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따뜻한 날을 희망하는 ‘공동체적 가치’가 빛나는 김진희의 시들
2006년 제1회 『경남작가』 신인상을 받고 시단에 나온 김진희 시인이 2011년 첫 시집 『굿바이, 겨울』을 선보인 이후 8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거미에 기대어』를 출간했다.
김남호 평론가는 “좋은 시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등이 존재한다. 김진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거미에 기대어』에는 앞서 언급한 가치들뿐만 아니라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또 다른 의미 있는 가치가 있다”며 김진희 시인만이 지닌 또 다른 가치를 새롭게 조명했다.
첫 번째는 인식적 가치. 김진희의 시는 소박하고 겸손하다. 더 정확하게는 그의 시가 겸손한 게 아니라 시 쓰기는 태도가 그렇다. 김진희 시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특별한 수사(修辭)나 비유도, 함축이나 통찰도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치 무의미시 같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뭔가가 있다. 어떤 깨달음을 정제된 관념이나 철학적 사유로 생경하게 드러내는 게 아니라 이미지로 우회해서 드러내는 게 특징이다.
두 번째는 정서적 가치. 일반적으로 시에는 어떤 정서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슬플 때는 슬픈 시를, 기쁠 때는 기쁜 시를 찾게 된다. 하지만 좋은 시는 기쁨을 슬프게 하거나 슬픔을 기쁘게 해서 낯선 정서를 제공한다, 이런 시는 중독성이 강하다. 그리고 어떤 시는 속 깊은 애인처럼 기뻐도 슬퍼도 좀체 내색하지 않는다. 이런 시는 왠지 믿음이 간다. 김진희의 시는 후자다. 감상성(感傷性)을 최대한 억제한 탓에 얼핏 보면 표정 없는 선인장처럼 까칠하다. 그러나 선인장을 잘라보면 그 안에 그렁그렁한 푸른 눈물이 고여 있듯이, 그의 시에는 그만의 정서가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다.
세 번째는 미적 가치. 당연한 얘기지만 좋은 시는 아름답다. 시가 ‘아름답다’는 것은 인식과 정서가 그 고유의 가치를 지녀서 그렇기도 하지만, 언어예술인 만큼 언어의 조탁(彫琢)과 선용(善用)이, 내용과 형식이 긴밀한 조화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언어가 아름다운 언어인가는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다. 이를 테면 김영랑 식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겠으나 박목월 식의 아름다움일 수도 있다. 시에서의 미적 가치란,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가치이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처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살린 김영랑 시의 미학도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박목월, 「이별가」)처럼 투박한 사투리로 절규하는 박목월 시의 미학 또한 그에 못지않다는 거다. 김진희 시의 아름다움은 박목월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김진희의 시집 『거미에 기대어』에는 독특한 가치가 더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연대를 통한 공동체적 가치다. 이 가치를 우리는 추억으로 갖고 있을 뿐이다. 그동안 우리 시는 미학적 아름다움의 추구에 집착한 나머지 정치적 올바름의 추구에는 소홀했다. 김진희의 시를 읽다보면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우리 시는 너무 서둘러 변해버린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가 천박한 자본주의에 영혼까지 빼앗긴 채 서둘러 내다버린 목록들 중에는 안타깝게도 ‘새롭고 따뜻한 날’에 대한 꿈마저 섞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 소위 ‘미래파’ 이후의 시인들에게서는 좀체 찾아보기 어려운, 김진희 시인의 ‘공동체적 가치’는 우리가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버린 것은 아닌가’ 아프게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