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문학의 전통담론과 현실인식 담아
전후, 전통담론, 서정을 경유·횡단하는 전후적 감수성의 체화는, 2019년 오늘에도 여전히 긴박한 요청이다. 분단상황이 추동한 단절과 결핍의 감각을 적시하는 일은, 전후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숙명이라 할 것이다. 이때 서정은 이미 태도이며, 지향성이다. 서정문학의 전통담론과 현실인식 등에 관한 고찰은 국가주의를 장악하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의 폭력성을 착목하는 일이며, 더불어 세계 시민으로 정위하기 위한 분투라 하겠다.
문학 텍스트를 통해 재현된 전쟁과의 조우
한국의 현대사는 식민지 근대와 한국전쟁에서 추동되었으며, 이는 제국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산업화 이후 찬란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념대립과 분단상황은 오늘의 역사를 당대로 되돌리고 만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전쟁은 어렴풋한 위협의 기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역사를 학습함으로써 전쟁은 얼마큼은 경험되며, 문학 텍스트를 통해 재현된 전쟁과 조우함으로써 비교적 구체적 형상으로 정위하게 된다. 이때 전후 문학은 전쟁과 그것이 남긴 일상의 핍진성을 토대로 구성된다. 그러니 전후적 감수성이라고 할 때, 전쟁 상황과 더불어 전쟁 종결 이후에도 지속되는 심리적 고통까지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식민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사는 무력한 한반도의 좌표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붕괴되고 분열된 민족을 어떻게 재구성할지, 패배주의를 극복하고 이를 봉합·타개해 나갈 방책을 모색해야 했다. 아울러 세계질서에 부응하는 민주국가이자, 부강한 국민국가를 건설하기에 주력했다. 그런 점에서 전후 문학은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 증언할 것인지, 또 전후를 어떠한 시선으로 탐색할지 등에 대한 고심으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전후 전통담론은 국가주의 토대에 좌정한다
전후 전통담론은 국가주의의 토대에 좌정한다. 서정문학에서의 전통 역시 이에 복무하기에, 전후의 좌절을 극복하고 새로운 국가 건설과 민족 정체성을 재규정하는 데 기여해야 했다. 전후에 구성된 전통은 원형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임에 착목해야 한다. 전후라는 시대적·정치적 좌표에서 분단상황이 긴박하게 요청한 국가 만들기는 새로운 국민의 문화적 정체성을 조형하는 과제를 부여하였다. 이에 일단의 문화를 전통으로 구성하는 데 당시의 문화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문학 역시 반쪽 민족으로도 충족할 수 있는 국민국가의 전통을 새롭게 구성하는 데 열중했던 것이다.
이때 서정은 고고한 정신세계의 표출이나 자연에 투영된 섭리와 인생의 원리를 탐색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서정만으로도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성을 독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후 맥락에서 서정이 점유한 좌표는, 전통을 구성하기 위한 정치적 요청에 닿아 있으며 더불어 전후적 감수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적 응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서정은, 특히 전후 구성된 서정은 현실로부터 괴리·이탈한 산물이 아니라 가장 국가적이고 정치적인 토대에서 배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서정은 그것 자체로 이미 태도이며 지향성이다. 그렇기에 서정에는 이미 현실에 대응하는 일방식이 발화되어 있는 것이다. 조지훈, 서정주, 박재삼의 시업을 통해서 당대의 현실인식과 주체구성 양상, 전통담론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성과 시적 구성, 그리고 시의 공간과 서정의 원리 등을 추적할 수 있었다. 더불어 이호우와 이영도의 시조를 통해서 그간 시조장르에 대한 고착된 이미지와 편견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전후를 경유하는 시조장르의 현실인식 양상 또한 고찰할 수 있었다. 오늘의 우리는 여전히 ‘전후’를 산다. 한국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제이다. 과거와 현재를 종단하고 횡단하는 서정문학의 감수성은 미래가 딛고 서야 할 역사적 토대를 구성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한국전쟁이 야기한 전후적 감수성
국경의 위기는 비단 국경을 횡단하는 이방인들에 의해서만은 아니다. ‘안전’한 주권을 획득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은 결국 세계-난민으로 유령화되고 만다. 이들 존재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추동한다. 더불어 한국의 분단상황에 대한 ‘다른’ 인식과 이해의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한다. 즉 통일에의 강박이나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인 국가 구성을 통한 구성원의 교류가 필요하다. 국경을 횡단하는 ‘지구인’으로서의 세계-시민의 요청은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한국전쟁이 야기한 전후적 감수성은 이러한 토대에서 새롭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며, 그리할 때 비로소 현재적 좌표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