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1984년,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시대의 고전'.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박노해를 통해서만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처절하고 감동적인 노동의 서사이며 한 시대 노동의 운명에 대한 진실한 증언”(도정일, 문학평론가),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 등 객관적 역사 기록과 그를 뛰어 넘는 충격적 감동의 내적 기억의...
더보기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1984년, 군사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시대의 고전'.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박노해를 통해서만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처절하고 감동적인 노동의 서사이며 한 시대 노동의 운명에 대한 진실한 증언”(도정일, 문학평론가),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 등 객관적 역사 기록과 그를 뛰어 넘는 충격적 감동의 내적 기억의 책. 그래서 30년이라는 세월은 한 시집이 망각 속으로 소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나 『노동의 새벽』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는 고전’이다. 이 시집 속의 노동은 곧 삶이요, 노동자는 곧 인간이 되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노동의 새벽』에서 그려진 처절한 노동과 저항 끝에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한민국,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박노해,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특히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표지의 ‘실크 인쇄’는 오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기계가 아닌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것이다. 또한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컴퓨터 글자가 아닌, 저마다 다 다른 ‘살아있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 여전히 불의한 시대, 여전히 불안한 영혼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용기. 30년을 넘어 『노동의 새벽』은 오늘 다시 새롭다.
1984년,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다
1984년, 한 공장 노동자의 손에서 한 문학평론가의 손으로 신문 하나가 건네졌다. 그 신문지 사이에서, 얇은 습자지 위에 연필로 또박또박 눌러 쓴 시들이 쏟아져 나왔다. 군사독재 치하의 엄혹한 시절, 한 편 한 편의 시는 가슴에 불을 지피는 충격이었고 눈물이었고 위험한 그 무엇이었다. 시인은 자신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당부하며 사라졌다. 그 시들이 묶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했고, 그것이 바로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이었다.
『노동의 새벽』은 곧바로 엄청난 충격과 논란을 몰고 왔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한국 사회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중의 한 권으로 남게 되었다. 저자 박노해는 이 시집을 세상에 발표하고 곧바로 위험 인물로 떠올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각종 시국 사건의 배후 인물로 추적당했다. 그는 '불순한' 노동자, '불온한' 시인, '위험한' 혁명가였다.
군사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새벽』은 출간 이듬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박노해는 등장하자마자 평론가 김윤식, 임헌영 등이 뽑은 ‘1984년의 시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988년에는 계간 『문예중앙』과 평론가들이 선정한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 한 편’으로 『노동의 새벽』이 뽑히기도 했다. 1991년 그가 구속될 때까지 공식 기록은 없지만 이 시집은 100만 부 가까이가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학적으로, 문화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노동의 새벽』이 던진 파장은 넓고 컸다. 문단은 경악했다. 그의 시는 지식인 시인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지점에 이미 도달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목소리로, 군홧발로 짓밟혀온 1천만 노동자의 살아있는 실체의 모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잊혀진 존재’였던 노동자가 역사의 당당한 주체로 걸어 나오는 시대적 예감이었다. 이로써 『노동의 새벽』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운동의 하나의 커다란 지침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노동의 새벽』은 단일 시집으로서 가장 많이 노래로 만들어진 시집”(강헌, 대중음악평론가)이라는 기록을 갖게 되었다. 『노동의 새벽』에 묶인 42편의 시 가운데 「가리봉시장」, 「지문을 부른다」, 「시다의 꿈」, 「진짜 노동자」, 「노동의 새벽」, 「바겐세일」 등 20여 편의 시들이 80년대 민중가요로 작곡되어 노래의 몸을 입고 울려 퍼졌다. 2004년, 故신해철 씨가 프로듀싱을 맡고 싸이, 윤도현, 한대수, 언니네 이발관 등의 뮤지션이 참여한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앨범』이 발매되었는데, 한 권의 시집에 음반과 공연이 헌정되는 것은 한국음악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이다. 고달픈 저임금 노동자로부터 몸을 일으켜 이 나라 최초의 빛나는 노동자 시인이 된 희귀한 존재, 사회 모순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고통과 꿈과 투쟁을 기적처럼 한 몸에 구현했던 투사? 문학사적으로나 사회사적으로 우리는 그런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도정일, 문학평론가)
2014년, ‘노동의 새벽’은 이미 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2014년, 『노동의 새벽』 출간 30주년을 맞이했다. 30년이란 세월은 한 세대 이전의 시간이며, 한 시집이 망각 속으로 소멸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노동의 새벽』은 세월을 뚫고 새삼스럽게 다시 기억의 전면으로 떠오르고 있다. 『노동의 새벽』이 여전히 '불온한' 물음을 던지는 생생한 목소리로 되살아나는 까닭은, 이 시집이 가진 시공을 뛰어넘는 근원의 저항과 소망 때문일 것이다.
어찌 보면 불과 30년 전의 이 노래들은 지금 시대를 경유하는 이들이 가닿을 수 없이 아득하기만 하다. 하여 노동의 새벽은 쉬이 잊혀져서는 안 될 ‘기억’을 ‘대물림’하는 일이기도 하다.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암울했던 과거 한때의, 처절했던 누군가의 이야기로 읽을 수 없다. 이 시집 속의 노동은 곧 삶이요, 노동자는 곧 인간이 되어 오늘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노동의 새벽』에는 '평온한 저녁 밥상'을 앞에 두고자 하는 소박한 열망, 사람 대접받고,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이 곳곳에 녹아있다. 단지 인간다운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그러나 사회의 모순구조에 의해 그 본질적인 욕망이 짓밟힌 인간 군상의 신음과 일어섬이 담겨 있다.
그 처절한 노동과 저항 끝에 이루어낸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한민국, 그러나 오늘의 노동 현실은 출구가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비단 그 시절 육체 노동만이 아니라 사무 노동, 지식 노동, 감정 노동 등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몸과 정신과 영혼에 대한 ‘노동 착취’는 여전하지 않은가. 노동은 갈수록 자연과 자율과 몸과 영혼에서 분리되고, 내 노동과 그 생산물이 자아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진정한 ‘노동 소외’는 여전하지 않은가.
“많은 강을 건너고 / 많은 산을 넘었다 / 새벽은 이미 왔는가 / 아직 오지 않았는가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부으며 /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 나는 처음 노래했지만 / 노래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 누구의 가슴에나 이미 있었고 / 누구라도 받아쓰지 않으면 안 될 / 우리들 가난한 사랑의 절규였다 //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박노해,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30년을 맞은 『노동의 새벽』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과연 노동은 삶을 신성하게 하는 노동으로, 노동자는 인간으로 해방되었는가? 노동의 새벽은 ‘이미’ 왔는가, ‘아직’ 오지 않았는가? 그대 자신의 삶은 해방되었는가?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 『노동의 새벽』의 수많은 얼굴들은 '또 다른 나’의 얼굴이 되어 지금 우리 앞에 서있다. 하여 『노동의 새벽』은 여전히 불의한 시대, 여전히 불안한 영혼에게 바치는 위로이자 용기이다. 그 강인한 시들의 힘이 우리를 강하게 할 것이다.
장인적 노동으로 완성된 개정판, 실크 인쇄와 납활자의 복원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은 1984년 초판본의 미학과 정신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두었다. 그것은 단순한 형태의 복구가 아닌 정신의 복원에 가깝다.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가 부른, 노동자가 주인공인, 노동자의 노래이다. 또한 노동자가 만든 책이기도 하다. 하여 개정판의 디자인과 제작 전반에 창조적 노동의 과정을 오롯이 담아내고자 하였다.
1984년 초판본의 정체성은 표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판화가 故 오윤이 목판에 새겼던 ‘강인한 노동자의 뼈대’ 같은 제목, 그리고 깊은 새벽의 검푸른 빛은 한 시대의 상징이었다. 2014년 『노동의 새벽』 개정판에서는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 거야”로 노래한 그 시린 아픔과 슬픔이 짙게 스며든 코발트 블루, 그리고 현대적 타이포그래피로 새로 태어난 검은 글자가 초판본을 창조적으로 계승했다. 디자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타이포그래퍼이자 출판디자이너 홍동원이 맡았다.
기계화, 자동화의 진행으로 출판 인쇄 영역 또한 대량생산과 효율성을 따지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이번 『노동의 새벽』 개정판에서 구현한 ‘실크 인쇄’는 오래된 인쇄 기법 중 하나로, 사람의 손이 훨씬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노동의 새벽』이 담지한 정신을 구현하고자 한 것으로, 기계의 미학이 아닌 장인적 노동의 미학을 담아내고 있다. “실크 인쇄의 기술은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다루는 장인의 경륜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더 새롭고 아름다워진다. 색이 쉽게 변질되지 않고 오래가며, 색감 또한 일반 인쇄에서는 구현되기 힘든 깊이를 지닌다.”(홍동원, 글씨미디어 대표)
개정판 본문의 특징은 바로 ‘납활체’에 있다. 납활체는 컴퓨터가 상용화된 이후 거의 사라져 지금은 찾아 보기 어렵다. 『노동의 새벽』 개정판 본문은 1984년 초판본의 납활체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으며, 세월이 흘러 읽기 어려운 글자는 하나하나 수작업을 거쳐 되살려냈다. “납활체는 글자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또 사람이 누르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에 같은 글자가 한 글자도 없다. 손으로 글씨를 쓸 때 강약과 느낌이 다 다른 것처럼. 그것이 살아있는 글자이며, 거기서 우리는 ‘글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홍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