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부터 2016년대 까지의 대한민국, 그 생생한 역사의 주요 현장을 도서와 각종 희귀 문서, 사진 자료 154점을 통해 들여다보는 책!!
저자는 평소 가장 관심을 두던 현대사 분야의 책과 문서 중 중요한 것만을 골라 섬세한 손길로 직조해 내고 있다. 정사(正史)를 담은 정통 역사서는 아니지만 유려하면서고 힘 있는 필치로 써 내려간 문장들과 소중한 사진자료들로 인해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포인트 곳곳을 목격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암울했던 80년대 시국의 민주화운동·인권운동·노동운동의 가투(街鬪) 현장에서 진압경찰 백골단 무리들의 곤봉과 최루탄 세례에 쫓겨 달아나며 대학생·근로자·민주화운동가들이 가장 많이 불렀던 ‘민중의 노래’ ‘열사들 의 노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 광주민주화운동의 으뜸가는 주제였던 ‘5월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과 ‘학살정권 타도’ 투쟁 과정에서 소리 높여 불러댔던 또 다른 2곡의 주제가 <광주출정가>·<5월>과 함께 ‘5월 광주’의 3대 상징곡으로도 불리었다.
10여 년 가까이 계속되어 온 가창 절차 논쟁의 핵심은, 매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전에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제창 형식을 둘러싼 국가보훈처와 행사집행위원회 간의 서로 다른 주장의 관철 고집에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이 ‘정부기념일’ 로 제정된 1997년부터 2008년까지는 ‘제창’ 방식으로 참석자 모두가 함께 불렀으나 사회 일각의 문제 제기로 2009년부터는 ‘합창’ 방식으로 불 러오고 있는데 대해 희생자 유가족과 광주민주화운동 관련단체, 광주시 의회와 야당 등은 “과거처럼 제창 방식으로 도로 바꾸어야 한다”고 매년 요구해 오고 있던 차, 기념식을 이틀 앞둔 2016년 5월 16일 주무부처인 국가보훈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인한다는 논란이 남아 있고, 모두가 부르도록 강요할 수 없기 때문… 5.18이 광 주시민만의 행사가 아니라 ‘전 국민을 대표하는 정부의 기념행사’이기 때문에 국민적 갈등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라는 배경 설명과 함께 “(예년처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합창 방식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나온 데서 비롯된다. -중략-
이 주장에 대해 야당 측과 제창 찬성 측 시민단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영혼결혼식’이나 민주화운동을 위해 1982년부터 불리어진 노래이기 때문에(역사성이나 기득권을 내세워, 그 뒤에 벌어진 국가정체성 관련 주변상황의 현저한 변화나 직접적 안보 위협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종북 논란’은 어불성설이며, 무엇보다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역사를 담은 상징적 노래이기 때문에 ‘국민통합 저해’라는 논리는 5.18정신을 폄훼하는 것이라고(‘5.18 성역’으로 모든 것을 감싸며) 맞서고 있다.
양측 모두 논리상 한 치도 양보하기 어려운, 평행선적 명분론을 앞세운 주장들을 펼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5.18민주화운동 관련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필자의 눈에는 이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주장자(고집자)들 중 일부 인사들의 제창 고집 의도의 감춰진 속내에 약간의 불온성과 불순성이 들여다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년에도, 아니 내후년… 에도 되풀이될 것이 뻔한 이 합창―제창 논쟁 속의 숨어 있는 불온·불순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창(歌唱) 목적의 의도된 이념성·음모성에 있다 할 것이다. 혹자는 체제 전복 의도의, 혹 자는 반국가·반정부… 타도 투쟁 의도의… 혹자는 국가이념 이완 목적의 … 혹자는 ‘대선표’·‘지역 몰표’ 구걸 목적의….
어떤 약도 다 약성과 독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듯이, 이 <임을 위한 행진 곡>도 노래 부르는 사람이나 부르고자 하는 목적이나 때나 장소에 따라 때로는 엄숙하고 경건한 추념(추모)곡도 되고, 때로는 ‘주의자·음모가’들의 흉포스런 음모성 선전선동가가 되기도 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이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희생자의 묘역 돌며 그저 자연스레 추모의 정 담아 부르곤 했던 ‘아름다운 가사와 힘찬 가락’의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5.18기념식장에서 반주에 맞춰 함께 불렀다거나, 노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 참석하의 청와대 모임 뒤풀이 행사나 여의도 ‘리멤버 1219’ 노사모 집회장(2003. 12 .19.)에
서 대통령과 함께 두 주먹 불끈 쥐고 ‘고성방가’한 때부터 정치적 선전선동 목적의 ‘혁명가’ 내지 ‘저항가’로 변질되어 버린 <임을 위한 행진곡>. ‘민주…총’이나 ‘…선생조합’이나 공무원노조 집회4원들의 불법 반정부 집회시위장에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귀청 찢어지게 불러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
해마다 5.18묘역에 모여, 혹은 원색의 정치적 이념성 선전선동문구 담긴 대형 플래카드·깃발 앞세우고 반체제·반정부 구호 외치며 금남로를 누비면서 각자의 이기적 소망 담은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불러대는 여야 정치인이나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음모가들·체제 전복 목적의 종북 좌파 모험주의자들이 불러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진정한 5.18추념곡으로 참석자 모두가 입을 맞춰 한목소리로 제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만 되면 각지에서 떼 지어 몰려 내려와, 핏자국 선명하게 배인 금남로의 아스팔트 길 누비며 철 지난 원색의 운동권 노래 고성방가 하며 ‘大選票’ 계산하는 대선주자들이나 FTA 결사반대 주의자들이나 ‘…행 버스’ 선동꾼들이 고공(高空) 무대에서 두 주먹 흔들어대며 불러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 맺힌 5.18 유가족들과 민중항쟁 희생자들이 오열 속에 소 리 죽여 흐느껴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과는 가사와 곡조만 같을 뿐 가창(자)의 가창의도와 포부가 다를 것이기 때문에 결코 추모곡으로 함께 부를 수 없겠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홍위병의 노래’가 다 되어버린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제 그만 부르기로 하자는 것이다.… 5월도 알맹이만 남기고 껍데기는 날려 보내자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