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필자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1월마다 대법원 민사실무연구회에서 그 직전 연도의 민법 판례 동향을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각각의 발표문은 “2016년 민법 판례 동향”(민사법학 제78호, 2017년 2월), “2017년 민법 판례 동향”(서울대학교 법학 제59권 제1호, 2018년 3월), “2018년 민법 판례 동향”(서울대학교 법학 제60권 제1호, 2019년 3월)으로 게재되었다. 그 내용을 약간 수정하고 편집하여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에 담긴 개별 판결들에 대한 분석은 대체로 그 판결들에 대한 평석이 거의 존재하지 않던 시점에 이루어졌다. 그 이후 여러 판결들에 대해 다른 분들의 판례 평석들이 출간되었다. 이 내용을 사후적으로나마 반영해야 할지 고심하였다. 하지만 새로 선고된 판결들에 직면하여 치열하게 고민했던 당시의 흔적을 최소한의 사후 보정만 거쳐 담기로 하였다. 그 쪽이 다소 부끄럽지만 생생했던 사유의 색깔을 그대로 보존하여 궁극적으로는 판례 분석의 다양화에도 기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은 “법이 국가의 닻이듯이 판결은 법의 닻이다(Judgements are the anchors of the laws; as laws are the anchors of states).”라고 표현한 바 있다. 판결(Rechtsprechung)을 선고한다는 것은 구체적 사태에 직면하여 법을 말하는 행위이다. 이를 통해 일반적·추상적인 법이 구체적 삶에 규범적으로 최적화된 상태로 안착될 수 있다. 판결이 구체적 사태 해결에 그치지 않고 장래 유사 사건에 대한 향도적 기능을 발휘하게 될 때에는 판례의 지위를 획득한다. 그러한 점에서 판례는 미래 지향적이다.
그렇기에 판례는 과거지사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판례는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부터 소통과 재해석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다. 최근 수년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들을 보면 대법관들의 의견이 다양한 갈래로 표출되는 양상이 두드러지게 발견된다. 이는 판례의 잠재적 역동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결국 판례는 과거의 법적 지혜를 점층적으로 전승하는 도구이지만, 미래의 법적 지혜를 새롭게 형성해 나가는 소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승과 재형성은 장기간에 걸쳐 공동의 노력이 축적되어 가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책 역시 필자에게 소중한 조언과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과의 공동 산물이다. 이 책이 향후 지속되어야 할 공동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희망한다.
2019년 6월
권 영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