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비리의 아파트에서 화합과 상식의 아파트로
우리나라 아파트의 연간 관리비 총액은 무려 15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엄청난 돈의 용처를 아파트의 동대표들이 정한다. 게다가 제대로 된 감사가 이루어지기 쉽지 않은 구조(감사 대상이 감사인을 선정하는)라서 아파트 관리비를 소위 ‘눈먼 돈’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또 각종 공사에서 뒷돈 챙길 욕심이 있는 사람들, 하다못해 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회장님’ 또는 ‘대표님’이란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 정기회의 때 지급되는 회의비나 임원수당을 챙기고 싶은 사람들이 입주자대표회의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로 인해 상식적인 사람들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참여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각자 생활에 바쁘기도 하지만 괜히 관심을 가졌다가 낭패를 보기 십상이라 생각하고 차라리 관리비 1만 원 더 내자는 마음으로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들이 다수다.
그러나 아파트는 작은 나라다. 입주민들이 대표를 선출하고, 대표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비를 얼마를 거둘지, 공유부분의 수선을 어떻게 할지, 장터 운영자를 어떤 방식으로 선정하고 운영할지, 재활용품 판매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어디에 얼마만큼 쓸지를 결정한다. 아파트 운영에는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입주자대표회의는 왜 그렇게 시끄러울까? 왜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문제로 사람이 죽는 일까지 발생하는 것일까? 아파트는 왜 ‘민주주의’의 ‘민’ 자도 꺼내기 어려운 몰상식의 경연장이 되었을까? 그 근본 원인은 입주민들이 아파트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입주민들의 감시와 참여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민들의 ‘무관심’을 흔들어 깨워 ‘관심’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을까? 교육을 통해 잠자는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아파트 일에 동참하도록 이끄는 의식개혁 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제도개혁이 본질적 수단이고, 의식개혁의 최종 목표는 제도개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제도개혁이란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투기가 노리는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허세와 탐욕에 가득 찬 동대표들이 저지른 비리를 규명?규탄하고 입주민들의 정의감과 상식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노리는 뒷돈 챙기기와 막강한 권력 휘두르기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