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잎 두 잎, 가슴에서 꽃잎으로 피어나는 나태주 시
‘풀꽃’ 등 친필 시 네 점과 손수 그린 연필그림 수록
한들한들 시를 읽고, 한들한들 살면서, 한들한들 돌아보면…
“소낙비 내리듯 벚꽃 떨어지듯 쏟아진 것이 아니라 이슬비 내리듯 가랑 비 내리듯 한 잎씩 두 잎씩 누군가의 가슴속으로 떨어져 내린 꽃잎, 꽃잎.”
자신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꽃잎으로 머물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봄바람인 듯 다가와 머무는 120여 편의 시가 차곡차곡 담겼다. 그뿐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새긴 ‘풀꽃’ 등 친필 시 네 작품과 볼수록 정감 가는 시인의 연필그림이 더해졌다. 풀꽃처럼 맑은 얼굴의 시인이 <한들한들> 개정판에서 전하는 봄의 선물이다.
언제나 타인의 가슴에 꽃잎으로 피어나는 시를 꿈꿔 왔던 시인은, 이제 자신의 가슴 깊숙이 ‘한들한들’이라는 꽃 한 송이를 품고 속삭인다. ‘한들한들’ 시를 읽고, ‘한들한들’ 살면서, ‘한들한들’ 주변을 보아주는 것, 그때 비로소 삶과 세상, 진짜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
<지나간 후에 더 오래 남는 말, ‘한들한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했던 여자아이다. 공부를 잘했고 글을 잘 썼으며 성격이 야무지고 피아노를 잘 쳤다. 자라서 무어든 한 가지 잘 해내는 사람이 되려니 기대를 모았다. (중략) 그러나 나중에 친구 아이들한테 들으니 아니었다. (중략) 친구들 말로는 … 한들한들 아무 불평 없이 그냥 아줌마로 잘산다고 그랬다. 한들한들! (중략) 유독 그 ‘한들한들’이란 말이 오래 뒤에 남았다. 왜 나는 그 애처럼 한들한들 살지 못했을까? (중략) 늦었지만 나도 … 그 한들한들이라는 꽃 한 송이를 따라서 피워보고 싶은 것이다.” (-시 ‘한들한들’ 중)
시인은 50여 년 시만 쓰느라 한들한들하지 못한 삶을 반추한다. 우리의 일상 역시도 늘 분주하고 한들한들과는 거리가 멀다. 한들한들하면 오히려 불안하기마저 하다. 시인은 그냥 지나칠 법한 제자의 작은 얘기 하나도 삶의 통찰로 끌어올린다. 이는 곧 나와 친구의 이야기가 되고, 스스로의 성찰은 물론 상대에 대한 공감과 응원으로 전환된다.
<세상이 한층 아름다워지는 속삭임과 고백>
<한들한들>은 시인이 아주 작고 가벼운 몸짓에서 시작되는 세상의 고요하고 미세한 모습을 풀잎을 닦듯 호호 불고, 가지런히 만져 세상에 내놓는 시편들이다. 나태주 시인이 한들한들 혹은 흔들흔들한 자연과 사람, 나와 세상의 몸짓에서 건져낸 소복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는 것이다. 그 시 앞에 우리는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문득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당신한테 꽃인 줄 알았더니/당신이 내게 오히려 꽃이었군요.”
이 작은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한층 아름다워 보이고 상처와도 마주할 힘과 용기를 얻는다. 작은 사랑이 모여 시내가 되고 강이 되어 흐르는 것처럼, 작은 몸짓이지만 함께 가는 이에게 전해야 하는 속삭임과 고백, <한들한들>이 세상에 나온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