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

  • 하영선
  • |
  • 한울아카데미
  • |
  • 2019-09-05 출간
  • |
  • 528페이지
  • |
  • 160 X 232 X 36 mm /879g
  • |
  • ISBN 9788946071889
판매가

43,000원

즉시할인가

41,710

배송비

무료배송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41,71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어느 때보다 수준 높은 국제정치학이 필요한 시대
한국 국제정치학의 거목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세계정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

세계질서의 주도권을 쥐려는 강대국 간의 각축이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에서 살아가는 탓에, 한국인에게 국제정치는 삶을 지배하는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핵 문제와 일본과의 갈등이 더해진 오늘날, 그런 삶의 무게는 더욱더 무겁게 느껴진다. 미국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모른다 한들 사는 데 별 지장이 없을 자국의 외교나 일본, 중국의 대외 정책이 한국 시민의 삶에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위험 요소가 되곤 한다.
그런데도 국제정치학은 한국에서 별로 인기가 없다. 당장 일본과의 갈등에 대한 접근에서도 여론과 정책을 지배하는 것은 국제질서 속에서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 국제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에 사로잡혀 상대를 적대시하고 편을 가르는 민족주의적 관점이다. 그런 관점 자체가 반드시 문제는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가 놓인 복잡한 상황을 직시할 때 그것이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줄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강대국에 너무나 오래 짓눌린 채 살아온 탓일까, 아니면 하루하루 개개인의 삶이 팍팍했기 때문일까, 극심한 좌우 대립 속에서 국제적 관점에 제약을 받아서였을까. 우리 주변국들의 시야는 자꾸 국경을 넘어 타국의 삶을 간섭하려 드는데, 우리의 시야는 한 세기 넘게 여전히 한반도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상황에 대해 안팎의 전문가들은 책임 소재를 떠나 결국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은 한국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싸워서 이길 힘이 없다면 우리는 또다시 19세기 말, 20세기 초처럼 강대국 국제정치학의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겨낼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도 많은 이가 되뇌는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자. 과연 우리의 선택지에 미움과 갈등, 대결과 저항만 있을 뿐인가. 여기에 오히려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품고 모두에게 더 나은 삶의 길로 이끌라고 말하는 국제정치학자가 있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너무 비현실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어쩌면 그래서 더) 멋진 말이지 않은가. 누구 집이 더 잘사니, 누가 더 잘 싸우니로 유치하게 다투던 친구들 사이에서 딱히 잘난 구석 없이도 왠지 모를 매력으로 인간관계 두루 좋던 어릴 적 한 친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 친구는 싸움을 잘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건만, 이른바 일진들의 괴롭힘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이런 말을 한 국제정치학자는 다름 아니라 한국 국제정치학을 대표하는 거목 하영선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이번에 출간한 『사랑의 세계정치: 전쟁과 평화』(한울엠플러스 펴냄)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책은 그가 50년에 걸친 국제정치학 연구 여정을 총정리하면서 지난 2016년에 서울대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을 상대로 했던 강연을 글로 옮겨 엮은 것이다. 세계정치의 이론과 역사부터 세계무대 속 한국의 현실과 미래까지 그가 연구해 온 주제를 망라한다. 강의 내용에 더해, 그동안 그가 쓴 수백 편의 칼럼과 보고서, 강의록에서 24편을 골라 함께 실었으니, 500쪽 넘는 분량이 놀랍지 않다.
50년의 ‘지적 연애’를 결산하는 책의 제목이 ‘사랑의 세계정치’인 것은 그것이 그가 지난 반세기 동안 풀어내고자 애쓴 필생의 연구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대학교에 들어간 1960년대 후반은 국제적으로 냉전이 정점에 이른 가운데 남북도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경제성장 드라이브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는 가운데 대학가와 야당을 중심으로 3선 개헌 반대 투쟁이 벌어지는 혼란한 상황이 펼쳐졌다. 그런 나라 안팎의 환경에서 힘없는 약소국과 그 민족의 삶에는 적응과 저항이라는 두 갈래 길만 놓여 있는 듯했다. 이런 상황을 바라보며 하영선 교수는 “서로 아끼고 사랑할 가능성을 지닌 인간들이 현실 세계에서는 경쟁하고 미워해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전쟁 상태를 겪게 되는 원인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는 구원의 정치학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품게 됐다. 그 질문에 답하고자 시작된 20대의 지적 고민은 결국 반세기 동안 이어졌다. 이 책은 50년간 이어진 그런 고민의 흔적과 이를 통해 빚어낸 결과물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강의는 1강 ‘사랑의 국제정치학’으로 시작해 10강 ‘꿈의 세계정치학’으로 마무리된다. 첫 강의의 주인공은 그로 하여금 사랑의 세계정치를 꿈꿀 수 있게 한 장 자크 루소다. 하영선 교수는 루소가 말한 자기애와 경쟁애의 인간상은 단순히 개인의 실존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국제정치의 핵심 질문과 맞닿아 있다면서, 경쟁애로 타락한 인간상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내 나라 사랑하기’와 관련한 자기애,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랑하기’와 관련한 동정의 감정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해 루소가 내린 답이 무엇인지 들려준다. 이로써 얼핏 이상적으로만 들렸던 ‘사랑의 세계정치’의 개념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독자들이 먼저 감을 잡을 수 있게 한다.
하영선 교수는 워싱턴대학에서 조지 모델스키(George Modelski) 교수에게서 수학하면서 한반도의 핵확산 문제에 관한 국제정치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핵문제 전문가이기도 하다. ‘사랑의 세계정치’를 꿈꾼 그가 핵문제를 연구하게 된 이유는 “사랑의 세계정치에 대한 고민은 역설적으로 무엇보다 미움의 세계정치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세계질서에서 미움을 가장 극명하게 상징하는 핵무기가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어떻게 축소될 수 있을지를 국내에 관련 연구는 물론 일차자료조차 흔치 않던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따져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하영선 교수는 북한은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 남한과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 남한의 핵무장론은 왜 비현실적인지와 같은 현실적 문제에 대해 그동안 그가 연구하고 고민했던 국제정치의 이론과 역사를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북미 대화가 본격화하기도 전에 그가 내놓은 북핵 문제 전망과 해법에서는 이 분야 최고의 석학다운 통찰력이 묻어난다.
국제정치이론, 전쟁과 평화 연구, 한국의 외교정책론과 외교사 등 국제정치학의 주요 과목을 훑어가는 강의에서는 몇 권의 책으로 나올 법한(실제로 그가 수많은 책으로 냈던) 주제 하나하나를 설명해 나간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만나 한국전쟁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이승만과 김일성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분단체제의 동학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보기도 한다.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함께 읽으며 당시 조선 청년 지식인의 꿈과 좌절에 다가가 보고, 단어 하나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실제로 목숨이 오가던 시절로 돌아가 한국에서 사회과학 개념이 어떻게 정립되기 시작했는지도 알아본다. 또한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미국, 중국, 일본, 북한이 꾸는 꿈은 무엇인지, 그런 꿈들이 실현 가능한지를 따져보며, 그런 꿈에 둘러싸인 우리가 꾸어야 할 꿈은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하영선 교수는 글보다 예술 작품이 자신의 국제정치학적 상상력을 훨씬 더 강하게 자극하기도 했다고 밝힌다. 그래서 마지막 강의에서는 열두 개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시간도 갖는다. 이런 예술 작품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향해야 할 가치다. 하영선 교수는 조선백자를 앞에 두고는 ‘매력국가’론을 설명하고, 다보탑을 올려다보면서 ‘탈근대국가의 복합 모델’을 이야기한다. 이중섭의 그림을 감상하며 ‘미움의 국제정치’를 고찰하고,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 한반도가 처한 현실을 함께 그려본다. 고흐의 그림을 통해 국제정치의 현실과 이론의 조화를 꿈꿔보기도 하며, 사라세노의 설치작품에 올라타 ‘네트워크’를 몸으로 체험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열 번의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함께 진행한 토크콘서트에서 하영선 교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오히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민족주의를 포함해서 민족주의 갈등이 더 커지고 있어요. 그리고 인공지능이 초지능으로 발달하면 경쟁애적 민족주의와 연결돼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할 위험성이 있죠. 한일 그리고 한중의 싸움이 일국 중심의 민족주의로 커지면 결국 더 큰 손해를 겪는 것은 우리예요. 따라서 우리는 각생이 아니라 공생을 위해 공진해야 해요. 대국들은 각진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대국들은 공진해야 살 수 있으므로 복합적 대응이 필요해요. 닫힌 민족주의를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그들을 열린 민족주의로 끌고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단순히 중화민족보다 더 큰 아시아태평양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도록 해야겠죠. 중국이 중심이고 한국, 일본, 아세안은 변방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여러분도 한국의 젊은이로서 중국의 젊은이들이 꿈을 더 크게 꾸도록 만들어야 해요. 앞선 강의에서 국제정치학회의 국제회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중국과 일본보다 작은 나라인 한국이 오히려 큰형 입장에 서서 모두 함께 정신을 차려, 미국이나 유럽과 싸울 게 아니라 21세기 세계질서를 복합적으로 재건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해요.” _ 485~486쪽

세계정치에서 미움은 현실이고, 사랑은 이상이다. 그는 국제정치학자로서 현실을 통찰하는 것과 이상을 꿈꾸는 것 모두 놓칠 수 없는 과제였다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이 책의 3분의 2 정도는 현실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데 할애되고, 나머지 3분의 1은 그런 미래를 위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 설명하는 데 할애된다. 요컨대, 하영선 교수는 우리가 지난 세월 미움의 국제정치 속에서 겪은 고난을 직시하되, 또다시 그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예전처럼 더 닫아걸고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나아가 사랑의 세계정치를 이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우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세계질서의 변화를 바로 읽고, 우리의 능력과 자원을 최대한 개발·활용하면서, 싸워서 누르고 이기고 싶은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함께하고픈 매력적인 존재로서 정체성을 다져,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주변국 모두와 더욱더 복합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얼핏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맞닥뜨린 고통스러운 역사를 떠올려볼 때, 그리고 여전히 군사적·경제적으로 약자인 우리의 현실을 생각해볼 때, 그때와 무척 닮은 현재의 국내외 환경 속에서 그때와는 다른 성숙한 사회적 역량을 바탕으로 이제 우리가 더는 꿈이 아닌 현실로 가져와 세부적인 실현 방안을 모색해 봐야 할 지적이 아닐까.
국제정치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교양으로서 요구되는 시대에, 그렇다고 모두에게 국제정치학 전공 서적을 권할 수는 없을 터. 한국의 국제정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가 국제정치의 이론과 현실을 친절한 말로 엮어 들려주는 이 책은, 분노와 자기연민의 감정을 잠시 내려놓은 채 세계정치의 흐름을 읽고 우리가 놓인 길과 가야 할 길을 다시금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귀한 지침서라 할 만하다.

[책 속으로 이어서]
일본의 주요 역사학자들과 경제대국 일본의 학술 지원을 받은 해외 학자들은 일본의 국내 역량이 상당히 축적돼 있어서 조선이나 중국과 달리 서양의 문명표준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나 핵심적인 이유는 전통적 동아시아 천하질서에서 중국이 중심에 있었고, 청대의 조선은 스스로 소중화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득권 세력이 문명의 표준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새로운 문명표준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데 있어요. 일본은 스스로를 문명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일본을 문명의 중심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 일본은 천하질서의 주변국으로 상대적인 기득권이 중심국가보다 적었기 때문에 천하질서의 주변에서 국제질서의 주변으로 옮기는 일이 상대적으로 수월했죠. 물론 동아시아 삼국 간에 국내적인 여건의 편차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 역량과 위치에 따른 영향이 훨씬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_ 290~291쪽

『서유견문』을 읽으면서 내가 특별히 주목했던 것은 14편의 ‘개화의 등급’이었어요. 유길준은 개화론자니까 서양 문물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었을 것으로 얼핏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자는 ‘개화의 등급’에서 직설적 표현으로 자신의 문명관을 밝히고 있어요. 전통 없는 근대를 추구하는 ‘개화의 죄인’과 근대 없는 전통을 추구하는 ‘개화의 원수’, 전통의 긍정적 측면을 버리고 근대의 부정적 측면만 받아들인 ‘개화의 병신’이 동시에 존재하던 19세기 조선의 현실 속에서 유길준은 당면한 최대의 과제를 단순한 서양 문명의 소개가 아니라 전통과 근대의 갈등이 아닌 조화, 더 나아가 복합화라고 강조했어요. _ 308~309쪽

군사력이나 경제력 기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인 한국의 젊은이들이 21세기의 시공적 상상력에서는 아태의 젊은 세대들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시공적 차원에서 동양의 과거에만 머물러서도 안 되고 맹목적으로 서양의 미래를 향해서 달려도 안 돼요. 서양의 탈근대로만 질주한다면 유길준이 ‘개화의 병신’이라고 비판하던 잘못을 범하게 될 거예요. 그렇다고 동양의 과거에만 머무르면 ‘개화의 죄인’이 되겠죠. 따라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동서고금의 삶을 복합적으로 품을 수 있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해요. _ 332쪽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다시는 지역질서를 마음대로 설계해서 미국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일본의 군대를 폐지하고 재벌을 해체하는 동시에 자위를 넘어서는 국제정치와 군사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루지 못하도록 지적 통제를 가했어요. 그래서 일본의 국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와 안보 전문가가 제대로 성장하기 어려웠죠. 인문사회 분야를 전공한 최우수 인력들이 학계보다는 기업, 관료, 언론계에 우선적으로 진출했어요. 따라서 일본은 미국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국제정치 및 안보 분야에서 학계나 싱크탱크를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새로운 질서를 건축해야 하는 세월이 오면 자체 설계력이 없는 소뇌나 무뇌 국가는 어쩔 수 없이 건축 설계를 주도하는 대뇌 국가에 기생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죠. 21세기 청사진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일본이 현재 겪고 있는 커다란 한계예요. _ 365쪽

일본의 대표 포털인 야후 재팬에서 일본의 꿈을 쳐보면 중국의 대표 포털인 바이두에서 중국몽을 쳐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별로 내용이 없어요. 상대적으로 현재에 만족해서 일본 사람들이 미래를 꾸미는 데 시간을 덜 쓴다고 할 수도 있죠. 그나마 작년 4월 29일 미국 상하 양원에서 했던 아베 총리의 연설이 21세기 일본의 꿈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즉, 국내적으로는 적극적인 평화를 모색하고, 국제적으로는 미일 관계를 ‘희망의 동맹’으로 만들겠다는 거예요. 조심할 것은 일본이 사용하는 적극적 평화라는 개념은 기존의 평화 연구에서 사용하는 적극적 평화와는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거죠. _ 374쪽

20년 이상 거미줄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사라세노는 거미 전문가, 건축가, 설치기술자들과 3년 동안 협력해서 미술관 5층 위의 높은 유리 천장 밑에 거대한 쇠줄 그물망을 쳤어요. 관람객들은 이 그물망을 단순히 쳐다보는 게 아니라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개념사대회에 참석했던 10인이 한 조가 돼서 그물을 탔는데 네트워크에 관한 책을 수십 권 읽은 것보다 훨씬 실감났어요. 왜냐하면 네트워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거미가 돼야 하는데 실제 거미가 되긴 어렵잖아요. 그런데 우주복 같은 복장과 신발로 무장하고 40미터 상공의 거미줄을 걸어 다녀보니까 두 가지 느낌이 들었어요. 우선 열 명이 함께 거미줄을 타면서 흔드니까 혼자서는 균형을 잡기 어려워요. 네트워크 균형은 세력 균형보다 훨씬 복잡한 거예요. 그런데 내가 쉽게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흔들려서 완전히 공포에 질릴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40미터 공중에 있다는 불안감이 없었어요. 그물이 촘촘하게 짜여 있어서 줄이 아니라 마치 천 같은 평면 위를 걷는 느낌이었죠. 세력 균형이 흡사 외줄타기의 균형 잡기 같다면, 그물망 균형은 그네타기의 균형 잡기 같아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 체험은 네트워크를 생각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됐어요. _ 392~393쪽

스페인의 세계적 건축가 가우디는 1882년부터 1926년까지 40여 년 동안 대표작인 ‘성가족 성당’을 완성하는 데 모든 정성을 쏟았어요. 그가 전차에 치여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인 2026년을 준공 목표로 하고 있는 성당의 건축사를 되돌아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국제정치의 미래사 연구에서 중요한 것이 과학보다는 미학이라는 거예요. 1880년대에 가우디가 깔던 성당의 초석을 보고 2026년에 완성될 아름다운 성당을 미리 그릴 수 있게 해준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니라 미학적 판단이에요. 마찬가지로 동아시아 질서 건축이 얼마나 바람직하게 완성될 수 있는가를 미리 알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연과학적 시나리오 전망이 아니라 흡사 떡잎을 보고 거목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판단할 수 있는 미학적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_ 395~396쪽

상상력을 발휘해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공간은 아시아태평양이에요. 흔히 공간 활용의 고민을 남북통일에서 시작하지만, 21세기 삶터를 제대로 마련하는 데 최우선순위로 두기에 남북은 너무 좁아요. 세계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포위돼 있는 통일 한국은 분단 한국보다는 분명히 낫지만, 여전히 답답한 운신을 해야 해요. 그동안 동아시아라고 불러왔던 우리 삶터를 아시아태평양으로 넓혀서 부를 필요가 있어요. 물론 이름이 자동적으로 현실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꾸미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치죠. 동아시아의 원래 뜻은 아시아의 동쪽이잖아요. 중국에는 동, 서, 남, 북의 아시아가 있고, 그중에 한국이나 일본은 동아시아에 포함돼 있죠. 한국도 17세기 명청 교체기 이후 소중화라는 표현을 쓰면서 우리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본 적이 있어요. 21세기 한국은 서쪽의 미국과 동쪽의 중국을 함께 품고 북쪽의 러시아와 유럽 그리고 남쪽의 동남아, 인도, 호주를 포함하는 아시아태평양 질서를 건축할 필요가 있어요. _ 397~398쪽

군사 무대에서는 힘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한국은 미중의 갈등을 심화시키지 않고 긴장을 완화시키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경제 무대에서는 경쟁과 협력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손익계산을 해서 공동 번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 나가야 해요. 그리고 환경, 문화, 지식, 통치 같은 신흥 무대에서는 중견국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죠. _ 400쪽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제재, 억지, 관여, 자기개혁의 4중의 복합적 노력이 필요해요. 우선 핵무기 생산 비용의 극대화를 위해 국제 제재를 통한 지속적인 압박은 불가피하죠. 다음으로는 핵무기의 효용성을 무효화하기 위한 억지 능력의 강화가 필요해요. 방어가 상대방의 공격을 사후에 막는 것이라면, 억지는 상대방이 감당할 수 없는 보복의 위협으로 공격을 사전에 막는 거예요. 그다음으로 요구되는 것은 비핵화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관여로 진정성 있는 체제 보장과 지구적 경제 지원을 이끌어내는 것이죠. 마지막으로는 무엇보다도 비핵화를 결단하기 위한 북한의 정치적 자기개혁이 중요해요. 이런 4중적 노력이 관련 당사국들의 공조 속에 복합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 때 비로소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요. _ 402쪽

복합화 시대에 적합한 연기는 자신의 삶을 위한 자기조직화를 끊임없이 하면서 타자와 공진하는 거예요. 이것을 내 언어로 표현하면 사랑이에요. 루소는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결국 나도 살고 너도 살고 그래서 우리도 사는 가운데 싹트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너를 위해 내가 사는 것이 사랑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루소적인 사랑은 나와 네가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 살아서 우리 모두가 살아남는 거죠. 즉, 공생적인 관계가 이뤄지는 거예요. _ 407쪽

첫 강의를 사랑의 국제정치학에서 시작했지만, 이런 꿈이 현실화되는 것은 쉽지 않죠.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50년 동안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미움과 폭력의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데 썼어요. 왜냐하면 근대 국제정치 드라마의 개별 국가들은 국가 이익을 위해 치열한 힘의 각축을 벌이면서 나와 네가 우리가 되어 함께 사는 사랑의 국제정치보다는 생존의 딜레마에 직면하게 되는 미움과 폭력의 국제정치를 겪게 될 위험성이 더 크기 때문이었어요. 과거 의존적인 미움의 국제정치의 현실을 잊지 말아야겠지만, 미래 의존적인 사랑의 세계정치의 꿈을 버려서는 안 되죠. 현실은 나와 네가 배타적인 경쟁 속에서 살고 있지만, 미래에는 자기애와 연민을 결합해 나와 너를 포함하는 우리가 함께 사는 복합질서를 건축해야 해요. 그리고 이런 삶을 한반도,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지구 공간에서 펼쳐나가는 꿈을 한 학기 동안 여러분과 함께 꾸고 싶었던 거죠. _ 408~409쪽

동아시아는 유럽에 비해 뒤늦게 근대 국제체제의 청춘기를 맞이해서 협력보다는 갈등을 겪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근대적 정체성을 넘어선 복합적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해야죠. 당장 근대에서 복합으로 바로 갈 수는 없겠지만,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이 동시에 아태인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까가 중요해요. …… 그러려면 특히 한중일이 서로 싸우지 않은 역사적인 체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각생의 미움의 역사만 강조하고 공생의 사랑의 역사에는 무관심해요. 그러나 새로운 지역 정체성 형성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21세기의 문명사적 변환에 뒤쳐질 거예요. 그런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은 21세기 복합문명의 새로운 표준으로서 유럽연합이라는 중요한 실험을 하고 있는 셈이죠. 유럽연합은 현재 동아시아보다 생산성은 단기적으로 떨어지지만, 복합성의 측면에서 보면 장기적인 선행지표로서 주목될 만해요. …… 현실적으로 50개국의 연방으로 구성된 미국이나 28개국의 유럽연합과 분단 한국이 각기 하나의 정치단위체로서 한 무대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죠. _ 487쪽

역사의 숙제는 인내심을 가지고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군사국가, 경제국가, 국민국가라는 근대국가 건설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데 역사적으로 실패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밀린 어제의 숙제와 눈앞에 다가온 내일의 복합국가 건설이라는 탈근대 숙제를 동시에 할 수밖에 없어요. _ 495쪽


목차


강의를 시작하며
1강 사랑의 국제정치학
2강 세계질서와 한반도의 핵무기
3강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4강 한국 현대 외교정책론
5강 현대 국제정치이론
6강 복합세계정치학
7강 한국 외교사
8강 한국 근대 사회과학 개념사
9강 동아시아 질서 건축사
10강 꿈의 세계정치학
11강 토크콘서트
강의를 마치며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