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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해석학

문화해석학

  • 이상오
  • |
  • 한국문화사
  • |
  • 2019-04-30 출간
  • |
  • 620페이지
  • |
  • 155 X 224 X 37 mm /921g
  • |
  • ISBN 9788968177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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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프롤로그]

우리는 지금 문화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문화위기가 바로 삶의 위기로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문화위기는 여전하다. 위기의 내용과 강도만 달라졌을 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문화위기의 끝없는 중병을 앓고 있다. 과거의 문화위기가 근대모던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사회적-정신적-도덕적 위기였다면, 지금의 문화위기는 포스트모던과 함께 찾아온 복잡하고 다양한 차원의 융복합적 위기이다. 이에 사이버문화의 위기까지 부가되면서 위기의 범위와 차원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만한 수준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문화위기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류가 삶의 위기를 감지하는 순간 누구나 문화위기를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위기cultural crisis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학문과 연구의 대상으로 된 것은 “문화연구culture studies”라는 개념이 세간에 등장하면서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문화연구”의 학문적 성립은 1964년 호가트Richard Hoggart(1919- 2014)에 의해 설립되고 나중에 홀Stuart Hall(1932-2014)에 의해 운영된 [버밍험 현대문화센터]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문화위기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연구는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는 무엇보다도 문화의 본질, 정체성, 특성 등에 대하여 연구한 소위 “문화과학science of culture” 내지 “문화이론culture theory, culturology”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1831- 1917)를 위시해서 보아스Franz Boas(1858-1942), 말리노프스키Bronisław Kasper Malinowsky(1884-1942), 레드크리프-브라운Alfred Reginald Radcliffe-Brown(1881- 1955) 등 소위 초기 구조주의 문화연구자들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이들이 시작한 문화이론은 비록 한계는 있었지만, 훗날 문화비판, 문화연구의 초석이 될 수 있었다.

“문화이론은 스스로 제약을 받는다. 문화이론은 중층적 기술이 제공하는 직접성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자체의 내부논리로서 이론화될 수 있는 자유는 다소 제한적이다. 문화이론이 이룩하려는 일반성은 미묘한 차별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추상화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40)

한편, 최근까지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던 “문화연구culture studies”는 주로 ‘문화비판culture critics’에 편중되어 왔다. 한마디로 “비판이론으로서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as critical theory”(Ben Agger, 1992)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비판연구의 대명사격인 마르크스주의가 득세하면서 문화비판은 “마르크스주의적 사회비판”의 맥락에서 이루어져 왔다. 물론 문화위기에 대한 문화비판은 소위 ‘사회비판’과 맥을 달리할 수는 없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된 문화비판은 한편으로는 문화에 대한 연구를 비판적 안목에서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을 열어 주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은 문화위기에 대한 비판이 “문화 자체에 대한 명암”을 조명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문화론이 이후의 문화론들에 자리를 내주고 비판받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기계적인 도식을 견지했다는 점이다.... 토대/상부 구조라는 도식으로 상부 구조에 해당하는 문화가 토대의 반영물로 나타난다는 단순화를 범한 것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 둘째, 그 기계적인 도식을 따르다 보니 자연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알파요 오메가인 것처럼 여겨지던 경제적 구조만 각광을 받게 되었고, 문화는 부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셋째, 문화를 단순히 (사회) 계급의 수단으로만 간주했다는 점이다. 지배 계급은 지배 수단으로 피지배 계급은 저항과 혁명의 수단으로 문화를 이용하거나 이용할 수 있다고 밝힌다.”(원용진, 1996: 105-106)

결국 사회비판과 문화비판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사회비판과 문화비판은 동일한 맥락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사회(또는 사회구조)와 문화는 빛과 그림자와 같이 상호불가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있는 한 문화가 존재하며, 문화가 있는 한 사회가 발생한다. 물론 사회는 있지만 문화가 소멸된 경우도 있으며, 문화는 남아 있지만 사회가 없어진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역사연구를 통하여 당시의 사회와 문화의 상관관계를 규명해 내고 있다.

“문화와 사회 구조의 관계는 무엇인가?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와 사회 구조를 명확히 구별해야 하고, 그런 다음 종래의 이론들이 이 둘의 관계를 결합시켜 왔던 다양한 방법들을 기술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 개념에 포함된 그 어떤 것도 분명하게 재단할 수는 없다. 요컨대 문화/문명을 서로 바꿔 사용하는 여러 담론에서와 마찬가지로, 문화/사회/사회구조도 반드시 혼동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대체해서 사용되기도 한다.”(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44)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사회’라는 개념과 ‘문화’라는 개념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따라서 마르크스 식의 사회비판의 논리를 가지고 일상적인 ‘문화비판’의 영역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지나친 무리다. 물론 마르크스가 사회와 문화를 구별했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에게서 문화는 사회 구조에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와 동일시된다(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101). 따라서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적 토대에 근거하는 네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사회와 문화의 관계는 거의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자체는 그 사회의 특정한 이해관계의 집합과 연관된 복잡한 것이다.”(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48) 즉, 마르크스에게서 문화는 사회 구조의 연장일 뿐이다. 달리 말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문화를 보는 관점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유물론적 문화론”(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94)으로 그대로 이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문화유물론의 전통 내부의 여러 기능들에 봉사해 왔다.”(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101).
이데올로기Ideology란 말 그대로 이데아Idea, 즉 이념理念과 논리logy의 합성어로서 ‘이념의 논리’를 의미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데올로기란 개인에게나 사회에 있어서나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즉, 개인들도 자신만의 이념 논리를 가질 수 있으며, 국가 사회도 저마다의 이념 논리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이념 논리가 개인들 간에 다를 수 있으며 국가 사회 역시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달리 말하면, 이데올로기는 일상 속에서 부단한 실천과 사회와의 관계를 통하여 사고하고 행위하고 이해하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구성되는 동적인 과정으로 이해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삶은 엄청난 혼란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데올로기의 차이로 인해 삶은 갈등과 모순으로 인하여 개인적-심리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긴장을 야기하게 되어 마침내 삶 자체가 붕괴될 수도 있다. 결국 삶의 질서를 규합하고 통합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요청된다.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삶을 위한 요청으로서의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로서 이는 다분히 사회정치적이고 사회심리적인 차원 또는 사회과학적 차원이다.

“한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문화적 정향定向도, 또는 가장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지향도 모두 정치과정에 타당한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에 충분치 못할 때 이데올로기는 사회정치적 의미와 태도의 원천으로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기 시작한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261)

사회과학자인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즉, 이데올로기는 사회심리적 차원 그리고 이를 넘어서 문화적 차원의 긴장을 포함한다.

“이데올로기적 활동이 가장 직접적 계기가 되는 것은 일종의 방향감각의 상실, 즉 자신들이 그 안에 놓여 있는 공공적 권리와 의무의 세계가 이용 가능한 모델의 결여로 인해서 이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분화된 정체 (또는 그러한 정체 속에서 내부적 분화의 지속)의 발달은 심각한 사회적 분열과 심리적 긴장을 야기시킬 수도 있으며 흔히 그렇게 되어 왔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나타나는 것은 정치질서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가 부적절해져 버리거나 평판이 나빠질 때의 개념적 혼란이다. 프랑스 혁명이 ‘진보’ 건 ‘반동’이건 간에 적어도 그 당시까지의 인류사에서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의 최고 양성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어느 시대보다도 당시에 개인의 불안이나 사회적 불균형이 더 깊었으며 또한 만연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 충분히 깊었고 만연되어 있기는 했지만 - 왕권신수설 같은 정치생활의 핵심적인 조직원리가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사회심리적 긴장과 이 긴장을 이해할만한 문화적 자원의 결여가 합류되어 서로를 약화시킬 때 체계적(정치적, 도덕적 또는 경제적) 이데올로기의 등장무대가 준비되는 것이다.... 분명히 이데올로기는 문제있는 사회현실이 보여지는 지도이며, 집합의식의 창출을 위한 모체이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261-262)

결국 마르크스에게서 ‘문화비판’은 ‘이데올로기 비판’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는 문화를 정당화하고 변명해주는 차원이기 때문이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274).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모순적 사회 내재 사회 구조(생산관계, 생산양식의 소유)에서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각 단계가 특정한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으로 규정된다고 보았다. 사회가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해 내는 방식, 즉 생산양식으로 역사의 단계를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노예사회, 봉건사회, 자본주의사회 등). 각 생산양식에서는 우선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낸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각 생산양식에서는 노동자와 비노동자 간의 관계도 다르게 규정된다. 이렇듯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생산양식과 그의 결정력이다. 즉, 생산양식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형태를 결정하고 앞으로의 발전도 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산양식의 변화는 정치, 윤리, 문화를 변화시킨다.”(원용진, 1996: 107)

결국 이렇게 본다면 그의 관점에서 시도될 수 있는 문화비판은 사회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사회와 문화를 구분하는 것 같지만 명백한 상像을 만들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비판critique’이란 개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성과 성찰reflection’의 개념을 전제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가진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사회)비판’과 ‘자아비판’을 분리하여 사용함으로써, 비판과 반성(성찰, 반추)의 개념을 양분화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말하는 ‘비판’은 마치 누구나 자신의 기준에서 또는 자기관점에서 상대방을 비판한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정당한 비판이 될 수 있다는 논리까지 허용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해였다.
이를테면, 과연 누가 누구를 그렇게 비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 비판은 과연 정당한가?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한다고 했을 때 비판의 조건은 일단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비판의 대상’을 명확하게 하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그 ‘비판의 기준’이 정당하고 타당해야 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비판의 조건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불명확하다. 첫째 이들에게 비판의 대상은 ‘개인의 소유권 인정’으로 이는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가 된다. 그러나 사회란 실제로 존재할 수도 있지만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 누가 실제로 ‘사회’를 본 사람이 있는가? 즉, 사회란 실재實在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회란 이름뿐이지 실제로는 세상에 없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연유로 베버Max Weber는 사회를 ‘사회실제론realism’과 ‘사회명목론nominalism’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특히 사회란 실제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개인과 개인의 관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한마디로 사회란 실재實在할 수도 있지만, 이름으로만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중세 1000년 이상 동안 이어져 온 ‘신존재증명’의 논리에서 비롯된 ‘실재론’과 ‘명목론’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결국 이렇게 본다면 인류의 연구역사는 사회가 실재하는지 아니면 이름으로만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비판을 하라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하라는 말인가? 만약 사회가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회비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사회가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사회비판은 정당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마르크스주의에서 시도한 사회비판은 일부만 정당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것은 ? 이미 언급된 것처럼 ? 사회비판이 곧 문화비판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점은, 비판이란 반드시 비판을 위한 명백한(절대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사회의 한계와 맹점을 비판하는 시작점은 ‘개인의 소유所有 내지 소유권所有權의 인정’이다. 그런데 소유(권)의 개념은 모두가 인정하는 비판의 준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소유(권)란 인간의 본능이며 본질에도 속하기 때문이다. 소유하지 않고 어떻게 생존할 수 있으며 자기보존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우리 인간의 삶에서 생명연장 및 자기보존수단으로서의 소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소유란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이자 최소한이 될 수 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서는 개인 소유 대신 ‘공동소유’만 인정된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개인소유를 부정하면서 공동소유만을 인정한다는 것 역시 모순이다. 심지어 개인소유와 공동소유 간에는 언젠가 이의 경계선이 허물어질 위험성도 남아 있다. 이를테면, 개인소유를 부정하고 공동소유를 주장하지만 결국 한 사람에게 공동소유권이 독점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스탈린, 김일성, 호네커, 차우체스크 등의 독재자들은 이러한 논리적 모순을 철저히 이용하면서 공동소유를 자기의 개인소유로 둔갑시킨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한마디로 공동소유라는 미명 하에 실질적으로 모든 소유는 독재자 한사람의 소유권 안에 들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헤게모니를 얻었느니 하면서 엉뚱한 논리로 독재를 정당화하곤 한다. 또한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논리를 펴면서, 실제로는 최고 권력자의 독재가 변호되면서 모든 소유는 결국 한 사람의 소유로 둔갑하게 된다.
다만 ‘과잉소유過剩所有’일 때에 문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과잉소유의 기준은 없다. 누가 과연 ‘과잉소유’를 판정할 것인가? 결국 비판을 하려면, 비판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절대적인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과거 절대적 신이 지배하던 신국시대神國時代에는 신의 말씀이 절대 기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신의 존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해졌으며, 신의 말씀들조차도 절대기준의 권위를 잃고 있다. 물론 충실한 신도信徒들에게는 신의 말씀이 지금도 절대기준이다. 그러나 신을 믿지 않거나 또는 신을 배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는 다른 종교를 가지고 다른 신을 추종하는 사람들로 갈리면서 신의 절대기준이 모든 삶에 적용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구촌 사회에서 아직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모든 종교전쟁은 절대기준의 적용에 문제의 소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비판criticism’을 포기해야 하는가? 즉, 비판의 기준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다시 말해서 비판의 절대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누가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것은 극히 자의적이고 부당한 것은 아닌가? 물론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판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대상이 개인이건 사회전체이건, 비판이 없는 발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개인이건 사회건 더 이상의 성장이나 발전은 불가능하다. 우리 말에 시시비비是是非非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옳고 그름은 반드시 가릴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늘 비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필요가 있다. 좀 다른 차원이지만, 비판은 실생활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창의력을 내게 하는 데에 있어서 유용한 면도 가지고 있다.
대학의 디자인학과에서는 학기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다음 시간까지 우리 주변에서 100개 이상의 비판할 것을 써 오라고 주문한다. 비판을 할 수 있어야만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해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비판능력이 없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무엇인가가 잘못된 것을 알아야만 고칠 수 있다. 공학에서도 비판은 새로운 공학적 메커니즘과 테크놀로지를 창출해 내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렇게 ‘비판’은 인문학의 영역을 넘어서 실용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 영역에서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모든 삶의 영역을 성숙시키는데 있어서 비판의 중요성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학에서도 신입생들에게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를테면, 비판적 글쓰기, 비판적 글 읽기, 비판적으로 학문하기 등을 강조하면서 비판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대학의 사명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본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판이라는 개념Kritique’은 오로지 홀로 성숙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판이라는 개념과 함께 동반되어 온 개념은 ‘반성과 성찰reflection’이라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우리 인간의 삶에서 비판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하되, 비판의 기준이 절대적일 수 없다. 따라서 비판의 기준이 그래서 타당하기 위해서는 기준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플라톤의 ≪대화집≫에서 보는 것처럼 대화하면서 반성과 성찰하면서 정당한 비판의 기준을 찾아가고자 했으며, 동양에서는 선종禪宗을 창시한 달마대사가 행했다고 전해지는 ≪면벽구년面壁九年≫의 사례에서 보듯이 ‘자신과 또 다른 자신과의 내적 대화’를 통하여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면서 삶의 기준, 즉 비판의 기준을 모색했다.
이러한 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절대기준을 알 수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나마 ‘반성과 성찰이 뒤따르는 비판의 기준 설정’만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마르크스주의의 비판이론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지나치게 간과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단 상대를 비판하고 나서 ‘자아비판’의 기회를 주고 스스로 자기반성을 하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이때 일단 ‘비판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사회의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하는 공산주의가 절대기준이 된다는 말인가? 현재로서는 이런 의문을 해결할 도리가 없는 셈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에서는 현재 지배적인 사회적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적 변증법을 통하여 보다 나은 미래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비판을 통한 유토피아를 설계할 수는 있었지만, 비판의 기준 찾기에서는 지나치게 인색했던 셈이다. 결국 이들에 의해서 성취된 비판은 ‘오로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서 머물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모순에 따른 현실적 대안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을 성취하기는 했지만, 1990년대 동구공산권의 붕괴로 인하여 이러한 혁명 역시 불충분한 이론에 근거하고 있었기에 결국 이들의 ‘비판개념’을 실제에 적용하기에는 부적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명이 났다.
이렇게 본다면, 이들이 추구한 사회비판 역시 비판의 기준을 설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중대한 오류를 범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의 기준도 명확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이 시도한 사회비판을 문화비판에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논리는 이치에 맞지 않다. 심지어 문화비판을 위해서는 사전에 “문화의 본질”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 즉 전체적인 이해가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설령 그렇게 비판이 가능하다고 해도 이렇게 이루어지는 비판은 극히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류의 탄생 이래 이루어진 거의 모든 ‘문화비판’은 늘 이러한 고질적인 함정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문화文化, culture” 만큼 정의하기조차 어렵고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은 없기 때문이다.

“(문화인류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에드워드 타일러에 의해서 제시되었던 그 유명한 ‘복합적 총체’로서의 문화 개념... 타일러의 문화 개념은 그 독창성은 부정될 수 없겠으나, 실제 적용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밝혀주는 것보다 혼란을 가져오는 면이 더 많은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타일러류의 문화이론화가 어떠한 개념적 혼란에 빠질 수 있는 가는 지금까지도 훌륭한 인류학 개론서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클라이드 클룩혼의 ?인간을 비추는 거울Mirror for Man?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이 저서에서 클룩혼은 약 27쪽 정도를 할애해서 문화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1) 한 민족의 총체적 생활양식, 2) 개인이 그의 집단으로부터 물려받는 사회적 유산, 3) 생각하고, 느끼고, 믿는 방식, 4) 행위로부터의 추상물, 5) 한 민족집단이 실제로 행동하는 방식에 대한 인류학자의 이론, 6) 모든 학습된 것의 저장소, 7) 재발하는 문제들에 대한 일련의 표준화된 대응 방향, 8) 학습된 행위, 9) 행위에 대한 규범적 규제를 위한 기제, 10) 외부 환경 및 타인에 대한 일련의 적응 기술, 11) 역사의 응결체 그리고 여기에 절망적으로 한 가지를 더 덧붙인다면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지도map로서, 모체로서, 그릇으로서 문화를 정의하는 것이 될 것이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12-13)

세계적인 문화인류학자 크뢰버Alfred Louis Kroeber(1876-1960)는 “문화란 문화인류학자의 숫자만큼 존재한다”는 유명한 말로 “문화 개념의 정의definition 불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문화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사람에 따라 거의 무한히 다양하다. 인류학자 크뢰버와 클룩혼은 그들의 저서 ?문화: 개념과 정의의 한 비판적인 검토?(1952)에서 문화에 내려진 무려 150개의 상이한 정의들을 검토한 끝에 결론적으로 자신들의 정의에 도달했지만, 그것마저 사회과학계에 남겨진 하나의 추가적인 정의로 끝나고 만 것으로 보인다.”(김문환, 1999: 3)

이런 맥락에서 문화연구의 초석을 다진 윌리엄스Raymod Williams(1921- 1988)는 “문화란 말이 영어에서 가장 까다로운 두 세계의 말 중 하나”(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13)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종류의 이론적 산만성에 비추어 본다면, 반드시 표준화된 문화 개념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최소한의 일관성을 보여주며 논의할만한 범주가 정해져 있는 문화 개념이라도 제시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선택을 필요로 한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13)

그러나 일관된 문화 이론이 없이는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합의가 유지되는가를 이해하기란 어렵다(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윤용 옮김, 1996: 25).

“영어로 물화를 뜻하는 ‘culture’의 어원은 본래 ‘밭을 갈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밭을 경작하는 행위’는 인류 최초의 문화적 행위를 상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류는 마치 숲속의 동물들처럼 자연적 질서의 한 부분으로서 여기에 절대적으로 순응하며 살아오아가, 어느 단계에 이르러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자연에 변형을 가함으로써 이를 인공적 질서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밭을 가는 행위는 인간이 ‘주어진’ 자연 속에서 벗어나 인간 본위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최초의 행위였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문화의 본래적 의미는 인간화 혹은 인공적 질서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는 바로 인간의 이러한 인위적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적 질서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단위이다.”(김승현 외, 1997: 302)

한편, 최근까지 런던의 버밍엄학파Birmingham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문화연구 역시 바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문화연구의 목적은 사회치료가 아니라 사회적 담론의 분석이다(클리퍼드 기처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한 문화연구에서도 문화 자체에 대한 ‘해석interpretation’은 매우 미약했다는 평가이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 역시 마르크스 비판이론 및 프랑크프르트학파 비판이론의 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장점이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계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구체적으로 버밍엄학파는 그람시와 알뛰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벤 에거, 김해식 옮김, 1996: 176).

“문화연구가 본격적으로 대학에 자리를 잡고 ‘문화연구’라는 이름으로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영국 버밍엄대학 현대문화연구소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의 작업을 통해서이다. 특히 이 연구소의 제2대 소장인 스튜어트 홀Stuart Hall의 업적은 문화연구의 흐름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게 할 만큼 중요하다. 홀 이전의 문화연구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사회비판으로서의 문화를 강조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문화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문화의 사회비판적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은 19세기에 급격히 산업화되는 영국 사회에 대한 반성으로 태동한다. 이 입장은 문화를 당대 사회를 비판하고 변혁하기 위한 인식과 실천의 매개로 설정한다. 이에 따라 문화는 변혁의 대상인 사회와 대립적이거나 그것에 대안적인 위치에 놓인다.... 반면에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은 대중문화가 확산되면서 문화의 사회비판적 기능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문화적 현실에 전통적인 마르크시즘의 관점이 적용되면서 부상한다. 이 입장은 문화를 사회체제에 수반되는 부속물로 보며, 문화가 지배체제를 정당화함으로써 그것을 유지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문화는 지배체제의 산물이요, 지배 이데올로기의 반영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된다.”(박기현, 2006: 8-9)

그러나 역시 한계는 문화연구에서 ‘문화’라는 개념에 대한 공유된 정의定意가 부재한다. 또 다른 중요한 한계는 문화연구를 하면서도 이들에게는 연구 관점의 공유나 특히 ‘연구방법’에 대한 합의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계는 문화연구라라는 학문적인 특성 때문에 발생할 수도 있다.

“문화연구는 처음 나왔을 때부터 기존의 분과학문으로 자리잡으려 하지도 않았다. 기존의 분과학문은 연구의 대상과 방법이 모두 닫혀 있는 체계인데 반면, 오히려 문화연구는 새로운 대상을 연구하면서 연구의 방법과 결과를 모두 진행형으로 열어 놓고 작업한다.... 따라서 문화연구의 분석도 잠정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런 대상(분과학문이 연구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영역)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다학제적이고 다분과-학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에 따라 문화연구는 기존의 분과학문체계와 이중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체제 자체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갈등관계를 맺는다.... 문화연구가 기존의 학문체계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하는 만큼 이 갈등관계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박기현, 2006: 9-10)

하여간 오늘날 우리는 진일보한 문화연구를 계속하지는 못하고 있다. 특히 동구라파의 몰락도 이에 한몫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사회비판이 ‘적이 사라진 자본주의사회’에서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서 또는 우리의 학문세계에서 어떠한 위상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 수 없는 영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문화위기 속에 놓여 있다. 따라서 지금도 문화비판은 정당하며 더욱더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속되는 문화위기의 현실 앞에서 버밍엄의 문화연구조차 좌초됨으로써 이제 어느 연구자도 섣불리 문화연구를 계속할 엄두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날로 우리 지구촌의 문화위기는 계속 심화되고 복잡 난해해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연구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셈이다. 이제 문화위기로 촉발되는 우리 인간의 삶의 위기는 점점 더 참혹하기 그지없다. 가정문화가 부재한 곳에서는 가정파괴현상이 목도되고, 학교문화가 실종된 곳에서는 학교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기업문화가 사라진 곳에서는 기업조직의 붕괴가 만연하고 있으며, 문화의식과 문화 개념이 실종된 사회와 국가와 사회에서는 탈사회, 탈국가의 위기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TV 속에서 막장드라마가 인기드라마가 되는 오늘의 현실은 이에 대한 극명한 사례가 된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회비판이론, 그 뒤를 이은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과 버밍엄학파의 문화연구, 페미니즘 문화연구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대립, 해체와 새로운 (재)구성을 시도하는 탈구조주의와 탈현대주의의 문화이론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다양한 문화예술비평 등은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문화위기 앞에서 그나마 많은 지식인들에게 비판의식을 성장시켜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우리 앞에서 문화위기는 여전히 엄연한 현실이며 해결의 실마리조차 요원한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심지어 문화위기의 파급 정도는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실제로 마르크스주의의 유토피아라던 유럽공산사회도 사라진지 오래이며, 이의 재탄생이나 재건은 더 이상 기대조차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나온 문화이론, 문화비판, 문화연구를 통해 얻어진 이렇다 할만한 가시적 성과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인가? 특히 우리는 여기서 지식인들의 의무를 종료해도 되는 것인가?
이미 언급했지만 그나마 과거의 문화이론, 문화비판, 문화연구 등은 문화위기의 앞에서 비판의 안목을 심어 주었다는 훌륭한 공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없다. 반복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비판’은 매우 중요하다. 비판이 없으면 더 이상의 진보는 없다. 그러나 결국 지금까지의 비판은 오로지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만 그치고 말았다는 느낌이다. 특히 수많은 학문적 공적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는 명백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하는 버밍엄의 문화연구 역시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분명히 비판은 맞는데 결코 현실적 대안은 모른다. 심지어 이들에게 닥친 문화연구의 태생적 한계 역시 마르크스주의가 자가당착에 부딪혔던 이분법적 논리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귀족문화와 민중문화, 남성문화와 여성문화 등의 대립은 마치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중심과 주변 등의 이분법적 도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계급구분과 문화수준의 구분은 이와 동일한 맥락은 아니다. 이를테면, 지배자계급도 저급문화를 가질 수 있고, 피지배자계급도 얼마든지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다. 이는 기표記票와 기의記意의 관계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기호학적 논리와도 통한다. 문화의 영역에 사회적 구분을 적용하는 것은 일부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남성문화가 반드시 지배계급의 문화는 아니며, 못 가진 자의 문화가 반드시 민중문화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진정 문화위기를 제대로 비판하고 문화위기의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문화해석culture interpretation, Hermeneutik von Kultur’의 작업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문화 해석은 단순한 ‘문화 분석culture analysis’이 아니다. 지금까지 분석철학이 영미철학의 대세가 되면서 우리는 분석과 해석에 대한 명확한 구분없이 두 개념을 혼용하여 사용해 왔다. 그러나 본고는 “문화 분석은 본질적으로 불안하다”(클리퍼드 기처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45)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지는 “문화해석文化解釋”을 목표한다.
따라서 본고는 문화란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분석과 해석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선 본고에서는 문화라는 개념 역시 정의definition의 대상이 아니고, 이해understand의 대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이론화 양식에서도 개념화 작업은 이미 수중에 있는 자료에 대한 해석작업을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클리퍼드 기어츠, 1973/ 문옥표 옮김, 2009: 42). 설령 문화를 분석한다고 해도 그것은 법칙을 찾는 실험과학이 아니라, ‘의미意味, meaning’를 찾아내는 해석과학이 되어야 한다(Geertz, 1975: 5; 크리스 젠크스, 1993/ 김융용 옮김, 1996: 88 재인용).


목차


■ 머리말

■ 프롤로그

제I부문화의 본질

제1장 ‘문화’의 개념
1. 탈脫 선사시대의 유산 - ‘문화文化’의 탄생
2. 문화의 발생학: 인간학적 이해

제2장 문화의 조건
1. 문화본능과 상징성
2. 가치의 현실화

제3장 문화의 구조
1. 삶의 구속성
2. 삶의 기준성
3. 삶의 객관성

제4장 문화와 사회시스템
1. 삶과 문화소유
2. 문화권력과 인간지배
제II부비판적 문화연구와 문화해석
제5장 사회과학과 문화비판
1. 사회비판이론과 문화위기
2.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대중사회와 문화산업

제6장 정신과학과 문화이해
1. 두 개의 문화론
2. 문화변동과 삶
3. 문화와 해석

제7장 포스트모던과 문화
1. 문화해체의 동역학
2. 문화현상의 차연과 공존
3. 문화이해의 다원주의

제8장 생태학적 문화시스템
1. 생태학적 패러다임
2. 생태계와 문화시스템
3. 생태학적 문화이해


제III부문화교육의 성립조건 문화해석학
제9장 문화교육의 학문적 기초
1. 문화철학과 문화과학 그리고 정신과학
2. 문화와 교육: 문화교육학의 태동

제10장 해석학과 문화
1. 문화의 해석학
2. 해석학적 문화: ‘정신과학적 해석학’에 대한 평가를 토대로
3. 문화해석의 목표: 삶의 이해 - 슈프랑어의 ?삶의 형식들?을 중심으로
제11장 문화의 해석학적 순환
1. 문화만남과 문화체험
2. 문화표현과 문화이해

제12장 문화교육의 해석학
1. 문화재와 도야재
2. 문화양심과 문화각성
3. 문화책임과 인격도야

■ 에필로그

■ 참고문헌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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