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말
작은 꽃을 피게 하는 것은 오랜 세월의 노고이다.
(To create a little flower is the labour of ages.)
―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지옥의 격언」에서
이 책은 내가 그동안 써서 발표한 글 중에서 말하자면 ‘가벼운’ 것들을 모은 것이다. 나는 전에 같은 뜻에서 『民法散考』(1998)와 『민법산책』(2006)을 출간한 일이 있다. 이 책은 그에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의 경우와는 달리 민법만이 아니라 두루 법 일반에 관련된 글들을 모아 책을 엮었다.
이 책과 같은 때를 보아 『민법연구』 제10권도 출간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민법학 관계의 ‘무거운’ 혹은 ‘덜 가벼운’ 글들은 그 편에 모아 두었다. 그러나 그 구분이 반드시 엄격한 것은 물론 아니다.
나는 2018년 2월 말로 대학교수의 직을 정년퇴임하였다. 물론 바로 이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석좌교수가 되어서 정년 전과 마찬가지로 연구실이나 대학의 다른 시설을 두루 이용한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는 대법원으로 가기 전에 23년 동안 봉직했던 서울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위촉되었다. 책 기타 자료를 읽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등 생활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러나 만 65세의 정년이 하나의 새로운 국면임은 물론이다. 정년의 제도가 그렇게 해서 꾸며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나이가 만만치 않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온다. 나를 삶에서 학문에서 이끌어주신 두 분 선생님이 안타깝게도 작년에 돌아가셔서(곽윤직 선생님은 2월에, 이호정 선생님은 12월에), 이제 옆에 계시지 아니하다. 또 강의는 이제 의무가 아니며 내가 자원해서 하는 말하자면 권리이다.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되어 이른바 ‘학문 후속 세대’를 키우는 일도 맡지 않는다.
이런 때를 맞이하여 전에 발표했던 글들을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나의 지난 자취를 되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나의 전공인 민법에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고 하여 여기서 건너뛸 이유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것도 내가 생각하고 느꼈던 바로서 ‘나’를 드러내지 않을까? 또 세월이 어지간히 지났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는 않으리라(그래도 그것들은 글이 쓰인 때를 배경으로 해야만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 책에는 신문 등의 ‘칼럼’으로 쓰인 것이 많이 등장한다. 나아가 사건 처리의 압박으로 좀처럼 틈을 내기 어려웠던 대법원 시절에 내 정신의 내부 압력을 발산하는 수단으로 써 두었다가 법원 내부의 사람을 위한 월간지 『법원사람들』에 실린 글들도 여기 모아 보았다. 또한 꼭 글이 아니고 인터뷰 같은 부류도 실었다(제6부).
이 책을 내는 데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박영사 편집부의 김선민 부장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2019년 6월 3일
양 창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