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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 민왕기
  • |
  • 달아실
  • |
  • 2019-03-26 출간
  • |
  • 144페이지
  • |
  • 129 X 200 mm
  • |
  • ISBN 97911887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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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사랑인 듯 사랑이 아닌 듯, 연애인 듯 연애가 아닌 듯
- 민왕기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 편집 후기

1
달아실시선으로 민왕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아늑』을 2017년에 냈는데, 2년 만에 그의 두 번째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를 낸다.

민왕기 시인은 전직 기자다. 그는 지금 전업 시인이지만 그러니까 백수이지만, 그가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 그는 제법 오랫동안 모 신문사에서 문화부 기자와 정치부 기자 생활을 했다. 그가 기자를 때려치우고 백수가 되는 데에는 어쩌면 내가 일정 정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닌지, 그의 등을 떼민 것은 아닌지 싶어 미안할 때가 있다.

기자 때려치우고 시인이 되라고 그의 등을 떼민 데에는 나로서는 그만 한 이유가 있었다. 십여 년 전 처음 그의 시를 보았을 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충분히 좋은 기자이고 충분히 훌륭한 기자이지만 그보다 훨씬 좋은 시인이고 훨씬 훌륭한 시인이 될 재목이라는 것을. 결국 그는 기자를 때려치우고 전업 시인이 되었다.

그의 첫 번째 시집과 두 번째 시집을 달아실에서 내게 된 데에는 그런 남모르는 까닭이 있다. 두 번의 시집을 달아실에서 내면서 민왕기 시인은 내게 빚을 졌다고 말하지만 실은 그 반대다. 내가 민왕기 시인에게 빚을 진 셈이다.

2
민왕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아늑』이 민왕기 시인 특유의 감성 사전, 시로 풀어쓴 감성 사전이었다면, 이번 두 번째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는 뭉뚱그려 말하자면 “새로운 연애 시집”이 되겠다.

연애인 듯 연애가 아닌 듯, 통속적인 듯 아닌 듯, 아리송하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만나자는 것인지 헤어지자는 것인지, 살자는 것인지 죽자는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당신이 좋다는 것인지 싫다는 것인지, 사랑한다는 것인지 미워한다는 것인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지만 연애 시집이 맞다.
본디 사랑이 그러하지 않던가. 사랑해서 죽겠다는 것인지 죽을 만큼 사랑한다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고, 너 없으면 죽겠다던 사랑(들)이 저리 명랑하게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또한 사랑이 아니던가.
동서고금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단어가 ‘사랑’이면서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낯설고 새로운 단어 또한 ‘사랑’이 아니던가.

민왕기 시인의 이번 시집 『내 바다가 되어줄 수 있나요』는 그런 뜻에서 “연애 시집”이다. 세상에서 가장 진부한 주제인 ‘사랑과 연애’를 놀랍도록 새롭고 놀랍도록 낯설게 펼쳐보여 준다.
가령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는 시를 읽어보자. 당신의 사랑이 조금은 식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사랑이 조금은 진부해졌다고 생각한다면, 이 시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애초의 사랑은 진즉 어디로 가고, 이제는 겨우 ‘사랑이라는 말’만 남은 것은 아닌지.

꿈마다 만나는 은밀한 여자가 있다

어젯밤엔 틉, 이라는 이상한 열매를 주었고 오이보다 달고 참외보다는 달지 않은 외였다

외의 움푹한 씨방 쪽을 베어 먹다가 점점 가를 씹으니 닭고기 맛이 나는 외였다

여자는 누구인데 아름답고 틉, 이라는 외를 먹으며 웃고 있나

뱀 한 마리 스르륵 지나가는 풀밭에 누워서

열매 맛은 닭고기 맛, 여자가 꼰 다리 사이의 무수한 슬픔들을 추억한다

꿈 밖에서는 착하기만 한 당신이 자고 있는데,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는다

이 방과 꿈 사이의 거리는 나와 거울 속 나 사이의 거리

잠든 당신의 이마를 짚어주고 헛것인 거울 속은 어두워지기로 한다

거울의 눈물샘이 어룽인다 꿈마다 만나는 여자가 있다

포구의 방안에 파도가 친다

추방된 자들의 몫으로 해변 하나 가지고, 기다려 본다
검은 책을 펼친다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전문

3
그렇다고 이번 시집이 순전히, 온전히 ‘연애 시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민왕기 시인 특유의 감성 사전으로서 한층 더 두터워진 느낌도 갖게 된다. 첫 번째 시집에 이어 이번 시집에서도 민왕기 시인은 평면적인 뜻을 지닌 숱한 단어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숨으로 생기를 얻은 단어들. 부피가 생기고 그 안에 피가 돌기 시작한 단어들. 그의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그만큼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일일 게다.

목련이 지는 아주 짧은 생일지라도 사랑은 사랑으로 피어났다

거기, 내가 비파를 켜면 달 뜨는 모래톱이 바람을 켜고
또 한 바다 너머 비파반도가 있다는 황해도 쪽으로 개밥바라기별, 적적한 뭇별들 밤을 켰다

엉덩이를 까고 우리가 처음 사랑했을 때처럼 달은
환한 봉우리를 켰고 계절이 다 가버리도록, 그대를 기다려 나는 찬 우물을 켰다

물개 떼들이 야옹거리는 소리 들리는, 염소 떼가 구름염소가 되고
나뭇가지들이 저녁에 황금가지가 되는 그곳에서 나는 기억을 흐리고 불을 켰다

섬을 돌다가는, 이 섬에선 낮배도 타고 밤배도 탄다는 아낙들의 말에
웃었다 산수유꽃처럼 웃던 당신을 떠올렸다

목련이 지는 아주 짧은 생일지라도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있었다

비파곶 하늘에 일곱 개의 비파가 떠오른다는 물목이 되고 싶었다

나를 향해 무엇도 쏟아지지 않는 이 나라에도 빛은 오고
너를 향해 무엇도 쏟아질 것 없는 세상에도 별은 있고

나무가 버린 목련의 한 잎, 두 잎처럼
무심한 이 세계를 둘만의 바다로 삼고, 비밀의 비밀이 되고 싶었다
― 「비밀의 비밀처럼」 전문

당신의 연애가 좀 더 뜨겁길 바란다면, 다시 새롭길 바란다면 일독을 권한다. 무심한 이 세계에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다면, 둘만의 부피를 지닌 단어를 만들고 싶다면 또한 일독을 권한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바닷가에 빗물 하나 내려앉아
바닷가 모래언덕
공중에 떠돌던 말
모란 위 옥탑방
호텔 캘리포니아 게으른 태양 아래
여름엔 완당을 풀어 마신다
해안 이발소에 숨어서
듬돌이라는 국숫집
공터를 가진다는 것
저녁마다 무사가 되어
한 사람의 일
자두가 자두일 때
흰 무가 있는 저녁
남해 해변 심야 백반집
골목을 나오며
그늘의 상점
물고기의 하느님이 되어

2부
너의 조금
이불이 익어간다
고해하기 좋다
해변과 사슬과 머리
뜻밖에도 나비는 날아와서
신경정신과 앞에 사랑하는 둘이 있다
어린 사람에게
측백의 저녁
뒤척이는 당신의 등을 쓸며
다시 구름이 어린다
낙원이 쏟아진다
골똘한 안경
슬픔이라는 빌미
눈동자의 안부
밤바다 건너 무량하다는 말
회고적 가을
난투극은 아름다워
골몰과 골몰이 불행히도
악의 조금

3부
부두에서 보낸 한 철
비밀의 비밀처럼
왜 밤이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사랑, 이라는 말이 있다
아가미
나는 지금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간다
야비는 미
폐가의 모스부호들
결국, 그때 네가 거기 있었고
나는 남방의 술집들을 다 돌아다녔다

해설_한승태
공중에 떠돌던 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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