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길 위에서, 마침내 전인미답(前人未踏) 시의 길을 열다
197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김영재 시인의 여덟 번째 시조집 『목련꽃 벙그는 밤』이 출간됐다. 표제시 「목련꽃 벙그는 밤」을 비롯한 73편의 시와 시조가 담겨 있다.
사람이 이 땅 위에 길을 낸 것 중에서 불가사의에 가까운 가장 힘든 길이 차마고도라고 한다. 삶의 편의를 위해 낸 길에 그 편의를 돕는 물건을 옮기는 일을 정작 말들의 수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험로가 바로 차마고도이다. 그 절벽 낭떠러지 소로를 화자는 걷는다. 삐끗하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마련인 길에 “푸르른 실핏줄들이/ 반대편에서 나를 지킨다”고 했다. 실핏줄, 인체에서 가장 미세한 핏줄의 힘에 대한 믿음은 아무래도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절대 알아챌 수가 없을 것이다. 말과 사람의 위태로운 동행, “말이 가다 서면 사람도 멈춰” 설 수밖에 없는 말에 대한 사람의 절대 의존을 그리고, “둘이서 걷는다는 것은 기다림을 아는 것”이라는 길 위에서의 한 터득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깨우침이 시인의 시에서는 중요한 그 실핏줄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의 길은 그야말로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이다. 김영재 시인이 즐겨 찾는 산길이나 사막을 건너가는 길 또는 설산을 타고 오르는 길 등 그런 길이 시인 자신으로서는 미답의 길이 분명할 것이지만 앞서 여러 사람이 이미 걸어갔던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길도 자신에게는 미답의 길이라는 의미는 있을 터이지만 시의 경우와는 아주 다르다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도 시는 전인미답의 길이 된다. 따라서 사막과 설산 차마고도 등은 시인에게 있어 시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 보이는 미지의 세계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시인은 그 희열을 가슴에 담으려고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가 걸어갈 먼 시의 도정(道程)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