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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비나무 기록장

가문비나무 기록장

  • 권예자
  • |
  • 지혜
  • |
  • 2019-06-20 출간
  • |
  • 152페이지
  • |
  • 132 X 227 X 15 mm /264g
  • |
  • ISBN 979115728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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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산동네 까마득한 계단을
그믐달 같은 할머니가 오르시네
만나는 이 없어도 깊숙이 인사하며
계단마다 피어난
꽃 그림 밟으며 오르시네

죄 없이 고개숙인 제비꽃
서러운 며느리밑씻개
서리 맞은 들국화
낮에 피는 달맞이꽃
한물간 개불알꽃
허위허위 밟으며 오르시네
꽃물 다 빠진 할머니
꽃노을 계단을 오르시네

멈추거나 돌아서지 못하고
자꾸자꾸 오르시네
천국 문까지 곧장 가시겠네
-- 시 [꽃 그림 계단] 전문

기시감旣視感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보는데도 어디선가 본 듯한 친숙한 느낌. 이 시의 느낌이 그렇다. 산동네 까마득한 계단을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오르신다. 고개와 허리가 깊숙이 숙여져 있다. 할머니 지나시는 길 옆, 야생화들이 할머니를 영접하는 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곱디고운 젊은 날을 지나, 수많은 삶의 괴로움을 겪어내 ‘꽃물이 다 빠진’ 할머니는 노을이 물든 계단을 오르신다. 자꾸자꾸 오르신다. 저 노을이 끝나는 곳까지 오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건 왜일까 그저 저녁 무렵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았을 뿐인데, 삶과 죽음에 대한 장편 서사시 한 편을 본 듯 마음이 아리다.

마지막으로 권예자 시인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시의 근원을 대변하는 작품을 들고 싶다. 시 <가문비나무 기록장>이다.

알고 보면 이건 손바닥만 한 소우주
원시림처럼 빽빽한 길 사이
공간을 찾아 행성을 타고 드나들지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밑을 헤엄치지
사람들은 페이지를 넘기다가
어느 행성의 정거장에 내리곤 하지
내가 모르는 지름길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거기 있네
신선한 말들은 금방 가슴을 적시기 마련

어떤 활자들은 병든 벌레 같아
죽은 나무 향기에 까맣게 몰려든 불청객
그럴 땐 책장을 덮어버리면 그만

이 세상을 한 권으로 압축할 수도 있지
이 우주까지도
하늘을 안다고
산을 안다고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세상은 다 복사판이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하나도 없지

쉿, 조용히 해
여기, 누군가 들어와 있네
이 나무숲이 조심조심 흔들리는 동안
하나의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그가 안으로 들어왔어
소리 없이 활자를 삼키고 있어
천천히

--시 [가문비나무 기록장] 전문

숲이다. 가문비나무가 있다. 한 그루의 가문비나무 속에 우주가 있고, 한 권의 기록장이 있다. 그 안에 새겨진 활자들은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전 우주의 비밀을 보여준다. 거대하고 위대한 것들과 미세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합칠 수 있는 동력은, 시인의 나이를 뛰어넘는 호기심, 천진성, 그리고 젊은 상상력이다. 그 젊은 상상력으로 신과 인간,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바로 시가 탄생하는 시간일 것이다. 이렇게 권예자 시인의 시는 삶의 비밀을 기록한다.

낡은 소나타로 뻥 뚫린 길을 간다
끼어들기 속도위반 보복운전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입에 거품을 물고 주먹질하며
앞서려는 운전자도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사람들은 또 어디로 갔을까
거치적거리는 것 없는 세상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주공 아파트 14층 13호
엘리베이터서 내렸지만 반겨줄 가족이 없다
TV는 꿀 먹은 벙어리
그 많던 사건 사고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붉은 머리띠에 복면한 열혈간부
주먹을 흔들며 독설을 뱉던 입술도 없다
물대포만 좍좍 물을 뿜는다

소음 같던 음악 채널도 잠잠하다
음표는 소리를 잃고 허공을 떠다니고
말춤 막춤 스포츠댄스도 구성되지 않았다
앞동 뒷동에도 사람 하나 어른거리지 않는다
아니꼽고 메스껍던 그들은 사라졌다

드디어 찾아온 내가 꿈꾸던 세상
그런데 무섭다

흑백의 침묵이 무. 섭. 다.
나는 이미 금지된 선을 넘은 것인가
내 몸이 만져지지 않는다
----[죽은 자의 랩] 전문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삶은 만인들의 반대방향에서 자기 자신의 길을 가며, 자기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글을 쓰며, 자기 자신의 행복을 연주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인들처럼 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 만인들의 말과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가치평가한다는 것, 만인들의 존경과 찬양을 거절하고 자기 자신을 한없이 끌어올리며 자유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모든 인간들의 소망일 수도 있다. 개성과 독창성, 새로운 사상과 이론의 정립, 자유와 평화와 행복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귀하고 위대한 삶을 산 사람들의 업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나 고귀하고 위대한 사람들 역시도 이 사회를 완전히 떠나 산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들 역시도 의식주 문제는 물론, 타인들의 도움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과 행동도 사회적인 획득물이며, 비록 그들이 만인들의 반대방향에서 살다 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소속된 국가와 사회와 종교와 민족의 범주 속에서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전인류의 스승이라는 왕관을 쓰고,아직도 우리 인간들이 어렵고 힘들 때마다 고귀하고 위대한 인도자가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모래는 모래끼리, 진흙은 진흙끼리 무리를 이루고, 꿀벌은 꿀벌끼리, 나무는 나무끼리 무리를 이룬다. 새들은 새들끼리, 풀벌레는 풀벌레끼리 무리를 이루고, 고래는 고래끼리, 인간은 인간끼리 무리를 이룬다. 어느 누구도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고, 이것이 사회학의 기초가 된다. 고귀하고 위대한 삶을 산 전인류의 스승들은 만인들의 반대방향에서 그토록 어렵고 힘든 혼자만의 삶을 살고, 그리고 그 결과로서 그 위대한 업적, 즉, 전인류의 귀감이 되는 사회적 성과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죽는다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혼자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 영원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으며, 혼자 산다는 것은 죽음의 신 앞에 바쳐진 제물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일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만일 어느 누구도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의 삶 자체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무서운 것이고, 무서운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이 죽음에 대한 무서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그토록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것이고,이 삶에의 의지가 있기 때문에 너와 내가 손에 손을 잡고 무리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다.혼자라는 것은 무리로부터의 이탈이며, 죽음의 신 앞에 바쳐진 제물일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없고, 엄마와 누나도 없다. 오빠와 동생도 없고, 친구와 이웃도 없다. 자유는 공포가 되고, 공포가 자유의 목을 비틀어버린다. 목 비틀린 자유가 단말마의 비명 소리를 내면 혼자라는 영웅이 쓰러지고, 혼자라는 영웅이 쓰러지면 [죽은 자의 랩]이 울려퍼진다.

낡은 소나타로 뻥 뚫린 길을 가고, 속도위반과 보복운전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린다.입에 게거품을 물고 주먹질 하는 사람도 없고, 앞서려는 운전자도, 그 많던 차들도 없다. 주공아파트 14층 13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지만, 반겨줄 가족도 없고, 그 많던 사건 사고들도 일어나지 않는다. 붉은 머리띠에 복면한 열혈간부도 없고, 주먹을 흔들며 독설을 뱉던 입술도 없다. 소음같던 음악채널도 잠잠하고, 말춤, 막춤, 스포츠댄스도 구성되지 않는다.
나는 만인들 속에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는 늘 나 자신을 꿈꾸어 왔다. 나 자신은 혼자이고, 혼자는 고귀하고 위대하다. 혼자는 자유이고, 평화이며, 혼자는 행복의 초상이다. 하지만, 그러나 내가 꿈꾸던 세상은 내가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고, 흑백의 침묵이 더욱더 무서웠다. 흑백의 침묵은 권예자 시인의 [죽은 자의 랩]의 진수이며, 노래가 될 수 없는 노래라고 할 수가 있다.
혼자라는 높이는 얼마나 되는 것이고, 혼자라는 깊이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혼자라는 넓이는 얼마나 넓은 것이고, 혼자라는 크기는 얼마나 큰것일까 혼자라는 높이도 무한하고, 혼자라는 깊이도 무한하다. 혼자라는 넓이도 무한하고, 혼자라는 크기도 무한하다. 혼자가 혼자를 폭발시키며, 혼자라는 세상을 창조하고, 이 혼자라는 대폭발이 새로운 우주를 창출해낸다.
현대사회는 사회성이 거세된 사회이며, 혼자라는 유령들이 ‘혼자라는 유령들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이름하여 [죽은 자의 랩]이고, 흑백의 침묵으로 그 공포스러운 목소리를 울려퍼지게 한다.
혼자, 혼자라는 삶, 혼자라는 유령들의 사회----.
말세다. 참으로 무섭고 끔찍한 사회라고 할 수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5

1부

별똥별이 떨어진 이유 12
새끼손가락 13
통나무 의자 카페 14
가문비나무 기록장 16
귀하거나 귀찮거나 18
시간을 깎는 여자 20
보이지 않는 지배자 21
죽은 자의 랩 22
달다 ─정끝별의 ‘밥이 쓰다’를 읽다가 24
뜨지 못하는 배 26
바람의 노선 28
날마다 술래 30
나에게 타협하다 31
물음표(?) 32
늙은 주전자의 속내 34

2부

가벼운 입 38
그가 죽었다 40
요양병원의 파문 42
일방적인 계약 44
오류리 등나무 45
장미무늬 소파 46
채혈실의 속도 47
분재 연구논문 48
자기소개서 50
인터넷 카페 52
소문 올림픽 53
녹슨 동행 54
붉은 손톱 55
허공에 머물다 56
뽀얀 수줍음 57

3부

노선을 변경하다 60
사막에서 살아남다 62
자물쇠와 열쇠 64
칠월 자목련 66
소라껍데기 캔들 67
등이 꺼지다 68
동그라미 69
생각하는 TV 70
종의 목소리 72
만국기 73
이랑의 간격 74
바위도 움직이고 싶다 75
생각 물들이기 76
매듭인 듯 매듭 아닌 77
그 여자의 샘물 78

4부

골무의 변천사 82
고독사 84
지키고 싶은 이름 85
짧은 동거 86
막연한 슬픔 88
영평사 구절초 89
낡은 벽시계 90
스마트폰 92
테트라포드 93
시계조립공에게 94
구름의 목표 95
도마 96
모래 메시지의 유효기간 97
손바닥 지도 98
낙엽 100

5부

다랑논의 얼룩말 102
잠을 말하다 104
꽃 그림 계단 105
철길 옆 개망초 106
탈을 쓴 여자 107
죽순에서 죽창까지 108
신문 읽는 야생화 109
도형의 꿈 110
연뿌리 111
늙은 타이어의 생각 112
어떤 장례식 114
복숭아의 슬픔 116
사진 한 장 118
개량종 모과 119
주객이 전도되다 120
나는, 121

해설ㆍ삶의 비밀을 보는 밝은 눈ㆍ양애경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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