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떨어져 흐릿한 안개 속을 헤매다가, 자신도 모르게, 습관처럼 자주 가던 곳을 찾을 때가 있다. 낯익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낯익지 않은 그 장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득하리만치 멀고도 먼 흐릿한 기억의 숨결 속에 한결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던 그리운 지난날의 눈빛이 자신을 그곳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눈빛은 지금도 자신의 마음 한쪽을 가득히 채워 메우고 있다는 것을.
눈 감고 있던 의식이 다시 나를 깨운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그 어떤 것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한 것인지 알 길이 없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생각을 되뇌어 봐도 그 답은 방안을 밝히는 환한 불빛처럼 명쾌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그리워하던 그 모든 것과 닮은 주위의 여러 사물이 차츰차츰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내가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전에 이미 낯익은 풍광에 사로잡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바람에 이는 버들잎 소리가 내려앉은 길가, 구름 무리 사이로 떠가는 풀 내음, 부들이 늘어선 늪지 주변에서 들려오는 물잠자리 소리, 전나무 숲 뒤로 보이는 푸른빛의 호수,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작은 딱새의 노랫소리, 별빛을 머금은 해오라기의 푸른 눈동자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것들이 순식간에 자신을 둘러싸 버리고, 어느 사이엔가 그 풍경들 속으로 빠져들며 그 안에서 또 다른 자신을 보게 된다.
`너는 눈꽃 사랑이야 눈빛 사랑이야 눈물 사랑이야` 시집의 시들은 이런 순수하고도 따스한 주변의 모습들을 그냥 그 한순간에만 느끼곤 다른 곳으로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 잘 간직해야 하고, 그와 더불어 지난날의 아련했던 시간의 물결 속에서 스며 나온 수많은 마음의 빛깔을 자신 안에 투영시켜 더 포근히 감싸야 한다고 노래하고 있으며, 그 다채롭고도 꿈결 같은 심상 속에서 형화처럼 반짝이는 내면의 불빛을 차곡차곡 가슴속에 담는 것이야말로 자신만의 온전한 사랑의 서정이라는 것을 여러 다양한 시를 통해 진정성 있게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