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은 왜 보수보다 위험하며, 혁명보다 오래 살아남을까?
반동 정신의 뿌리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진수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 유럽의 극우 민족주의, 미국의 신정(神政)보수주의 등 시대착오적 사고로 비웃음을 당하던 반동이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저자는 반동이 그저 무지와 반발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은 편견일 뿐이며, 반동은 혁명 못지않게 시대에 대한 통찰과 정교한 이론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역사의 합리적 진보를 예언한 헤겔 철학에 반발하여 다시 유대인 전통의 원천으로 돌아가려 했던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철학에서 소크라테스의 전통을 회복하려 했던 레오 스트라우스, 근대 정치혁명사를 초월적 질서에 대한 그노시스주의의 반란으로 인식한 에릭 뵈겔린 등 3명의 온건한 반동사상가를 소개하면서 반동 정신의 근원을 추적한다.
마크 릴라가 파악한 반동 정신의 뿌리는 정치적 노스탤지어다. 그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황금 세상이 과거 어딘가에 있었다는 상상과 역사적 신화의 결합물이다. 반동이 위험한 것은 그것이 현재에 대한 파괴적인 절망감 속에서 혁명만큼이나 급진적인 방식으로 역사의 도로를 역주행하여 상상 속 노스탤지어를 향해 돌진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동은 혁명보다 수명이 길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도 과거에 대한 향수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반동주의자들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울타리 바깥에 밀려난 현대인들의 분노와 절망감을 포착하고 그들의 호전적 노스탤지어를 강력한 정치적 동력으로 전환하여 영국의 브렉시트, ISIS, 트럼프의 당선 등 현대 정치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주류 좌파인 묵시록적 심층생태주의자, 세계화 반대론자, 성장 반대 운동가도 21세기 반동주의자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이 책은 종교혁명에서 현대 신자유주의까지 훑어보며 서구 사회에서 반동 사상이 어떻게 발현되어 왔는지, 현실 정치의 범위를 넘어 사회, 문화, 역사적 차원에서 성찰한다. 특히 2015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속에 숨겨져 있는 정치적 반동의 실마리를 끄집어내는 후반부와 미셸 우엘벡의 문제작 《복종》에 대한 비평을 통해 현대 지식인이 어떻게 반동을 수용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분석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