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로 불길하게 개막한 새로운 밀레니엄의 출발 이후 우리는 어떠한 ‘거대한 변환’의 물결에 떠밀려가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인터넷이라는 사이버 공간과 정보혁명으로 표상되는 미래 매트릭스의 세계는 언제부턴가 어느덧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문명표준’을 창출하지 않으면 무한경쟁에서 도태된다는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이 유령처럼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세계는 차가운 이념 대립의 시기보다 오히려 불안해지고 있다. 대체 지금 변하는 것은 무엇이며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19세기 우리는 거대한 문명사적 전환기의 격랑을 지혜롭게 넘지 못했다. 우리는 연기력 부족으로 19세기 변화된 새로운 무대에서 퇴출당하였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멀리서 그저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다.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어서 20세기 전반 한반도는 주체의 상실과 함께 맞이한 식민지 체험과 공공의식의 심각한 왜곡, 강렬하고 배타적인 저항민족주의의 탄생과 전개, 국토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극단적인 이념 대립과 정치적 갈등을 겪어야만 했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19세기 동아시아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중국이 새로운 패러다임 변환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이며, 동아시아의 주변국 일본이 근대 주권국가의 틀을 넘어 제국으로 질주하게 된 것은 어디에서 연유하며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인가. 이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의 연속과 단절이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현재 내가 사는 세계와 어떻게 연결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본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아직 끝나지 않은 답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