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 팝’이 아니라 ‘브릿팝’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에게 ‘브릿 팝’인가? ‘브릿팝’인가 물었던 일이 있다. 어떤 이름을 지칭하는 명사를 우리는 ‘고유명사’라고 하는데 ‘브릿팝’이라고 붙여 적음으로써 기존의 ‘고유명사’가 ‘보통명사’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릿 팝’이라고 띄어 쓸 때 우리는 이 음악을 ‘영국 팝음악’으로 이해하겠지만 ‘브릿팝’이라고 붙여 쓰는 순간 그것은 대체 불가능의 전혀 새로운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뉴욕과 다른 영국의 느낌이 이 단어에는 당연히 가득 차 있다. 보통의 음악 장르가 그런 것처럼 ‘브릿팝’ 역시 그 경계가 모호하다. 하지만 멜로디가 살아있으면서 세련되게 편곡한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브릿팝’스럽다고 한다. ‘브릿팝’의 매력은 한마디로 그런 것이다.
브릿팝, 미국 중심의 음악 산업에 반기를 들다.
팝음악 장르에 영국(브리티시)을 굳이 집어넣은 이유는 미국의 음악과 다른 음악 장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유는 8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이 음악 산업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애초 로큰롤의 탄생은 미국이었지만, 60년대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래 영국 음악은 레드 제플린을 필두로하는 슈퍼 록그룹의 전성기를 지나 섹스 피스톨즈의 펑크 사운드까지 세계 음악 시장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80년대에 접어들면서 MTV의 등장과 함께 음악 시장은 완전히 미국의 것이 된다. 90년 대 너바나 이후 록음악 마저도 완전히 미국 음악이 중심으로 성장한다. 뮤지션의 성공 여부는 결국 미국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느냐가 된다. 대중음악의 강국이라 자처했던 영국의 입장에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브릿팝은 그러한 수세에 놓인 영국 음악의 반격이었다.
브릿팝이 모든 것을 담다.
음악 장르로 브릿팝은 90년대 이후 영국 기타 중심의 대중음악을 말하지만 여러 제한을 걸어 편협한 음악 장르로 구분하기도 한다. 가령 라디오 헤드는 자신들이 ‘브릿팝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고 함으로써 브릿팝의 울타리 안에 소속되지 않음을 강변한다. 밴드 자신이 스스로 브릿팝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브릿팝은 작은 범위로 한정된 음악을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하는 《BRITPOP》은 그러한 영역을 확장하여 브릿팝 음악의 면모를 보다 넓은 세계에서 바라보고자 했다. 책은 브릿팝의 역사, 오아시스, 블러, 스웨이드, 펄프 등을 포함한 주요 밴드의 주요 앨범, 브릿팝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데이빗 보위, 비틀즈를 포함한 선구자들, 그리고 브릿팝 이후 독립한 뮤지션들의 현재, 연표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 책을 통해 90년대 이후 영국 음악의 중요한 흐름을 생동감있게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