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 한국사 연애열전

  • 권경률
  • |
  • 빨간소금
  • |
  • 2019-10-10 출간
  • |
  • 392페이지
  • |
  • 144 X 219 X 32 mm / 539g
  • |
  • ISBN 9791196585938
판매가

18,000원

즉시할인가

16,2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6,2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금지된 사랑’의 역사, 곧 ‘가부장제’의 역사

“정조는 도덕도 법률도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취미다.”
나혜석이 일제강점기 때 잡지《삼천리》 1935년 2월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근대적 여성 해방 운동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자유연애가 막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가부장 사회의 성적 금기가 엄격하던 시대 상황에 비추어보면, 이는 혁명적인 발언임에 틀림없다. ‘정조’라는 전가의 보도에 맞서 ‘성적인 자기결정권’이라는 새 칼을 휘두른 셈이다.
이후 나혜석의 정조론은 짧은 시간에 진화를 거듭했다. 그녀는 남자 공창(公娼)을 두어 여성의 성욕을 해결하고 독신 기간을 늘리자고 주장했다. 또 결혼을 하더라도 각자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을 만나 사귀는 게 권태에 빠지지 않는 길이라고 외쳤다.
그러자 가부장 사회에서 극단적인 조리돌림이 벌어졌다. 지인들이 하나둘 나혜석의 곁을 떠났다. 친정에서조차 버림받고 그리운 아이들도 보지 못한 채 그녀는 생활고에 쓰러져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킨슨병 증상이 덮쳤다. 그녀는 수덕사, 해인사 등지를 전전하다가 1940년대에 경기도 안양시 보육원에 의탁했다. 그 후 묘연히 잊혔다가 1949년 3월 14일자 <대한민국 관보>에 등장했다. ‘나이 34세. 주소 미상. 이름 나혜석.’ 그것은 행려병자의 부고였다.
“어을우동의 음행을 엄히 징계해 고려 말의 음란한 풍속이 되살아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극형에 처함이 옳다.”
1480년 4월 18일 어우동은 왕명에 따라 그날부로 서울 군기감 앞에서 처형되었다. 그녀의 죄는 남편이 있는 양반가 여인이 각계각층의 남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정을 나눴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간통죄’다. 당시 조선에서 쓰는 《대명률》의 간통죄 처벌 조항을 보면 곤장 80~90대가 고작이었다. 사안을 감안해 가중치를 적용해도 유배를 보내거나 관노로 삼는 정도였다. 그런데 어우동은 즉각 처형되었다. 이와 달리 그녀와 간통했다고 해서 관직에서 쫓겨나거나 유배를 떠난 남자들은 불과 몇 년 만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제자리로 복귀했다.
성종은 세조 때 시작된 《경국대전》 편찬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유교 통치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이는 나랏일은 물론 백성의 풍속까지 유교 규범으로 통제한다는 뜻이다. 여성에게도 새로운 사회 질서에 걸맞은 행동과 처신을 요구했다. 유교 규범은 기본적으로 정욕을 억누르고 절의를 좇는 것이다. 성종은 여성의 성적 일탈이 가정과 사회를 위협에 빠뜨린다고 보고 강력하게 대처했다. 그 본보기가 어우동의 처형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게 전부일까? 성종은 단지 유교 국가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해 어우동을 엄히 징계했을까? 혹시 임금에게도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 어우동의 처형(1480)은 성종이 부부 싸움 끝에 폐비 윤씨를 쫓아내고(1479) 사약을 내려 죽이는(1482) 와중에 벌어졌다. 알고 보면 ‘자유부인’ 어우동의 죽음에는 연산을 낳은 폐비 윤씨의 권력의지에 대한 성종의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신여성’ 나혜석은 왜 조리돌림을 불사하고 “정조는 취미일 뿐”이라고 부르짖었을까? ‘자유부인’ 어우동은 어째서 당시 법대로 곤장을 맞지 않고 교수형을 당했을까? ‘왕건의 손녀’ 천추태후는 어쩌다가 여성 통치자에서 음란한 반역자로 전락했을까?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 유교 통치 이념에 치우친 승자의 역사는 천추태후에게 ‘음란한 반역자’라는 오명을 씌웠다. 그러나 현애왕태후는 알고 보면 고구려계를 대표해 고려의 자주성을 수호하고 백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강력한 여성 통치자였다. ‘음란한 반역자’라는 오명의 원인이 된 김치양과의 염문은 오히려 고려시대 여성의 독립적인 지위와 연애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사는 거창한 대의명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이처럼 사사로운 데서 말미암은 일들이 많다. 옛 사랑이 그러하다. 금지된 사랑에 쓰러진 여인들의 이야기에는 막막한 감동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사에서 가부장 사회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힘이 세졌는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사에서 금지된 사랑의 역사는 곧 가부장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에 독창적 숨결을 불어넣다

이 책은 사랑으로 다시 쓰는 한국사다. 남녀의 사랑을 실마리 삼아 삼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역사의 맥락을 관통한다. 서동과 선화공주부터 김원봉과 박차정까지 열 가지 사랑 이야기까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1980~1990년대에 유행한 소위 ‘정통 사극’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소재들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오래된 이야기에 독창적인 숨결을 불어넣는 역사가’답게 사료 파헤치기를 통해 정통 사극과는 매우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역사는 꼬불꼬불한 역사 기록만으로는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진실은 언제나 빛바랜 사료의 행간에 숨어 있다. 민간인 과부 소생인 서동은 어떻게 백제의 왕좌를 차지했을까? 《삼국유사》는 선화공주와 사랑 이야기를 불교 승려들의 입을 빌려 퍼뜨리는 ‘첩보원’ 서동의 진면목을 품고 있다. 김유신은 왜 애인 천관녀의 집 앞에서 말의 목을 잘라 역사적인 동물 학대자가 되었을까? 《삼국사기》에는 말의 피로 하늘에 삼국통일을 맹세하고 ‘신녀’ 천관녀를 이용해 그 비전을 설파하는 김유신의 야망이 감춰져 있다.
또한 사랑 얘기라고 내내 달달할 거라 예상해선 곤란하다. 달달하다가 아프고 화난다. 개인을 넘어선 시대의 아픔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가장 사소한 개인사 같지만, 알고 보면 가장 사회적인 관심사이다. 그래서 한국사의 지배층은 남녀의 사랑을 다스리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때로는 사랑을 죄악시하면서 민중에게 공포심을 심었고, 때로는 사랑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웠다. ‘2부 여자, 금지된 사랑을 하다’가 전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면, ‘3부 남자, 사랑을 이용하다’가 후자에 해당한다. 정통 사극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양녕은 문치의 시대를 열기 위한 아버지의 뜻을 이해해 일부러 음주가무에 빠진 척하던 세자가 아니었다. 양녕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던 어리와의 스캔들로 파멸을 자초했다. 뿐만 아니다. 조선 숙종은 사랑하는 여인 장옥정을 왕비로 삼기 위해 집권당을 갈아치우며 당쟁을 사생결단으로 격화시켰다. 우리가 몰랐던 한국사의 진실이다.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표면적인 힘은 공포와 욕망이다. 하지만 사람의 역사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사랑이다. 고려 멸망의 결정적 계기는 우왕을 둘러싼 출생의 비밀이었다. 공민왕과 신돈이 한 여인, 반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한국사에서 금지된 사랑을 꿈꾼 여인들은 구시대로부터 가혹과 응징과 수모를 당했다. 하지만 역사는 끝내 그들이 꿈꾼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랑은 나비효과를 일으키며 역사가 되었다.

역사가 된 사랑 이야기. 사랑은 힘이 세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2019년 한국의 봄을 달군 이슈 가운데 하나가 독립운동가 김원봉의 서훈을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제 김원봉이 의열단의 전설적인 단장이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의 위 대사는 그 기억의 정점을 이룬다. 그러나 김원봉에게 부인이 있었고, 부인이 함께 독립운동 하던 박차정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문 것 같다. 박차정과의 사랑과 결혼이 김원봉의 독립투쟁을 깊고 풍성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1920년대 독립운동은 분열과 시련의 시기였다. 1919년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내외에서 사회주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고,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분열했다. 그러나 약산은 분열과 시련을 딛고 1930년대에 백범 김구와 함께 항일 독립 운동의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중국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금과 인재 고갈로 절치부심하던 약산은 1930년 박차정과 만나며 위기를 극복하고 독립운동의 거목으로 성장한다. 의열단장에서 교육자, 정치가, 군사 지도자로 진화를 거듭하며 전체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박차정은 김원봉의 조력자였을 뿐 아니라, 독자적인 여성 전사로서 조국 광복에 이바지했다. 부부는 서로의 나침반이 되어 독립과 혁명의 길을 함께 열어나갔다.
《시작은 모두 사랑이었다》에는 한국사가 된 여러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색깔과 방법도 제각각이다. 사랑 때문에 어떤 이는 파국에 빠지고 어떤 이는 사랑을 이용해 권력을 탐한다. 시대와 불화한 안타까운 사랑도 여럿이고, 김원봉과 박차정처럼 삶과 대의를 일치시킨 독립운동가의 사랑법도 있다. 무엇이 됐던 사랑은 힘이 세다. 사랑의 역사를 우습게보면 안 된다.


목차


책을 펴내며 옛 사랑의 나비효과

1부 사랑이 역사다
독립운동가의 사랑법 - 김원봉과 박차정

2부 여자, 금지된 사랑을 하다
음란한 반역자냐, 사랑꾼 통치자냐 - 천추태후
열녀문에 목매달린 자유부인 - 어우동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이혼고백장 - 나혜석

3부 남자, 사랑을 이용하다
공주를 사랑한 스파이 - 서동
삼국통일 연애조작단 - 김유신
고려를 무너뜨린 출생의 비밀 - 신돈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 양녕대군
달콤한 냉혹 - 숙종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