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영웅 아이네이아스의 로마 건국 이야기 『아이네이스』
『오디세이아』가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아이네이스』는 ‘아이네이아스의 노래’라는 뜻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 트로이는 멸망한다. 그런데 베르길리우스는 그 패배자를 그냥 패배자로 놔두지 않는다. 베르길리우스는 『아이네이스』에서 패배한 트로이 장군 아이네이아스를 위대한 로마 제국의 건국 시조로 만든다. 트로이 사람 아이네이아스가 세운 나라 로마는 트로이를 멸망시킨 그리스를 결국에는 지배하기에 이른다. 패배자가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실제로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아이네이아스를 단순한 패배자나 도망자가 아니라 트로이의 미래를 짊어질 영웅으로 암시했다. 베르길리우스는 이 암시를 이어받아 아이네이아스가 짊어진 트로이의 미래를 『아이네이스』에서 바로 로마 건국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렇게 해서 트로이와 로마는 만나고,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와 『아이네이스』는 이어진다.
『아이네이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와 비슷하다. 아이네이아스가 멸망한 조국을 탈출하여 신천지를 찾아 헤매는 전반부는 『오디세이아』와 너무 닮았고, 최초의 로마를 세우기 위해 루툴리족의 투르누스와 싸우는 후반부는 『일리아스』를 다시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렇지만 『아이네이스』의 주인공 아이네이아스는 『일리아스』의 여러 영웅이나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와 성격이 대단히 다르다. 우선 『일리아스』의 영웅들은 복수를 위해 전쟁에 나서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싸운다. 반면에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인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싸운다. 다음으로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난의 항해를 한다. 반면에 아이네이아스는 신이 정해준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고난의 항해를 한다. 똑같이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지만 그 목적이 다르다.
아이네이아스의 목적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를 향해 있다. 그에게는 오디세우스처럼 돌아갈 곳이 없다. 오직 불확실한 미래만 있을 뿐이다. 그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확신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 이것이 바로 로마가 세계 제국을 건설한 원동력이다. 베르길리우스가 가장 위대한 로마 시인으로, 그가 쓴 『아이네이스』가 가장 위대한 로마 서사시로 추앙받는 것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정신이 로마의 정신과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천지를 개척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 길에 나서는 것, 이것은 로마의 정신일 뿐 아니라 서양 정신의 중요한 한 뿌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