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순히 우정 때문만이 아니라 진실로 우치다 햣켄 씨가 시적 천재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치다 햣켄 씨의 작품은 다소 풍취를 비틀긴 하지만 그 몽환적 특색이 타인에게 뒤지지 않는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소설가)
“현재 문단에서 제일가는 문장가는 우치다 햣켄이다.”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소설가·노벨문학상 후보)
“햣켄은 문장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그려내려는 대상과 그리는 도구가 완전히 일치된 세계이자 문장이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세계이다. 햣켄의 글을 읽고 나서부터야 처음으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모리미 도미히코(森見登美彦,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제자이자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음(知音)
빈핍한 햣키엔 선생, 현실에서 빠져나와 공상 속 절대경에 잠기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치다 햣켄은 일본 근대 문학, 특히 근대 수필을 대표하는 유명 작가로 소설과 수필을 아울러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일본의 셰익스피어’로 일컬어지는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를 거친 그는 간결한 언어를 통해 생활의 단면 아래 깊고 오묘한 통찰을 보이는가 하면 소설을 통해서는 예의 깔끔한 문장을 발휘한 희담이나 섬뜩한 기담을 풀어내기도 하는 등 자유분방한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의 주인공이자 소세키 아래 같은 문하생이었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선배로서 그의 존경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 그림은 류노스케가 직접 햣켄을 소묘한 그림이기도 하다. 영어권에서는 그의 대표 기담소설인 『명도』가 번역된 한편, 한국에서도 1976년 일부 작품을 담은 소책자가 출간되었다. 그의 일상적 언어 속 풍취에 매료된 독자들은 직접 원서를 번역해 인터넷에 공유하기도 한다. 일본 내에서도 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명문(名文)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방대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더 이상 소개되고 있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역동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일본 근대 지식인 및 문인들이 각기 다채로운 글을 선보였다면 햣켄 또한 본인만의 가벼운 듯하면서도 오묘한 세계를 구축했다. 현재의 독서 흐름이 쉽고 간결한 언어를 통해 따뜻한 위안과 감동을 찾아 옮겨가는 가운데 핫켄의 대표작인 이 책은 80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깨끗하고 깊은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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햣키엔 선생 생각건대,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번잡하고 시시하고 버겁다. 눈을 뜨자마자 이층에선 새장 속 오륙십 마리의 새들이 재잘거리고, 창밖으론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고, 입을 옷은 몇 십 년 된 프록코트와 찌그러진 중산모자뿐, 눈을 감아버리면 너구리가 맹장지문을 두드리고, 그늘진 골목길엔 독촉하러 온 빚쟁이들이 매복 중이고, 자리에 누웠더니 암컷 원숭이가 잠을 깨운다. 현실인가, 망상인가. 사실인가, 궤변인가. 진심인가, 농담인가. 어느 하나 확실치 않지만 햣키엔 선생, 기어코 죽어버리지 않고 벅찬 세상의 하루하루를 초연히 써내서는 1933년 10월 첫 수필집을 펴냈다.
하여간에 허무맹랑한데도 우리 또한 홀연 선생과 함께 절대경에 젖어 있는 건 어찌 된 영문인가? 햣키엔 선생이 차려놓은 스물두 잔의 단장(斷章)과 다섯 색깔 튀김과 일곱 그릇 나물죽, 그 빈핍한 식탁을 어린 시절의 서툰 그림처럼 언젠가 한 번쯤 그려 본 적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므로 불혹의 햣키엔 선생, 시끄럽고 번잡하고 시시하고 버거운 세상이 내일도 모레도 계속되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공상 속 번드르르한 외줄 문장 위를 유유히 걸어 나간다. 그 뒷모습이 어쩐지 너무나 부럽고, 너무나 허탈하고, 너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