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에도 ‘해방’이란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야 했다. 일본사회로부터의 억압?차별과 재일조선인사회 내부의 대립 속에서 이전과 다름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재일조선인 작가들은 펜을 놓지 않았다.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조선의 건설에 대한 희망과 이전까지는 쓸 수 없었던 식민지기의 비참한 사건, 동포들의 현상을 일본어 혹은 조선어로 표현하였으며, 동시에 조선어 식자교육과 민족교육에 분주했다. 그때까지 억압받고 있었던 민족문화의 발굴 혹은 새로운 민족문화의 창조는 이들의 역할이었다. ‘해방’ 직후의 재일조선인문학은 탈식민지화운동이라는 성격을 필연적으로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70여 년 동안 ‘재일조선인 문학사’가 ‘문학사’로서 쓰인 적은 없었다.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소리 없는 목소리의 폴리포니』는 ‘재일조선인 문학사’가 쓰이지 못했던 원인을 이언어성(二言語性)에 착목하여 분석한다. 자료수집과 구술청취를 통해 그 역사를 짚어가며, 재일조선인들의 표현행위가 일본어와 조선어의 다양한 레벨로 혼합되어 가면서 ‘해방’ 직후부터 연면히 계속되어 왔음을 밝힌다. 그것은 청산되지 않은 일본 식민지주의와 조선의 남북분단이란 상황 속에서 살아온 재일조선인들의 정신사를 더듬어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문학사에서 재일조선인 문학사가 다루어지지 않았던 여러 원인 중 하나는 1945년부터 1960년 후반까지, 즉 1세대의 문학활동이 불가시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일본매체에서 활약하며 일본사회로부터 인지되었던 작가가 극히 드물었다. 설령 재일조선인들의 손으로 발표매체가 만들어져도 자금난이나 방침전환 등에 의해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일본의 공적기관에 보존되지도 못한 채 흩어지고 사라져 버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1세대와 2세대 여성, 남이나 북의 국가를 지지하는 사람, 중립파, 구‘친일파’, 망명자, 밀항자, 수용소에 붙잡힌 사람, 북이나 남의 ‘조국’으로 이동한 사람 등이다. 이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다양한 속성을 띠며, 더욱이 냉전구조에 편입되어 서로 반목해 온 획일적인 집단이 아님을 반영한다. 이러한 특징도 재일조선인 문학의 전체상을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게 한 원인이다.
그들의 표현활동의 단편을 재일민족단체기관지, 기관지(機關誌), 동인지 등에서 찾아내어, 그것을 짜 맞추어가며 일본어와 조선어로 된 다중적인 목소리를 ‘재일조선인 문학사’로서 구축·제시했다. 그것은 국가에 의한 ‘정통성’의 보증 같은 것과는 무연한 비공식적인 문학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 문학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학사’, ‘일본 문학사’라고 하는 국가 문학사와는 다른 독자적인 문학사라 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 문학사’를 위하여-소리 없는 목소리의 폴리포니』는 일본과 남/북조선이라는 국민국가의 주류 문화 가운데에서 가시화되지 않았던, 그러나 확실히 존재하고 있었던 재일조선인들 고유의 표현행위의 궤적,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목소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