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내 삶을 조망하는 법
내 삶과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나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보게 된다
‘내 삶’과 ‘나’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생은 고단해진다. 타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타인이 될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잊은 채, 판단하고 상처 입힌다. 그리고 결국 함께 아파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거리’와 ‘시간’이다. 조금 멀리 떨어져서 자신을 타인처럼 봐야 하고 타인을 바라볼 땐 시간을 둬야 한다. 그래야만 ‘나는 나를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타인이 걸어 온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내 인생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바라보며 매몰되기보다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적당히 거리를 두고 방관하면, 고립과 소외의 경험마저도 특별한 글감이 되었다. - 본문 중
작가는 ‘거리 두기’의 방법으로 이 세상을 작은 스노볼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스노볼의 세계 안에서는 스스로가 눈송이만큼 작아져서 의심과 불안에도 가볍게 흔들릴 수 있었다. 작고 사소한 존재가 되려 할수록 내면은 점점 더 확장된 것이다. 그렇게 작가는 가벼운 흔들림만으로도 타인과 비교 없이 자신의 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랑이 타인으로 확장된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보고 자주 웃는다. 웃을 일이 없을 때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서라도 웃을 일을 만든다. 사랑이란 얼굴만 봐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오는 거였다. - 본문 중
이제 작가는 비로소 곁에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말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사랑받는 기분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 함께 마음을 포개고 상대를 소중히 대할 수 있는 건 생의 축복이었다. 우리에겐 그 축복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아무 말이나 하면서 그냥 웃다 가도 괜찮다.”
이 작은 행성의 고요한 성실함과
묵묵한 반짝임을 닮을 수 있다면
깜깜하고 적막한 우주에서 거창한 계획이나 원대한 목표 없이 그저 돌고 도는 일을 반복하는 스노볼 형상의 지구, 이 작은 행성의 고요한 성실함과 묵묵한 반짝임을 닮고 싶어졌다. -본문 중
지구는 푸른빛을 내며 묵묵히 태양을 돈다. 아무런 투정도 없고 그렇다고 갑자기 성실하지도 않은 채 제 속도를 지킨다. 조용히 깜빡이고 반짝이는 것들, 고요하게 움직이는 것들만 닮아도 삶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사는 데 기술은 필요 없다. 어차피 그 누구도 해답을 모른다. 그저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작가처럼 그 생각을 글로 쓰고 고치는 것만으로도 지구에서의 역할은 충분하다. 이 책을 읽으면 사는 게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가장 간단한 삶의 법칙은 아무런 의도 없이 지구 바깥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책속으로 이어서]
블로그 글쓰기는 독백을 가장한 대화다. 누구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한 글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일기장이지만, 그 혼잣말은 예기치 않게 누군가에게 닿아 공명한다. 그러면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읽는 사람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게 된다. 정제된 단어와 문장이 아닐지라도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치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아무 말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pp. 215
살아 있는 한 모든 인간은 떠도는 존재가 아닐까. 어떤 사람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능력이 모자라거나 마음 상태가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길을 잃는 방랑과 모험을 자처할 만큼 호기심이 많아서인지도 모른다.
pp. 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