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공무원인가?
2018년 12월, 30대 젊은 사무관이 유튜브(Youtube)에 올린 동영상이 대한민국을 블랙홀로 빠뜨렸다. 그리고 그는 뒤이어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글을 올린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이런 업무 처리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바뀌어야 한다…”(2019. 1. 2.,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왜 나는 기획재정부를 그만두었는가」)
이 사건은 몇 달간의 논란 끝에 잊혀지는 듯하였으나, 행정학자로서 맞닥트린 일련의 내부 폭로 사건들은 충격적이면서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평균 3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소위 끗발 센 부처에 발령받은 사무관이 공직을 그만두고 폭로를 이어간 일련의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신재민 사태를 바라보며 많은 국민들이 이야기했다. 왜 그 ‘좋은 직업’을 그만두고 나와서 이런 문제를 만드느냐고….
공직에 대한 사회적 선망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공무원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하다. 시민들은 개선의 여지없이 무사안일하게 대처하는 사람, 독창적이지도 적극적이지도 않은 사람, 소명 의식 없이 업무 처리하는 사람을 일컬을 때 ‘공무원스럽다’는 말을 쓴다고 한다. 어쩌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이미지가 이렇게 되었는가.
되돌아보면 공무원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마음에 애잔함과 기대가 공존한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제한적이던 80년대 초, 서울 유학을 고집하던 딸에게 ‘행정학과’라고 적힌 대입 원서를 들고 오신 아버지, 그 이후 숙명처럼 행정학도의 길에 들어섰다. 나는 비록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공직에 입문하여 개인적 삶이 없다시피 살아온 선후배, 동기들이 그 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때때로 그들에게 쏟아지는 국민적 질타가 어쩌면 행정학자로서 내가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에 과연 공직이 무엇이고 그들은 어찌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대한민국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는 공무원에 대한 선망과 실망의 이중적 맥락에서 공무원을 둘러싼 환경과 조직의 특성 및 문제를 파악하고, 국가 운영과 공직사회의 좌표를 제시하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를 위해 공무원의 생각과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를 일반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구성하였으며, 그를 통해 현실 사회에서 공무원과 공직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이러한 현상이 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에 대한 행정학자들의 진지한 고민을 담아내고 있다. 이는 공무원이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역할을 다하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그들의 머리와 손발이 춤출 수 있게 하는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한편, 기존의 행정학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쓰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최근 행정 현상은 놀라울 정도로 변모하였지만, 행정학 관련 저서들은 여전히 발전국가 시대의 틀을 고수하고 있다. 과거의 행정이 국민을 단지 행정의 순응 대상으로 여겼다면 오늘날의 행정은 국민과 교감하고 함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 책은 행정학이 국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그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공공성과관리연구센터는 공무원의 역량 강화와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한 기초 데이터를 축적하기 위해 다년간 공무원 인식조사를 수행해왔다. 이 책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공무원 설문은 센터에서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인식 자료의 재해석을 통해 공무원의 생각과 행동을 읽고자 하였다.
『대한민국 공무원 그들은 누구인가』는 서문과 다섯 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관료들의 복지부동, 레드 테이프, 영혼 없는 공무원이 된 이유와 그 극복 방안 등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공직에 대한 환상에 대조되는 현실을 조명하고 있으며, 정부와 관료에 대한 신뢰 회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였다. 세 번째 파트에서는 공직사회의 변화를 성별과 세대 관점에서 검토하고, 새롭게 요구되는 공무원의 역할 변화와 업무 공간 디자인에 대한 제언을 담고 있다. 네 번째 파트에서는 공무원의 부패 인식과 김영란법에 대한 생각, 예산 운용 현황, 지방분권개혁 현황 등 사회현상에 대한 공무원 인식을 분석하였다. 마지막 파트는 행정학계의 원로 교수가 다양한 이론적 시각을 적용하여 한국 공무원에 대한 각 장에서의 묘사를 재해석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옥고를 작성해주신 열다섯 분의 필진과, 기획 단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공직 현장에 대한 생생한 조언으로 이 책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김동극 전 인사혁신처장님, 서문부터 마지막 장까지 꼼꼼하게 검토하고 감수를 맡아준 나혜영 박사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책의 출간은 집필진 외에도 많은 분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의 기획 의도를 듣고 흔쾌히 출간을 맡아주신 문우사 김영훈 사장님을 비롯해 전영완 과장님, 그리고 편집진들께 감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도서 전반의 세세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검토하고 헌신한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공공성과관리연구센터 최경희 박사, 이혜연, 박지선 연구원 그리고 김찬우 박사께도 심심한 고마움을 전한다.
2019년 10월
관악캠퍼스에서
박순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