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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인생 멘토링

군대 인생 멘토링

  • 김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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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6-15 출간
  • |
  • 236페이지
  • |
  • 152 X 215 mm
  • |
  • ISBN 9791163380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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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들어가는 글 ①

교사,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여러분 줄을 서 주십시오.”
“부모님께 대하여, 절!”
“오와 열! 발을 맞춰서 걸어봅니다. 하나, 둘, 하나, 둘!”
2006년 8월의 포항.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던 날.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물방울들 속에서 우린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우린 흐르는 눈물이 땀인 척하며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입소 후)
“넌 사회에서 뭐 하다 왔어? 선생? 근데 왜 왔어?”
눈빛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해병대 훈련 교관, 일명 ‘DI’ 였다.
지금도 새까맣게 그을린 팔과 얼굴로 해병대 신병교육대를 지휘하던 훈련 교관들의 목소리와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해병대 수색대를 병장으로 전역한 내게 사람들은 왜 거기를 다녀왔냐는 질문을 많이 하곤 한다. 그 당시 입대를 위한 테스트를 하는 군인들부터, 교관, 선임들까지 모두가 그렇게 물었다. ROTC(학군사관)도 합격했었었기에 장교로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일반 사병의 길을 택했고, 그중에서도 해병대를 택했다. 그리고 해병대에서도 가장 힘들다는 수색대를 선택했다. 해병대 수색대를 전역한 우리는 해병대 수색대라는 이름보단 ‘해병 특수수색대’라는 옛 이름으로 우리 부대를 일컫는다. 남들은 모르는 묘한 떨림이 있는 그 말은 우리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이다.

그 뜨거웠던 포항의 날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군대 생활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의 악몽으로 남아있다는데 내게 군대에 대한 기억은 그때의 무더위보다도 뜨겁고 아름다운 추억, 소중한 경험으로 남아있다. 평화의 시대가 와서 대한민국의 남성들이 군대의 족쇄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은 지금은 군대라는 곳이 짐처럼, 악몽처럼 기억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러한 바람을 가지고, 입대해서 2년간의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기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본다. 이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유는 나의 군 경험이 힘들거나 특별해서는 아니다. 대한민국 평범한 남성들이라면 겪어야 하는 군 생활이 아픈 기억 혹은 인생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되기보다는 모두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더 나아가 그곳에서 보낸 날들이 살아가면서 힘들 때마다 오히려 자신에게 힘을 주는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나처럼. 그래서 그런 나의 작은 생각과 경험들을 나누고자 한다. 2년 동안의 군 생활은 한 마디로 단기 속성 인생 경험이었다. 수십 년의 삶을 살아도 경험하지 못할 사람 경험, 일 경험이었으며, 소중한 삶의 경험이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던 해 여름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로망과도 같은 곳이었다. 남들이 마다하는 힘든 경험은 분명히 내게 큰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대학에 다니며 주변의 유혹에 ROTC에 원서를 내고 합격하기도 했지만 결국 내 바람대로 졸업 후 사병으로 입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반 사병으로 군대에 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기왕 가는 것,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부대에 가고 싶어졌다. 다시는 해보지 못할 바닥 경험을 하고 싶었다. UDT, 특전사, HID, UDU, CCT, 해병 특수수색대 등의 특수부대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직업군인 위주의 부대였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사병들이 꽃인 부대 해병대, 그중에서 수색대에 자원입대하였다. 입대를 위해서 체대 학생들보다 나은 체력을 갖기 위해 운동을 했고, 시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병대 수색대이기에 시중에 나와 있는 시력 검사표를 다 외우고 시험을 보기도 했다. 사실 그 당시 내 시력은 안경으로 교정이 필요한 시력이었다.

2006년 8월, 나는 당당히 합격하고 입대하게 되었다. 다른 부대보다도 유난히 어린 친구들이 자원입대를 많이 하는 해병대 수색대에서의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내게는 그간의 어떤 합격 소식보다 더욱 기쁘고 벅찬 소식이었지만 가족들은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 없었다. 주위의 지지보다는 나 스스로 결정한 일에 대한 젊은 열정과 패기가 더욱 중요했으니까.
훈련소 가입소, 1소대 1격실(나이순으로 배치)에서 82, 83년생 동기들과 시작했던 그때. 나처럼 조금은 늦은 나이에 입대한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입대했어도 많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 함께 글을 쓰는 석진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석진이는 전체 중에서도 2~3번째로 군번이 빨랐던 것 같다. 나중에 실무 생활을 하면서 힘든 시기가 많았는데, ‘그 친구들도 어디선가 이렇게 어려움을 극복해나가고 있겠지’ 라며 생각하고 이겨내기도 하였다.
대학 졸업생이었기에 대학교에서는 후배들을 많이 거느린 선배였지만 입대와 동시에 내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등병이 되어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던 때부터 병장으로 무사히 전역하던 때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은 지금 내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잡았다. 어떤 힘든 일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이 해병대 정신은 오늘도 내게 큰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저자 김지양

들어가는 글 ②

법대생,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유도에 푹 빠져있었다. 반면 공부에 푹 빠진 적은 없었다. 성적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고3 때는 내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숭실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었고 대부분의 남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만 나 또한 군대를 어떻게 가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뭘 해도 군대가 항상 마음에 걸려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ROTC가 있긴 했으나 대학 시절을 딱딱하게 보내고 싶진 않았다. 제일 많이 고민한 게 학사 장교였다. 졸업하고 시험 봐서 장교로 입대를 할까 하다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병으로 입대하자 결정하고 해병대 수색대에 지원하게 됐다.
내가 해병대 수색대에 지원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군 복무는 헌법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다(헌법 제39조).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의무를 회피하거나 져버릴 마음은 없었다. 군대에 갈지 말지가 아니라 어디를 가야 하냐가 고민이었고 이왕 갈 거면 내 의지로 원하는 곳을 가고 싶었다. 그중 해병대는 지원(志願) 제도를 채택하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힘들 걸 알면서도 당당히 지원했다. 마지못해 오는 인원들과 다르게 본인의 의지로 선택하여 온 사람들과 함께 군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해병대는 선배들이 훌륭한 업적을 남겨놓은 곳이었다. 6·25, 월남전에서 해병대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전쟁의 판도를 바꿔 놓았던 인천 상륙작전, 미군도 점령하지 못한 도솔산 전투에서의 승리(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해병대가 가면 상황이 개선된다는 뜻으로 ‘개병대’라는 칭호를 붙여줌), 거기다 월남 짜빈동 전투에서는 1개 중대 규모로 1개 연대 규모를 막아냈다. 그로 인하여 미국 기자가 ‘귀신 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런 좋은 전통이 있는 곳에서 나 또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또 만약 전쟁이 발생한다면 내가 최선봉에 서고 싶었고 나와 함께 싸우는 전우가 해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중 수색대에 근무하게 되면 나는 해병의 선봉에 서서 다른 해병들이 무사히 상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해병대 수색대를 결정하고 지원서를 냈다.
합격을 하고 8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입대를 하게 됐다. 가족을 뒤로하고 우리 동기들은 훈련소에 입소하게 되었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졌다. 몇 주가 지났을까. 교육대장이 수색대 지원해서 입교한 동기들을 소집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 ‘수색’병과로 지원하여 온 동기들이 약 80여 명이 되었다.

(우리를 불러놓고 하는 첫 마디)
“너희들 전부 수색대 못 가!”,
“아마 한 10명 가려나? TO 나오는 대로 가는 거야~.”였다.

순간 동기들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난 그냥 끝까지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체력평가, 수영 평가, 진해에서 받는 체임버 테스트 등 모든 평가가 끝나고 신병 훈련소는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각자 배치받을 부대를 발표하는 날이 왔다. 모든 동기들이 모여앉아 빔 프로젝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표된 게 수색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색 대원은 10명이 선발됐고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난 1사단으로 배치받았다.
해병대 신병 훈련소를 마치고 동기들과 부둥켜안고 작별 인사를 했다. 뒤이어 수색대에서 우리를 데리러 차가 왔다. 긴장되는 마음으로 동기들과 도착한 바닷가의 수색대, 그때 그 느낌은 잊을 수 없다. 어떤 우락부락하게 생긴 대위가 막 호통을 치고 있었는데 후에 내가 배치된 특수 중대 중대장임을 알게 됐다. 생긴 것과 다르게 자상한 분이었다.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데 몇 년 전 수색대 대대장으로 취임하셔서 취임식에도 갔다 왔다. 3일 정도 우린 대대에서 동화교육을 받았고 곧 각자의 중대로 배치되며 수색대 생활이 시작됐다.

14년이 지났다. 책을 한번 써보자는 동기의 연락에 오랜만에 군 생활을 추억할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기쁘다. 나에게 수색대의 기억은 항상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이다. 나는 군대의 경험이 꼭 시간 낭비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보통의 사기업은 관료제를 택하고 있고 이 시스템을 짧고 굵게, 밑에서 위까지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군대이다. 이병 땐 인생의 바닥을, 일병 땐 하위관리자, 상병 땐 중간관리자, 병장 땐 최고 관리자(병사 기준)이며 간부들과 병사들의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겪어 보지 않은 자들보다 장점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군필자가 더 사회생활에 잘 적응한다고 생각한다. 또 규칙적인 생활 및 식사로 건강해지고 매일같이 운동을 하며 체력이 좋아진다.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멋진 몸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군대의 추억이 다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군대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해보며 미래를 설계해볼 시간을 가져보는 기회로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우리의 글을 읽고 자기 자신이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군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
저자 김석진

들어가는 글 ③

미대생,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군대 얘기로 글 한번 써보자.”

군을 전역한 지 10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동기 지양이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갸우뚱했다.
소개팅에서 해서는 안 되는 3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라고 할 만큼 군대 이야기는 금기시되는 주제가 아니던가. 그런 이야기를 책에 담자고?
더군다나 해병대를 다녀온 나에겐 ‘해병대 자부심’ 내세운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군대 이야기는 늘 조심스러웠다. 자랑거리는 내가 늘어놓을 때가 아니라 주변에서 말해줄 때 더욱 빛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지양이는 지금이 세 번째 출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 특히 남미에 있는 한국학교에 파견근무를 하며 아내와 함께 있었던 일화들을 엮은 〈업고 메고 남미육아여행〉 이라는 책은 주제도 흥미로웠고 이런 재밌는 인생을 책으로 담아 엮을 수 있는 지양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군대 이야기라니? 누가 본다고?
물론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라면 이런 내용이 궁금할 수 있다. 나도 입대했던 2006년에 부대 생활과 군대에 대한 정보가 얼마나 궁금하던지 인터넷을 이것저것 뒤져봤었지만 빛바랜 1회용 카메라로 찍은 선배들의 개인 추억용 사진과

“내가 뱀을 산 채로 잡아먹고 200km를 이틀 밤에 걸었고…….”

같은 무용담들뿐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유튜브에만 들어가도 ‘우리나라 특수부대별 비교분석~’, ‘00부대 출신이 들려주는 현역시절 이야기’, ‘00부대 출신의 군대 생활 기억나는 캠핑하기’ 같은 영상들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나도 누가 “에이, 군대 썰 한번 풀어봐~!” 라고 하면 일주일 밤낮으로 들려주고 싶은 얘기들이 많이 있다.
“라떼는 말이야~. 훈련받는데 1주일간 잠도 안 재우고 밥도 안 줘서 칡뿌리를 씹으며 걸었지.”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보고 싶지만. 이런 공통적인 내용은 주 저자인 지양이에게 맡기고, 다른 이야기를 조금만 풀어보려고 한다.
저자 정대원


목차


프롤로그
01. 교사,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_ 지양
02. 법대생,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_ 석진
03. 미대생, 해병 특수수색대에 입대하다 _ 대원

Part 1. 훈련병, 새로운 인생 여행을 시작하다
01. 뜨거웠던 8월의 포항, 드디어 입대 _ 지양
02. 뙤약볕 아래에서의 큰절 _ 대원
03. 훈련소에서의 7주 _ 지양
04. 해병대는 직진 _ 지양
05. 자대배치: 사나이들의 뜨거운 눈물의 현장 _ 지양
06. 신병 훈련소에서 두 번 멱살 잡히다 _ 석진
07. 신병교육대에 입소하던 날(만화) _ 대원

Part 2. 이병, 인생의 쓴맛을 보다
01. 동화교육, 해병대 수색대 2중대 _ 지양
02. 욕먹는 고문관 VS 인정받는 이병 _ 지양
03. 수색 기초교육, 꿀 같은 교육 기간 _ 지양
04. 수색 기초교육, 꿀 같지만은 않다 _ 석진
05. 침상을 타다 _ 지양
06. 이병에게 주말이란? _ 지양
07. 멋진 바닷가에서의 근무 _ 지양
08. 정신교육 _ 지양
09. 집합 문화 _ 지양
10.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 _ 석진

휴가 이야기 ① “휴가복은 왜 입었는데?” _ 대원

Part 3. 일병, 진정한 해병 특수수색 대원으로의 한 걸음
01. 일 복 많은 일병 _ 지양
02. 대관령 동계훈련 _ 지양
03. 첫 번째, 천리행군 _ 지양
04. 기다리고, 고대하던 수색 전문교육 _ 지양
05. 수색 전문교육의 꽃, 지옥주 _ 지양
06. 많이 구르면 어지럽다 _ 석진
07. 포이글 훈련, 미 해병대 수색대와의 한 판 승부 _ 지양
08. 포항 앞바다, 약전 방파제를 떠올리며 _ 지양
09. ‘꿀’ 빨다 _ 지양
10. 수색대원 이라크에 가다 _ 석진
11. 4월 4일, 잊을 수 없는 그날 _ 대원
12. 병원 생활 _ 대원
13. 그때의 수도병원(만화) _ 대원

휴가 이야기 ② “휴가, 아…. 휴가!” _ 석진

Part 4. 상병, 인생의 참맛을 알다
01. 드디어 상병 _ 지양
02. 사나이 라이프가드 _ 지양
03. 공수훈련, 낙하산에 몸을 싣다 _ 지양
04. 상병 5호봉, 인생의 꽃을 피우다 _ 지양
05. 50km 야간 급속 행군, 한계에 도전하다 _ 지양
06. 두 번째 동계훈련, 천리행군, 전술전기 _ 지양
07. 임 따라 천리라도 갈까 보다 _ 대원
08. 마지막 고비, 상병 말호봉(일명 공포의 ‘상말’) _ 지양
09. 위병소를 나서던 기억 _ 지양
10. 바다를 바라보는 낭만, 영화 27도의 추억이 함께한 근무 _ 지양
11. 벌 근무, 군기 교육 _ 지양
12. 두 번의 동계훈련 _ 석진

휴가 이야기 ③ “휴가를 떠올리다” _ 지양

Part 5. 병장, 삶의 급속한 변화를 맛보다
01. 앗세이 병장 _ 지양
02. 병장이 되어 수색교육으로 _ 대원
03. 병장 놀이 _ 지양
04. 예술과 특수 수색교육대의 밤은 길다 _ 대원
05. 과학화 훈련 준비, 마지막 불꽃을 태우다 _ 지양
06. 색다른 유격 훈련의 추억 _ 석진
07. 전교대 입교, 그리웠던 동기들을 보다 _ 지양
08. 즐거운 병장 생활 _ 석진
09. 사회로의 마지막 관문, 전역식 _ 지양
10. 위병소를 벗어나, 종로 한복판에 서다! _ 지양
11. 1027기 동기를 기억하다 _ 지양
12. 군대 메모, 일기, 추억 _ 지양, 석진, 대원

에필로그
01. 제대 후 10년, 앞으로의 미래 _ 지양
02. 시간은 가지만 추억은 영원하다 _ 석진
03. 미술 교사로 다시 태어나다 _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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