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놓지 않았던 야나세 다카시가 전하는 희망 메시지
야나세 다카시는 서른넷에 만화가로 독립했지만, 만화 일이 잘 들어오지 않아 대표작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삽화를 그리고 라디오 각본을 쓰기도 하고, 틈틈이 적어둔 시를 묶어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렇게 때로는 만화가의 일로, 때로는 만화가가 아닌 일로 생활을 이어가다 쉰 살에 처음 호빵맨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고, 몇 년 후 그림책 『호빵맨』을 출간했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떼어내 먹이는 호빵맨은 처음에는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서서히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호빵맨』은 항상 ‘대출 중’이었고, 새 책은 금방 너덜너덜해졌다. 특히 서너 살 정도의 어린아이는 『호빵맨』의 가장 열렬한 독자층이었다. 호빵맨의 인기는 들불 번지듯 퍼져나갔고 그가 일흔 줄에 들어설 무렵, 호빵맨은 드디어 TV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야나세 다카시는 자칭 ‘소기만성형’ 만화가다. 전 세계적으로도 최상위권의 매출액을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호빵맨] 원작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에는 그가 ‘소기만성형’ 만화가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아주 솔직한 심정으로 담겨 있다. 그는 오직 한 우물만 판 것도 아니고, 이른 나이에 실력을 인정받아 빛을 본 천재는 더더욱 아니다. 누군가는 아주 정확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그 분야의 일인자가 되기도 하지만, 야나세는 조금 느슨하고 무던한 성격 덕분에 국민 만화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꾸준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나처럼 그다지 재능이 없는 사람은 천천히 달리면 됩니다.”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는 삶의 중요성
야나세 다카시는 어렸을 때 공부와 운동까지 잘했던 남동생 지히로에게, 그리고 만화가가 된 후 대표작을 턱턱 내놓는 선후배들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전쟁을 경험하며 굶주림이 주는 비참함을 경험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열등감을 느낀 후에 ‘열등감은 쓸데없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지독했던 굶주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머리를 떼어내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이는 호빵맨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기나긴 인생길에서 한두 번쯤은 지옥을 통과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행복한 인생의 종반을 보낸 그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야나세는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 마라톤 같은 인생을 느긋하게 달렸다. 묘하게 낙천적이고 느긋한 심성은 그를 어떻게든 위기에서 벗어나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잘 팔리는 만화가가 되고 싶고, 이름을 날리고 싶고, 이성에게 관심도 받고 싶은’ 욕망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는 더없이 솔직하다. 마흔이라는 나이뿐 아니라 쉰, 예순의 나이에도 인생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이 책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살아가는 삶과 자신의 속도대로 인생을 천천히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어떤 일이라도 적당한 때는 없고, 그 ‘때’라는 것은 각자가 찾아야 한다. 그것을 찾는 순간 일상 속에 살며시 숨어 있는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