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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시몬 베유

나 시몬 베유 여성, 유럽, 기억을 위한 삶

  • 시몬베유
  • |
  • 갈라파고스
  • |
  • 2019-08-05 출간
  • |
  • 332페이지
  • |
  • 145 X 215 mm
  • |
  • ISBN 9791187038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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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시몬 베유를 팡테옹에 안장하기로 한 것은 나 혼자만의 결정이 아니라 모든 프랑스인의 뜻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당신과 당신의 투쟁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역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싸움이 우리 혈관에 계속해서 흐르기를 바랍니다.
- 제25대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이자 20세기의 목격자, 여성의 권리와 유럽 통합을 위해 싸운 투사
프랑스가 가장 존경하는 여성 정치인, 시몬 베유 자서전

1967년에 피임 허용 법안이 생긴 가톨릭 국가 프랑스에서 그로부터 몇 년 되지 않아 임신중단을 허용하자고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여성은 거의 없고 자그마치 481명이나 되는 남성 의원이 자신을 둘러싼 의회장에서 여성의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청하는 연설을 했던 시몬 베유가 유명해진 계기가 바로 이것이었다. 시몬 베유가 보건부 장관으로서 통과시킨 임신중단에 관한 법은 ‘베유법’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일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굵직한 경력이었지만 이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 이리나 보코바는 시몬 베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몬 베유는 20세기의 목격자이자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였다. 그는 여성의 권리와 유럽 건설을 위해 싸운 투사였다. 나치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그는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라는 끈질긴 다이몬에 대항하는 방어벽으로서 역사적 지식을 알려왔다. 전쟁이 그에게 영원한 흔적을 남겼지만, 베유는 평화의 도구로서의 유럽을 건설하기 위한 초기 기획자이자 주요 공헌자였다. 강한 신념을 가졌던 그는 프랑스의 여러 정부에서 장관직을 역임했고 여성의 권리에 대한 주요한 발전을 이끌었다. 우리는 그에 대하여 빚을 지고 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같이 느껴지는 깊은 고통과 상처 가운데에서도 스스로를 거스르면서까지 옳다고 믿는 대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은 그의 일생을 옮겨내면서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베유뿐 아니라 그 이전까지 접했던, 삶에 닥친 고난을 넘어 옳다고 믿는 곳으로 갔던 인물들의 삶에 대한 뒤늦은 독후감이기도 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은 아우슈비츠 생존자, 수감자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발로 뛰었던 교정행정국의 판사, 임신중단 법안을 통과시킨 보건부 장관, 유럽의 화해와 통합을 위해 싸운 유럽의회 최초의 선출직 의장, ‘20세기의 목격자’라는 수식어의 주인공,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 정치인 시몬 베유가 진솔하게 써내려 간 자서전이다. 전쟁이 한 개인의 인생에 어떤 명암을 새겨넣는지를 보여주고, 1927년생 여성이 시대와 만나며 겪는 아이러니와 사랑을 간접경험하게 해주는 이 책의 모든 이야기 가운데 내내 빛나는 것은 삶의 면면을 진심으로 껴안는 시몬 베유의 태도다. 역사의 고통 속에서도 다시는 같은 고통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데 온 힘을 다하는 그 숭고한 태도는 마치 영웅의 이야기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여럿을, 약자를, 인류를 위해 투신한다면 우리는 그를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이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영웅이 우리 곁에 얼마나 가까이, 온 힘을 다해서 서 있는지 보여준다. 시몬 베유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삶에 대한 용기를 불어넣는다.


‘유대인’, ‘여성’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치열한 인생

시몬 베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유대인, 여성이라는 정체성이었다. 프랑스에 동화된 세속 유대인이었기에 유대교 의식도 몰랐지만, 시몬 베유와 그 가족들은 반유대주의의 광기를 피해가지 못했다. 나치의 서슬 퍼런 감시의 눈길 아래 가짜 신분증을 믿고 길거리를 돌아다닌 것에 대해 시몬 베유는 “솔직히 말해 철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우슈비츠 생활은 그의 삶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팔에 새겨진 수형번호, 소식도 듣지 못한 채 죽임 당한 아버지와 오빠, 고된 행군 끝에 티푸스로 숨진 어머니,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아우슈비츠에서 함께 살아남은 언니마저 교통사고로 잃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곁을 떠나는 고통 속에서도 시몬 베유는 삶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항상 간직하고 있던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정치대학에 등록했을 때 학생들은 그를 두고 수군댔는데, 그가 유대인 생환자이기도 했지만 ‘여학생’이기 때문이었다. 판사가 되기 위해 검찰청 보좌관에 수습으로 지원했을 때는 이런 소리를 들었다. “기혼녀잖아요! 아이가 셋에다 젖먹이도 하나 있고! 게다가 남편은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할 거고! 어째서 일을 하려는 거요?” 판사가 되어 가석방 위원회를 주재하려 할 때 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뭐? 여자에 유대인? 그러면 받아들일 수 없네!” 여성이어서 겪었던 차별에도 불구하고 시몬 베유는 자신이 여성이었기에 받은 것들이 많다고 말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에게 호의를 베풀어 조금 더 처지가 나은 다른 수용소로 옮길 수 있게 해준 여성이 없었다면 그는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살면서 여성으로부터 받았던 혜택을 다시 나누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유럽의 통합도 그가 목표했던 것 중 하나였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라는 그의 이력은 유럽 통합이라는 이상에 잘 어울리는 상징이었다. 시몬 베유는 의장 취임 연설에서 평화, 자유, 사회진보를 도전과제로 내걸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각 국가의 이익을 넘어 보다 큰 대의 아래 모이기를 바랐고, 아프리카나 동구권에서 벌어진 전쟁이나 학살 등에 대해 유럽이 적극적으로 나서 평화를 위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활동에 적개심을 표했던 곳은 다름 아닌 조국 프랑스였다. 시몬 베유는 프랑스 대표 의원이자 의장이었지만, 프랑스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럽은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원을 약속한 로메 협약을 체결한 바 있었고, 시몬 베유는 심각한 상황에 처한 아프리카에 인도적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예산을 늘리고자 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 의견에 반대하며 시몬 베유를 설득하고자 했으나 그는 자신의 역할이 이런저런 정부 간에 갈등이 발생할지언정 유럽의원들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말하며 이를 거절했다. 조국을 배신했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시몬 베유는 자신의 원칙을 흔들림 없이 고수했다. 후에 프랑스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정치인으로 시몬 베유를 꼽게 된 것에는 그의 단호한 의지와 꼿꼿한 성정이 크게 작용했다. 유럽의회 의장 안토니오 탄자니는 시몬 베유를 “유럽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유럽의회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우리 시대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했다.


시몬 베유의 인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한 명이 일생에 한 번 하기에도 어려운 굵직한 요직을 여러 차례 맡은 위인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이 한 번 겪는 삶에서 일어나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참상을 겪어낸 시몬 베유는 깊은 고통과 상처 가운데에서도 옳다고 믿는 대로 움직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판사를 거쳐 프랑스 여러 정부에서 보건부와 도시부 장관을 맡았고, 유럽의회 의장, 헌법평의회 위원 등 화려한 정치 경력을 쌓았다. 유럽의회 브뤼셀 지부에는 시몬 베유 광장이 있으며 프랑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이 있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서 받은 훈장과 메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특출난 이력에 더해지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라는 고난과 시련의 경험은 시몬 베유의 입지전적인 생애를 한층 완성된 서사로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이 책을 옮긴 이민경은 전기 속 인물들이 겪은 고난을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 위한 필연적인 관문쯤으로 받아들여 왔음에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말한다. 고난이 끝나도 그 시절의 기억은 끊임없이 머릿속을 배회하고 가족을 잃은 슬픔과 그리움은 그를 떠나지 않으며 울분과 피로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삶에 닥친 고난을 넘어 옳다고 믿는 곳으로 갔던 시몬 베유에게 더욱 특별하고 깊은 존경을 보내게 되는 이유다. “어려운 운명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낙관적이다. 인생은 나에게 시간이 흐르면 진보가 항상 승리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길고 느리다 해도 결국에는 그렇게 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는 시몬 베유의 말은 그가 살아온 인생 때문에 더 진정성 있게 들린다. 2017년 6월 30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베유는 프랑스 국민들의 청원으로 2018년 7월 1일에 팡테옹에 안장되었다.

“여성의 권리와 유럽 통합의 이상에 헌신한 시몬 베유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로서 시몬 베유는 놀라운 커리어를 쌓았다. 보건부 장관으로서 많은 여성들의 삶을 변화시킨 시몬 베유는 유럽의회 최초 선출직 의장이었으며 헌신적인 유럽연합 지지자였다. 그의 용기와 결단력은 모든 여성과 미래 세대를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유럽평의회 평등 및 차별금지 위원회 위원장, 엘레나 첸테메로)


목차


1. 니스의 아이
2. 예고 없이 덮친 그물
3. 죽음의 수용소에서
4. 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
5. 교정행정국의 특이한 판사
6. 여성 장관의 과업
7. 유럽 통합의 길
8. 다시, 프랑스 정부로
9. 법의 조감도
10. 앞으로의 움직임
11. 의인의 빛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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