도가 전부였어요. 가요프로나 개그프로를 보고 있으면 “이런 쓸데없는 걸 왜 보고 있니”라면서 바로 꺼버리셨어요. 학교 성적이 나쁘면 심하게 야단을 맞았고요. 중학교 때 성적이 떨어졌는데 엄마가 던진 두꺼운 참고서에 이마를 맞아 피가 난 적도 있습니다.
그 뒤 20년 넘게 지났고 저도 엄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일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음식점을 차렸는데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빚을 지게 되어 이혼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러 본가에 갔더니 “그러니까 너는 안된다는 거야. 남편이 빚을 져서 이혼하다니 참 꼴좋다, 좋아. 우리 친척 중에 이혼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니? 남자 보는 눈이 그렇게 없으니까 이 꼴로 사는 거야. 빚쟁이들이 우리 집까지 찾아오게 하지는 말아라”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 이후 본가에는 다시 가지 않았고 지금은 거의 의절한 상태입니다. 헤어진 남편에게 위자료도 양육비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일하고 있습니다. 본가로 돌아가서 육아 도움을 받으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들을지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건 절대 싫어요.
지금은 어머니의 고함소리를 듣지 않고 살 수 있지만 이젠 제가 두 아들에게 거의 매일 소리를 질러요. 어질러놓고 정리를 안 했거나 제 말을 안 들을 때 등,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제 고함소리를 듣고 ‘아, 나도 엄마와 똑같네’라는 생각이 들어서 무서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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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례들은 부모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겪고 저자의 상담실을 찾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때로는 서운하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 나기도 하지만, 낳고 길러준 부모를 드러내놓고 미워하고 관계를 끊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들어 부모의 학대로 자식이 사망하는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밥을 굶기고 감금하고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등 끔찍한 학대로 어린 아이들이 사망하는 사건을 보면 누구나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누가 봐도 학대라고 인정할 만한 경우와 달리, 당하는 자식 외에는 느끼지 못할 은밀한 심리적 학대가 많은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자식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부모, 자식의 마음보다 체면이나 겉치레를 우선시하는 부모, 자식의 영역을 거리낌 없이 침범하고 헝제자매를 차별하며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부모, 자식에게 심한 욕을 퍼붓고 화풀이를 해대며 필요한 것들을 제대로 제공해주지 않는 부모 등, 그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어떻게 자식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지 놀라는 사람도 많겠지만, 자식을 공격하는 부모는 언제, 어디에나 있으며 최근 들어 그 방식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고 공격하는 관계는 타인과의 관계와 비교했을 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우선, 부모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는 일단 불가능하고, 또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해도 생활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로 내몰리는 일도 있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고 공격하는 관계가 해결하기 복잡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애정’이다. 부모가 자식을 지배하려는 것이 진정한 애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부모 쪽은 애정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자식도 부모가 혈연관계를 들먹이며 키워준 은혜와 애정을 강조하면 그 심리적 속박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정신과의사인 가타다 다마미는 『자식을 미치게 만드는 부모들』에서 자식을 공격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부모들의 사례와 그 심리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은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다.
자식을 공격하는 부모란 어떤 부모인가
자식에게 간섭하고 빈틈없이 지시하며 자기 뜻대로 자식을 컨트롤 하지 못하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지배적인 부모, 규칙을 만들고 강제적으로 따르게 하며 엄격하게 훈육하는 부모, 자식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함부로 침범하는 부모, 자식의 마음보다 체면이나 겉치레가 우선인 부모, 아직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식을 돈으로 조종하려는 부모, 감정대로 폭언을 남발하거나 꼭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주지 않는 부모, 형제자매를 차별하고 심지어는 ‘애착 아이’를 위해 ‘착취 아이’를 이용하는 부모까지, 부모가 자식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다양한 경우를 실제 사례와 함께 만나본다.
왜 부모가 자식을 공격하는 것인가
부모가 자식을 공격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소유의식과 지배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내가 낳았으니 자식은 나의 소유물이며, 나는 자식을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그 출발점이다. 거기에 더해, 자식을 키우느라 투자한 돈과 시간과 수고를 돌려받고 싶은 심리, 상처받은 자기애와 패배감을 안고 있는 부모가 자식을 통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는 시도, 본인이 어릴 때 받은 학대를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심리적 악순환, 부모의 행동으로 자식이 얼마나 상처받고 고통 받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결여 등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공격적인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
부모의 공격에서 도망가지 못하는 자식들은 심리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부모에게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다보니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하고, 조금이라도 사랑받고 싶어 애쓰다보니 과도한 헌신을 하게 되며, 불필요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가슴에 쌓인 분노가 다른 곳으로 분출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심할 경우 남을 괴롭히거나 자해와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결국 부모와 자식 간의 문제를 넘어 가정 내 폭력과 사회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사례를 통해 들여다본다.
자식을 공격하는 부모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우선 공격적인 부모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부터 인식해야 한다. 공격적인 부모가 언젠가 자식의 아픔을 이해해주는 일은 거의 있을 수 없으며 사과 같은 것은 바랄 여지도 없다. 정말 나쁜 것은 자식이 아니라 부모라는 걸 인식하고, 부모에게 분노나 증오심이 생기더라고 억지로 참고 용서하려는 노력을 멈추어야 한다. 부모니까 용서하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그리고 부모를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자식을 죽이는 부모
2019년 6월, 도쿄 네리마구에서 농림성 차관을 지낸 칠십 대 아버지가 무직으로 오랜 기간 은둔형외톨이 생활을 하던 사십 대 장남을 살해한 사건을 다루면서 이 사건의 밑바탕에 숨겨진 문제를 분석한다. 갈수록 늘어가는 은둔형외톨이의 장기화와 고령화, 가정 내 폭력,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자식의 분노를 들여다본다. 한편, 자식을 죽이고 부모도 함께 목숨을 끊는 동반자살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가정이라는 밀실에서 부모와 자식 간에 쌓인 오랜 갈등과 상처가 결국엔 어떤 결말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하고, 그러한 문제를 가정 내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회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