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에 수선화 무더기로 피었네
어머니의 손은
빈손일 때가 없네
색깔 고운 털실로 짜주신 사랑의 스웨터
난로 불같고
꽃무늬 천으로 만든 원피스
꽃나비 같아 춤추어 보네
하얀 모시 적삼으로 만든 잠자리 날개 옷
조심스러워 걸음걸이도 차분해지네
인견으로 만든 잠옷
땀 흘려도 등짝에 붙지 않아 시원하네
한밤에 소변보러 일어나면
손에는 언제나 뜨게 바늘 들려있고
재봉틀 소리가 끊이질 않았네
어머니의 손, 요술쟁이 손
사랑을 짜서 내게 주시네
내 이마의 주름도 어머니 솜씨네.
-「어머니의 뜨개질」전문
어머니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들려있다. 식솔들을 위해 한밤중까지 일을 했다는 구절을 보면 어머니의 세월도 만만치 않은 인고의 세월이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시인은 어머니가 손수 지은 옷을 입으면 따뜻하고, 춤도 추고 싶고, 걸음걸이도 차분해지고, 땀을 흘려도 시원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어머니의 손을 ‘요술쟁이 손’이라고 노래한다. 더욱이 어머니는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나를 키워주셨지만 결국 지금의 ‘내 이마의 주름도 어머니 솜씨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인생의 뜨개질을 어머니에게서 전수받았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인생을 마감할 나이가 된 지금에서도 어머니에게 기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디 어머니의 인생뿐이겠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구구절절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구에겐가 전하고 싶은 사연 또한 왜 없겠는가?
소식 전하는 걸 잊고 있었네
하고 싶은 말
그리운 마음
못내 아쉬운 시간은 가고
긴 여운 남겨놓은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
긴 버들잎에 적어도
다 쓸 수 없는 애달픈 사연
속내 드러내지 못하고
흘러간 세월
은밀한 옛 추억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 얘기를
수양버들 줄기로 빗어 내리면
다 써지려는지.
-「사연」전문
‘긴 버들잎에 적어도/ 다 쓸 수 없는 애달픈 사연’과 ‘속내 드러내지 못하고/ 흘러간 세월’이나 ‘은밀한 옛 추억/ 가슴속에 묻어둔 사랑 얘기’ 등 ‘구구절절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수양버들 줄기로 빗어 내’려도 다 써질지가 의문스럽다고 자문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반추하며 회한의 정을 느끼면서도, 꽃봉오리로 피어나던 곱디고운 시절에 젖어들기도 한다. 더욱이 지금은 고목이 다 되어버린 어릴 적 함께 노닐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동병상련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
아침 해 고운 빛 가슴에 안고
송이송이 갓 피어난 봉오리들이
산의 보살핌 받아
어느새 고목이 되고
겹겹이 쌓인 세월
빗겨간 우리
고희가 대수랴
숫자에 불과한 것을
희끗한 서리 머리에 이고
격의 없는 대화 뿌듯하구나
응춘아, 옥진아, 정수야, 용희야
서슴없이 부르는 동심인 것을
만나니 정겹고
마주보니 추억 새롭다
한데 어울려 부르고 싶은
고향의 노래
고목에도 다시 잎이 돋아나리니.
-「부춘 연가」전문
고목에도 봄이 되면 잎이 돋아날 것이라고 시인은 믿고 있다. 그렇게 시인은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가시나무’로 살아온 자신의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속내를 살며시 드러내고 있다.
부드러운 내 몸에 가시가 있는 것은
그대를 찌르기 위함이 아닙니다
짐승들의 밥이 되지 않기 위해
가시는 뾰족이 스스로를 지탱합니다
냇가의 제방에 내가 심어져 있는 까닭은
늘 푸르름만을 위함이 아닙니다
그대 위해 꽃 피우고, 열매 맺으려고
이 마음에 심어진 기쁨입니다
열매가 풍성하고 탐스러운 것은
당신을 향한 저의 사랑 전부입니다.
-「가시나무」전문
시인과 조금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건 가까운 혈육이건 지금까지 가시나무의 태도로 삶을 살아온 이유를 토로하고 있다.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오로지 타자를 위한 삶이었다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 시인의 내력 앞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