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애 시인의 시집 『분홍 당나귀』가 시작시인선 0299번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2004년 『시인세계』로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0년 첫 시집 『손톱』을 출간하며 방황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의 근원적인 비극성과 인간 타락의 근원이자 무수한 삶의 비극을 낳는 욕망의 문제에 천착한 시 세계를 보여 준 바 있다.
유미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분홍 당나귀』는 이전 시집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설과 신화를 모티프로 한 시적 상상력을 통하여 탐미적耽美的 경향의 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가운데, 이전보다 선연해진 시적 이미지와 삶에 밀착된 시어들을 통해 섬뜩할 만큼 날 선 감각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어둠을 희망으로 환치하는 주술적 언어는 더욱 농밀해져 인간이 겪게 되는 혼돈과 불안, 고독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다 섬세하게 그려낸다.
해설을 쓴 고봉준 문학평론가는 이번 시집에 대하여 “오래된 세계를 응시하는 원초적 시간/풍경에의 끌림과, ‘예술’을 통해 현실세계를 뛰어넘는 도약/비상에의 의지라는 이질적인 두 세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이는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자아의 해체―재구성’이라는 맥락과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이번 시집의 상당수 시편들에서 ‘예술’이 시 세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비유 체계로 기능하고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유미애의 시에서 자연적 대상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관념의 객관적 상관물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요컨대 시인은 기존의 언어 체계와 질서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자아의 해체―재구성’이라는 시적 지향점에 한 발짝 다가서며, 우리를 언어의 경계 너머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절망의 샘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함축적 의미는 맥락과 반복의 양상 속에서 닿을 듯 말 듯 우리의 오감과 정서를 자극한다. 우리는 삶에 더욱 밀착되어 있고 더 치열하다고 할 수 있는 시인의 주술적 언어를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듯, 익숙한 현실의 울타리로부터 벗어나 새롭고 낯선 세계로의 도약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