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꽃을 보면 열여섯 살 소년처럼/소가지가 없고 가슴이 설렐까/나는 왜 꽃을 보면/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닮은/도깨비 한 놈을 옆에 끼고 살고 싶어질까”( 「나는 왜 꽃을 보면 소가지가 없어질까」)
꽃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니체처럼 살고 싶어지는 것은 꽃이 삶을 추동하는 에로스의 본체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꽃망울을 터트린 “배롱나무의 검은 그림자를/젖빛 유리창에 수묵화 한 폭으로 새겨주는” “물방울관음여신”(「한밤의 수묵화」), “먼 바다에서 꿈틀거리며 달려온 짙푸른 파도의 굽이굽이에/반짝거리는 비늘너울,/달빛너울 옷 입은 물방울여신”(「내가 늘 바다에 가는 까닭은」)과의 접신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발기”한다.
한승원 시인은 자신이 거주하는 ‘해산토굴’ 주위의 꽃들과 교감하면서 삶의 본원적인 힘을 확인하고, 그것을 자신의 에너지로 체화하기를 꿈꾼다. 그것은 삶의 의지와 동질적인 것인데, “눈은 침침하고 다리가 천근만근이지만” “늙은 낙타는” “아직은 인내하며 더 가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지는 이번 시집의 서시 「사막을 흐르는 홀로그램의 시간」과도 일맥상통한다.
고재종 시인은 이번 시집의 해설에서, “활인검의 시, 투망을 하지 않고 별들을 포획하는 시와 삶의 황홀을 얻기 위해 하늘과 땅,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고 에로스와 진리, 삶과 시를 하나로 통할하려는 도저한 의지가 ‘달빛너울 옷 입은 물방울여신’이라는 문학적, 신화적 상징을 만들어 냈다.”고 평했다.
평소 “글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라고 되뇌어온 한승원 작가는 전남 장흥 출신으로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서라벌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미국기리야마환태평양도서상, 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