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2012년 중국사회과학출판사(中國社會科學出版社)에서 출판한 바이건싱[拜根興]이 지은 『唐代高麗百濟移民硏究-以西安洛陽出土墓志爲中心』을 한국어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바이건싱은 경북대학교에서 한국고대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중, 중·일 관계사 전공자로, 중국 산시사범대학[陝西師範大學] 역사문화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바이건싱이 『7세기 중기 당·신라 관계 연구[七世紀中葉唐與新羅關係研究]』, 『당·신라 관계 사론[唐朝與新羅關係史論]』에 이어 한·중 관계사 연구로 출판한 세 번째 책이다. 특히 앞의 두 책이 당과 신라의 관계를 다룬 반면, 이 책은 고구려·백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연구범위가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전체로 확대되었다. 특히 현장조사와 답사를 중요하게 인식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책에서 다룬 묘지명은 고구려 이민자 묘지 21점, 백제 이민자 묘지 11점이다. 출토 위치는 주로 현재의 산시성 시안과 허난성 뤄양, 곧 당의 두 수도이다. 저자는 일찍 이 뤄양에서 고구려 천씨 가족무덤을 답사하였고, 시안 동쪽 교외에서는 고구려 보장왕 무덤을 살펴보았으며, 시안시 창안구 궈두진에서는 새로 발견된 백제인 예씨 가족무덤을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1차 자료를 얻고 더 많은 관련 정보를 파악하여 자료 수집 범위를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문헌사료 기록을 검증하여 연구의 신뢰성을 높였다.
이 책은 크게 상편과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편에서는 유민 연구 현황과 함께 유민이 발생하게 된 상황을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하고 유민에 대한 당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다루었다. 하편에서는 유민과 관련된 유적과 유물의 현황을 소개한 뒤 유민의 개별 사례를 검토하였다. 더불어 구체적인 정보를 찾는 답사 여정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다. 유민이라는 역사상과 그것을 둘러싼 당나라 사람들의 기억, 그리고 그것이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 과정에서 소환되고 있는 모습을 시공간을 아우르며 전달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해 볼 지점은, 저자가 멸망 후 당으로 향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여정을 유민이 아닌 ‘이민’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정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시각은 강제적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던 역사상에 내재한 고뇌를 퇴색시키고 강국의 입장만을 이식할 우려가 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보면 당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가운데 전개된 개개인의 다양한 역사적 행위와 선택을 격변의 역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인생 여정에서 되씹어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 책은 한국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유민’과 저자의 ‘이민’이라는 입장을 적절히 수용하여 번역함으로써 이에 대한 판단을 독자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이 책을 통해 경계의 지점에서 파란의 역사를 살아간 유민들의 삶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고구려와 백제 역사의 연구를 확대 심화하는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