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백촌 강상호

백촌 강상호

  • 조규태
  • |
  • 펄북스
  • |
  • 2020-05-15 출간
  • |
  • 204페이지
  • |
  • A5
  • |
  • ISBN 9791187490166
판매가

12,000원

즉시할인가

10,800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0,800

이 상품은 품절된 상품입니다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독립운동으로 투옥 후 형평운동 매진
형평사 설립 후 전국 조직으로 키워

“공평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 본래의 양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들은 계급을 타파하며,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여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기약함이 본사를 만든 취지이라.”

형평사의 창립 취지를 밝힌 주지(主旨)의 일부이다. 1923년 4월 25일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최초의 인권운동이 일어난 날로 기록되어야 한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까지 여전히 차별받고 무시당했던 백정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형평사를 조직한 사람은 바로 독립지사 백촌 강상호였다. 형평사를 세우고 형평운동에 매진하기 전까지 그는 사회운동가이자 독립지사로 일제의 탄압을 견디며 활동했다.

1984년 갑오개혁으로 제도적인 신분차별은 없어졌으나 관습은 여전해 일제강점기에도 백정은 호적조차 가지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백정들은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나라 잃은 설움을 떨쳐버리지도 못하고 옥살이가 끝나자마자 신분제의 폐단에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출옥해) 진주에 도착하니 그때 마침 백정이 양반 청년들에게 몰매를 맞아 죽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나라 잃은 설움과 함께 큰 충격을 받았다.”

강상호가 생전에 자신을 찾아온 박종한(대아고등학교 설립자)에게 남긴 증언이다. 백정마을에 사는 백정을 강제로 데려와 개를 잡으라고 강요했는데, 그 백정이 청년들의 요구를 완강하게 거절하자 청년들이 매질로 백정을 죽인 사건이었다. 강상호는 더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방법을 찾고자 신현수, 장지필 등 진주 지역의 인재들과 함께 저울(衡)처럼 평등(平)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단체(社), ‘형평사’를 조직했다. 양반 지주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형평운동에 매진하는 그를 보고 주변 사람들은 ‘새 백정’이라고 비난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형평사는 백정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연대 속에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형평사가 세워진 지 4개월 만에 경남뿐만 아니라 경북, 충남, 충북 등 지사가 설립되고 ‘도부’, ‘백정’등으로 호적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없애달라는 ‘호적 정정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등 실질적인 백정 차별 철폐 운동의 성과를 내었다. 이전까지 뭉치지 못했던 백정들이 형평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은 결과였다.
좌익으로 오해받은 불우한 말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업적과 삶

강상호가 온 힘을 쏟았던 형평사는 1935년 대동사로 이름을 바꾸고 친일 이익단체로 성격이 바뀌게 되었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형평사는 백정 해방, 신분 차별 철폐를 위한 본 목적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횔동하는 단체로 변질되어 갔다. 자연스레 강상호도 핵심 역할을 맡지 못하고 결국 1936년 이후 형평운동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되었다. 이후 강상호는 더는 사회활동에 나서지 않고 생업을 잇기 위해 농부로 살아갔다.

양반 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부친의 뜻을 이어 신식학교를 일으키고 독립운동과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치고 형평운동에 온 재산을 쏟아부었지만 말년은 불우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해방이 되어서도 그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좌우로 나뉜 혼란스런 해방정국에서 그는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꿈꿨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지나는 기간 동안 강상호는 좌와 우 모두에게 공격받는 상처 입은 호랑이였다. 조국의 독립과 신분 해방 운동을 위해 평생을 보낸 그에게 일제가 아닌 동족에게 체포되고 풀려난 경험은 통탄할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진주시 인민위원장을 했다는 오해는 그에게 두고두고 큰 상처를 안겼다. 그 때문에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도, 지역 발전과 신분제 철폐에 큰 발자취를 남긴 그의 업적은 무시되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그의 독립운동에 대한 공적인 평가는 2005년 대통령 표창이 전부다. 그의 공적을 감안하면 적어도 건국훈장을 받아야할 터이지만 이후 그를 기리거나 제대로 삶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거의 없었다.

〈형평운동의 선도자 백촌 강상호〉는 지금까지 제대로 기록하고 조명 받지 못한 그의 일생을 오랜 조사 작업을 통해 꼼꼼하게 완성시켰다. 일제 강점기 당시 신문기사와 지금까지 형평운동과 형평사에 관련한 문헌들, 유족이 기록하고 소장한 자료들을 망라해 그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업적에 대한 기록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유품이 소실되어 더 자세한 묘사와 추적이 어려웠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후 그를 연구하는 이들의 몫이리라.

도저히 깨질 것 같지 않는 신분제에 맞서 싸운 깨어 있는 선도자이자 독립을 염원했던 지사였던 백촌 강상호는 그냥 잊혀선 안 될 표상이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형평운동은 만인이 평등하지 않던 시대를 이기기 위한 힘찬 몸부림이었고 그 성과는 분명했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은 단지 신분제 철폐만이 아니었고 만인이 더불어 잘 사는 사회였다. 그는 부조리에 온몸으로 맞섰으며 끝까지 기개를 지킨 진주의 큰 인물이었다.


목차


추천사
서문

1장 인격의 형성
1. 출생과 성장, 혼인 / 2. 교육 / 3. 빈민 구휼 활동

2장 사회 운동
1. 육영 사업 / 2. 국채보상운동 / 3. 항일 독립운동 / 4. 《동아일보》 진주지국장
5. 형평운동을 시작한 이후의 사회운동

3장 형평운동에 매진함
1. 백정이란 누구인가 / 2. 형평운동이 일어나게 된 진주 사회의 배경
3. 형평사 창립을 주도하다 / 4. 형평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가다
5. 반형평운동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다
6. 형평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다 / 7. 형평사의 변질로 형평운동과 멀어지다

4장 형평운동을 그만둔 뒤의 삶
1. 일제강점기 후반 / 2. 광복 직후와 한국전쟁 전후 / 3. 만년의 삶
4. 투병과 임종, 그리고 장례

후기
참고문헌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 070-4821-5101
교환/반품주소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중앙대로 856 303호 / (주)스터디채널 / 전화 : 070-4821-5101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