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문예연구≫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전홍준 시인의 첫 시집. [눈길]에는 바다와 파도의 허기를 뼈에 새기는 시편 50편이 묶여 있다. 그 허기는 곧 삶의 허기일 터, 그러나 요란한 수사와 수다가 없다. 메시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시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사물과 사람을 보듬다가 마지막 한마디 넌지시 건네고 빠진다. 그래서 여운이 깊다. 이처럼 말없이 많은 말을 건네는 재주를 지니고 있는 전홍준 시인은 첫 시집에서 담백하고 순정한 서정의 결이 무엇인지, 단순한 힘의 미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안면도에서 태어나 자랐고, 줄곧 고향 언저리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는 전홍준 시인에게 섬과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다. 누군가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섬과 바다가 전홍준 시인에게는 엄혹한 현실인 것이다. “바다로 생을 번 신발이/ 이 둠벙 속으로 떠밀려 와서/몸 대신 가라앉기도 했다”(‘안면도’)라거나, “고드름 달린 언 살이 어느새 녹는지/ 햇볕 다녀가는 소리”(‘겨울볕’) 등에서 보듯이 춥고 시린 겨울 이미지, 눈[雪]의 서정이 시집 전편에 녹아 있다.
또한 물과 바람으로 표상되는 그의 시쓰기는 상처의 길을 따라 눈 뜨고 찾아가는 길이다. 즉 ‘눈길’이다. 비린내 나는 선창가, 기름에 덮여버린 바다, 불빛도 희망도 땡겨 쓴 선급금도 쉴 날 없이 몸으로 버는 경매사, 빚에 시달리는 어촌사람들, 전국 각지에서 고향을 등지고 살아야 하는 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타자들을 향한 시선은 다 현지가 되고 마음의 유통이 되고 있다.
유용주 시인은 추천사에서 “오랫동안 바다를 바라보고 아예 물빛을 닮아, 바다가 되어버린 사람, 스스로 바닥이 되어버린 사람이 여기 있다.”고 전홍준 시인을 말하고, 이민호 평론가는 해설을 통해 전홍준의 시쓰기를 고고학에 견주며 “물에 잠기고 바람에 휩싸였고 파도에 쓸려갔던 이름 없는 사람들의 묻혀버린 삶의 조각, 깨어진 사금파리를 발굴하는 일이며 호명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