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산수로 다시 태어난 북한도봉의 진경
한평생 한국화에 헌신해온 이호신의 붓끝이 수도권의 진산 북한과 도봉에 이르렀다. 북한산국립공원으로 보호되고 있는 북한산과 도봉산은 메트로폴리스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도시의 국립공원’이고, 서울을 넘어 수도권 전체를 아우르는 풍수의 핵심이다. 연평균 탐방객이 900만 명에 가까워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우리 삶에 가까운 산이지만, 한편으로는 원형 훼손과 생태계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기도 하다.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울을 오가는 사람이라면 그 모습을 먼발치에서라도 볼 수밖에 없고, 수도권에 산다면 적어도 한번쯤은 그 기슭에라도 발을 디디게 되는 산이다. 하지만 묵묵히 수도권의 녹색허파로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북한산과 도봉산은 우리를 둘러싼 산소처럼 너무나 친근하면서도 그 풍부한 역사와 걸출한 모습에 비해 역사적으로 그림의 대상으로서 조명된 적이 드물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진과 이야기가 그 품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북한산과 도봉산을 다룬 그림은 보기 힘들다. 작가의 말대로 ‘등하불명(燈下不明)’인 탓인가.
한국 화단의 대표 중견화가로서 진경산수의 맥을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아 정진해온 이호신은 2012년 펴낸 사찰 그림 순례집 『가람진경(伽藍眞景)』으로 “단순한 이 시대 명찰의 진경산수가 아니라 자연과 역사, 건축과 조각, 회화가 한데 어우러져 숨 쉬는 이 시대 문화의 총화이자 진경화법수련의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최완수)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같은 해에 출간한 한 개의 시와 네 개의 군이 삼도에 걸쳐 뻗은 넓디넓은 지리산을 십 년에 걸쳐 화첩과 화폭에 담아낸 『지리산진경(智異山眞景)』을 통해 한국 산수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구도와 색감으로 이 땅의 자연경관에 오늘날의 생태와 그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아 장대한 서사로 펼쳐 보인 바 있다.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작업을 이어가던 작가는 절친한 산악시인 이종성의 “북한산을 그리라”는 권유에 방방곡곡을 발로 누비며 산수화에 정진하면서도 정작 40년을 지척에 살고도 북한산을 등한시했다는 충격에 매달 상경하기 시작했다. 그는 2014~2015년과 2019년에 걸쳐 사계절이 몇 번씩 바뀌도록 시인과 함께 북한과 도봉을 무수히 헤매이며 구석구석의 풍광과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화폭에 담았다.
이렇게 그의 붓을 통해 드러난 북한과 도봉에는 그가 주창하는 ‘생활산수’, 즉 자연과 생태, 그 안에 의지해 살아 숨 쉬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온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엮여 이뤄내는 무심하면서도 다정하고 소탈하면서도 장엄한 상생의 세상이 담겨 있다.
인문학자 정민은 이호신이 그려낸 것을 ‘대관소시(大觀小視)의 세계’라 명명한다. 진경 기법으로 “디테일 하나하나를 분명히 손꼽아 가리킬 수 있는데, 막상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장면들”을 포착해 생활산수로 녹여냈다는 것이다. 정민은 “그 장한 붓끝은 전체를 보되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화폭에 농축시킨 대관소시의 기관(奇觀)을 보노라니 미상불 감탄을 넘어 경배의 마음마저 든다”며 “겸재(謙齋)의 [인왕제색도]가 장하다 해도, 그 규모와 스케일에서 이 화백의 그림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조선 시대의 그 많은 실경산수는 모두 그의 작품과 만나기 위한 연습 과정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는 평가로까지 나아간다.
이 책에는 200점에 가까운 이호신의 북한산과 도봉산 작품 중 128점을 선별해 계절별로 싣고, 정민 교수가 번역한 선인들의 북한도봉을 노래한 글을 곁들였다. 이렇게 탄생한 이 책에는 작가의 소망대로 ‘다시 보는 북한도봉’이 아니라 ‘새로 보는 북한도봉’이 농익은 생활산수로 담겨, 오늘의 북한도봉을 우리의 붓으로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