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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

  •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엮음)
  • |
  • 멘토프레스
  • |
  • 2019-04-11 출간
  • |
  • 731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9344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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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기획의도]
1945년 11월 25일 일요일, 정동의 예배당. 예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진행하던 정일형 박사는 예배당에 모인 이들에게 미래에 대통령이 될 한 사람을 소개했다. 예배당은 사람들의 놀라움과 흥분으로 술렁였다. 당시 광복군으로 활약 중이던 장준하는 〈회고록〉에서 당시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한 위대한 사람이 앉아 계십니다. 장차 이 민족을 이끌고 나갈 참지도자가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계십니다…….」
그로부터 3년 7개월 후(1949년 6월 26일)에 그 사람은 그렇게 간절히 고대하던 완전한 자주독립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했다. 그는 타국에서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온 몸으로 이겨낸 대한민국의 위대한 혁명가이자 정치가인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

2019년 올해로 3 ㆍ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백범 서거 70주년을 기념하는 뜻 깊은 해를 맞이하여 출판사 멘토프레스에서는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을 내놓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해방전후 대한민국 전체 상황을 다루지는 않는다. 27년 동안의 파란만장했던 항일투쟁을 마친 임시정부와 그 수장인 백범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위주로, 당시의 <자유신문> <서울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언론에 기록된 내용을 중심으로 책속에 담고 있다. 광복을 맞이하고 3개월 뒤인 1945년 11월 23일, 김포비행장에 착륙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처음으로 조국의 밤을 맞이한 곳이 경교장(당시 죽첨장)이었다. 경교장은 그로부터 백범 김구 선생이 암살당하기까지 3년 7개월, 정확히 1,310일간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였으며 남북통일운동의 본산이었고 백범 암살의 현장이었다.
이 책은 김인수(‘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과 ‘경교장복원범민족추진위원회’ 대표)씨의 각별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2001년부터 2년에 걸쳐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 관련 도처에서 경교장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자료들은 현재처럼 디지털화작업이 이루어지기 전의 상황이라 일일이 수작업에 의해 자료를 모아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게다가 해방이후 당시의 신문이 한자 위주로 표기되어 있던 터라 해석작업에 많은 고충이 따랐다. 드디어 2003년 1월 어렵사리 책이 출간되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일반인에게 책이 공급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그로부터 무려 16년이 지난 2019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점으로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신간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의 장점을 말하자면 앞서도 언급했지만 첫째, 방대한 자료를 꼽을 수 있다. 무려 731쪽에 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어느 것 하나 허투루 게재된 것이 없다. 둘째로 당시의 긴박감이 옆에서 지켜보듯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때는 1948년 4월 19일 새벽. 남조선만의 총선거를 반대하고 자율적 통일정부수립의 필요성을 느낀 김구는 남북정치지도자회담에 참여하고자 서둘러 평양으로 향하는데, 반공 청년학생들이 경교장 주변을 에워싼다. “주석님 못가십니다” “주석님이 가셔서 만일 다시 못 오시면 우리 동포는 누구를 믿고 살아갑니까” 애원하는 청년들에게 김구 주석은 “나는 21세 때부터 이미 생명을 내던진 사람이오. 내가 이번에 (38선을 넘어) 가서 만일 성과를 얻지 못하면 차라리 배를 가르고 나의 피로써 당신들 청년들에게 모범을 보여줄 생각이오. -〈서울신문 1948년 4월 20일〉 일부 발췌” 하며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고 남북화합을 도모하고자 하는 김구 주석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또한, 1947년 12월 2일 발생한 한국민주당 당수이던 ‘장덕수 피살사건’과 관련해서 암살배후로 지목되던 김구 선생의 재판 심문과정이 수차례에 걸쳐 본문에 등장한다. 예컨대 장덕수 암살사건 제8회 군율재판 공판에서 검사는 “한민당 중의 장씨(장덕수를 일컬음) 기타 사람들은 죽일 놈들이라” 말한 적 없느냐는 질문에, 김구 주석은 “누구에 대해서든 말한 적이 없소. 이러한 것은 모두 모략에서 나온 것 같소. 이런 친한 동족에 대해서 죽일 놈이니 뭐어니 중상할 만치 그리 박덕한 나라면 그런 박덕한 나를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오.”라고 답한다. 마치 이 대목에서는 김구 주석의 당당하고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오는 듯하다. 이렇듯 해방 이후의 나날들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만한 큰 뉴스들로 넘쳐나는, 그야말로 격동의 시대였다. 이러한 점들을 놓치지 않고 책 속에 충분히 녹여내고 있는데, 즉 이 책의 세 번째 장점은, 기사 위주의 편집이라는 단순함에서 탈피하고자 다양한 이들의 증언을 수록했다는 점이다. 환국시기의 장준하 선생의 글에서부터 남북으로 오간 왕복서신, 남북연석회의 당시의 송남헌 선생의 증언과 동행기자의 취재기, 백범 암살에 대한 당시 시대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한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의 회고와 안두희의 생생한 육성증언을 함께 실어 공시적共時的 시대를 통해 통시적通時的인 의미를 찾을 수 있게 구성했다.

함석헌 선생은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당시의 해방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완전한 자주 독립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가 수립되었다. 백범은 암살당하고 그 범인인 안두희는 거리를 활보했으며 암살의 배후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로부터 무려 74년이 흐른 현재, 대한민국은 속수무책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덜컥 맞이하고 말았다. 이에 대해 김인수씨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말한다. “한·중 수교 이후 수많은 국민들과 정치인, 대통령들까지 상하이의 옛 임정청사를 방문하여 선열들의 항일독립정신을 높이 기리고 있지만 정작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임정 최후의 현장 경교장은 국민 모두가 잊고 살아왔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ㆍ 김인수씨의 말은 계속 이어진다. “정부와 삼성, 언론 때문이다. 백범 암살의 배후로 지목받고 있는 이승만 독재자와 연이은 군사정권들은 경교장을 오랜 기간에 걸쳐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방치하여 왔다. 더욱이 삼성은 광고주란 힘으로 경교장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하여왔다. 뿐만 아니라 삼성은 경교장이 2001년 서울시문화재가 됐을 때 문화재지정 취소 행정소송까지 시도했다. 이것이 여의치 않자 계획을 바꿔 경교장이 문화재인데도 불구하고 경희궁터를 놓고 서울시 건축승인을 받아 260억대의 불법건물을 증축하여 지금도 경교장 경관을 훼손한 채 원형복원을 가로막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게다가 2013년 서울시 예산 40여억 원을 들여 경교장 내부를 복원하지만, 서울시조차 삼성의 입장에 서서 원형 복원을 했다고 주장하며 손을 놓고 있다는 것. 결국 현재 반쪽 복원에 머물러 있는 초라한 경교장 모습을 두고 김인수씨는 ‘정·경·언의 유착이 낳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라고 일축한다. “경교장 복원은 단순히 건물만의 복원이 아닌, 굴절된 한국현대사의 복원을 의미한다”는 김인수씨의 의미심장한 말처럼 《비운의 역사현장, 아! 경교장》은 숨겨진, 왜곡된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주며, 과거 백범 김구 선생이 그토록 희구했던 남북통일로 함께 가는 지렛대, 중추역할을 하리라 본다.

[책 속으로 이어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니 우리가 이것으로 만족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거두어진 성과를 가지고 최후의 성공을 하는 것은 오직 우리의 애국동포 전체가 일치하게 노력하는 데 있을 뿐이다. 상술한 연석회담에서 국제협조 및 기타 수개 문제에 대하여, 우리의 종래의 주장이 다 관철되지 못한 것은 우리로서는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나 국제협력 문제에 대하여서는 앞으로 어느 나라가 우리의 독립을 더 잘 도와주느냐는 실지 행동에서 용이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며. 또 기타 문제에 있어서도 앞으로 각자가 노력하며 남북 지도자들이 자주 접촉하는 데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행동으로써만 우리 민족은 단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사실로도 우리 민족끼리는 무슨 문제든지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증명하였다. 482p
전차를 내려서 상수리 특별호텔을 찾았다. 노크를 하고 문을 여니 마침 김구씨는 몸이 편치 않았던지 침실에서 이불을 제끼며 넌지시 일어나 앉았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단 둘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 해보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축 늘어져 덮인 세모눈을 슴벅슴벅하면서 뜸직뜸직 한마디 할 때마다 널따란 입술이 너웃거리는 그 모습에서 순간 「오래 묵은 호랑이」가 턱 앉아 있는 것 같은 강한 인상을 받았다. 517p
백범 김구 선생이 오늘 흉변을 당하신 보도를 들은 나로는 놀랍고 담색해서 말이 잘 아니 나옵니다. 범인이 잡혔다 하니 무슨 주의主義로 이런 일을 행하였으며 이것이 개인행동인지 연루자가 있는지 엄밀히 조사해서 일일이 공포하고, 범인은 법대로 처벌될 것입니다. 한인韓人들이 어찌해서 이런 만행을 범하는지 과연 통탄할 일입니다. 531p
일생을 바쳐 조국 광복을 위하여 분투하시던 독립운동자에 대한 총살이 보답이란 말인가. 이것이 무엇이냐 ? 지금 본인은 입 안이 굳어져 어떠타 말할 수 없는 동시에 국가민족을 위하여 이 이상 애석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한다. 534p
28일 오전 10시부터 경교장 2층 회의실에서 개최된 백범국민장상임위원회에서는 장례비용으로 약 900만 원을 계상하였다고 하는데, 한편 정부에서는 이번 장의가 정부와 민간이 합동하여 거행하는 국민장인 만큼 장의비용에 대해서도 정부의 부담금액 결정을 위하여 28일 긴급 국무회의를 개최한 바, 동同 회의에서는 정부부담으로 비용의 반액인 450만 원을 지출할 것을 결정하였다고 한다. 558p
백범 김구 선생은 해방 후의 자유가 방종으로 오인되고 오용되는 것을 경계하였다. “최고最高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에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애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살게 하기에 사용되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고 하였다. 588p
고 백범 김구 선생의 시체를 모신 충정로 경교장에는 서거하신 26일 하오부터 정부요인, 각 정당 사회단체, 일반시민, 경향 각지 남녀노소가 모여들어 조문객으로 인해人海를 이루었는데, 총 조문객은 무려 124만여 명이라 하며, 선생을 사모하고 조문하러 온 사람 중에도 초만원으로 문밖에서 조사를 하고 간 사람들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한다. 630p
장의위원회에서는 이 방을 이대로 영구히 보관한다는 말을 하였는데, 그렇게 된다면 장식 없는 방안의 모습이 선생의 검소한 성품을 그대로 말하여 줄 것이며, 유리창에 남은 역력한 탄흔(彈痕)은 후대의 사람으로 하여금 당시의 참변을 눈물과 분노로 길이 회상케 하여주리라. 681p
"선생님 그리 아름답지 못한 정보가 들어왔는데요. 좀 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정본데 ㆍ”
"다른 게 아니라 이놈들이 선생님께 대한 암살 계획이 있다는 데 금명간 행동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박 동지, 그까짓 소리 듣고 다니지 말게. 그 놈들 뭐 매일 하는 소린 걸. 그런 말은 내게 전할 필요도 없어, 사기 저상되는 말이야"바위와도 같이 움직이지 않는 김구 선생의 태도였다. 708p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가 미군 방첩대(CIC) 요원이었다는 충격적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이에 따라 당시 미국이 백범 암살을 방관 또는 사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내용은 해방 직후부터 1948년 12월까지 한국 CIC에서 정보장교로 일하다가 미국으로 돌아간 실리 소령이 백범 암살 사흘 뒤인 1949년 6월 29일 작성해 상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나타났다. 728p


목차


제1부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 일본천황의 조서
● 임시정부 당면정책 14개조 발표
● 하지, 조선동포에 고하는 성명 발표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
● 27년 만에 고토 밟는 김구 선생의 거자
● 환국한 우리 대한임시정부
● 임시정부 요인 23인 금일 서울에 개선
● 동경턴 고국서 역사적 국무회의
● 대한민국 임시정부 전국환영대회
● 국무위원회 긴급개최
● 신탁통치 반대 조직조례 결정 발표
● 임정 탁치에 대한 불합작 방침을 발표

제2부 최초의 남북협상 산실
● 단정은 절대배격 김구씨 담
● 유엔 한위에 보낸 의견서
●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
● 백연 인형
● 장덕수 암살사건 1회 공개재판
● 김구 한독당 중앙집행위원회에서 통일추진
● 김구 김규식 왕복서신 발표
● 피를 같이한 동족끼리 조국통일을 논의
● 김구 38선을 넘어 북행
● 남북 연석회의 축사
● 남북협상 수행기(민족자주연맹 송남헌)
● 남북협상 수행기(합동통신 특파원)

제3부 백범 암살의 현장
● 김구씨 피습절명
● 오호! 민족의 광망 김구 선생.
● 3천만의 비분은 충천! 보답이 총살이냐 어안이 벙벙 말할 수 없다
● 비애와 분노에 쌓인 경교장, 말없이 흐르는 것 눈물뿐
● 애끓는 울음소리, 경교장 이 구석 저 구석에
● 깡통을 집어던지고 걸인들도 대성통곡
● 10일간 조문객 무려 124만
● 하늘도 흐려, 조조 경교장에서 발인식
● 오호! 발 구르며 우는 소리, 눈물의 바다 식장은 처연
● 바람속의 경교장, 명도냐 기념보존이냐
● 백범 암살 안두희는 미 공작원이었다
● "백범 암살 진상"재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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