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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서

오륜서

  • 미야모토무사시
  • |
  • 잇북(it book)
  • |
  • 2019-03-15 출간
  • |
  • 176페이지
  • |
  • 128 X 188 mm
  • |
  • ISBN 979118537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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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전 세계 CEO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동서고금 최고의 성공전략서
미야모토 무사시의 《오륜서》는 손무의 《손자병법》,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함께 세계 3대 병법서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일본 정신의 근원을 이룬 최초의 책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그러나 병법서를 집필했다고 해서 무사시를 손무나 오자서와 같은 병법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일본에서의 병법이란 무구 즉, 병기를 다루는 기술을 뜻한다. 따라서 무사시를 병법가가 아닌 무예가, 검술가로 봄이 마땅하다 하겠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병법과 같은 뜻으로 일본에서는 군략軍略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무라이侍(무사)의 나라 일본에서 수많은 사무라이 중 첫째로 꼽히고 있다. 스스로 밝히길 젊은 시절 60여 차례의 결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고 하니 그 평가가 심하게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은 아닌 듯하다.
《오륜서》는 그런 무사시가 자신이 세운 니텐이치류二天一流(소위 이도류)를 세상에 알리고자, 후세에 남기고자, 나이 예순이 되어 집필하기 시작한 책이다. 말년에 몸을 의탁하게 된 호소카와 다다토시細川忠利에게 자신의 니텐이치류를 정리한 〈병법 35개조〉를 바쳤는데, 《오륜서》는 이 〈병법 35개조〉를 근간으로 하여 살을 덧붙여서 집필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병법 35개조〉의 개정·증보판이 바로 《오륜서》라 할 수 있겠다.
《오륜서》에는 단순히 싸우는 기술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전략과 전술을 비롯해 승부에 임해서 개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상대를 대하고 요리하는 요령, 어떠한 승부에서도 이기기 위한 평소의 노력과 자세, 위기에 몰렸을 때의 대처법 등등 승리(성공)를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60여 차례의 결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일본 최강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
옛날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미야모토 무사시의 출생과 관련된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미야모토 무사시가 집필한 《오륜서》를 통해 출생년도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오륜서》의 서문에서 1643년에 나이 예순이 되었다고 했다. 이를 역산하면 1584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사시의 출생지 또한 확실하지 않다. 일본에서는 대중적으로 워낙 유명한 인물이라 미야모토 무사시의 출생지라고 주장하는 곳이 여럿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오카야마 현岡山縣 오하라초大原町, 효고 현兵庫縣 다이시초太子町와 가코가와 시加古川市 정도가 유력하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어려서는 시치노스케, 도모지, 다케조 등으로 불렸고, 아버지는 짓테十手의 달인이라 알려진 신멘 무니사이新免無二齋이다.
무사시는 아버지에게 짓테 술을 배우고 어려서부터 병법에 많은 관심을 보이다 열세 살 때 첫 결투를 벌였다. 상대는 신토류의 검객 아리마 기헤에로 그에게 승리하고, 열여섯 살 때는 다지마의 강력한 검객 아키야마 아무개와 결투를 벌여 역시 멋지게 승리를 거두었다.
열일곱 살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의 패권을 차지하고 에도江? 막부幕府 정권을 세우는 기반이 된 세키가하라?ヶ原 전투에 참전했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세키가하라 전투’로부터 4년이 지난 1604년에는 교토로 가서 검술의 명문 집안인 요시오카 일문의 당주黨主 요시오카 세이주로吉岡淸十郞와 그의 동생 덴시치로傳七郞와의 결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아시카가 막부足利幕府의 ‘쇼군 사범將軍師範’을 지낸 요시오카 일문을 단신으로 초토화시키며 사람들 사이에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리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각 유파의 고수들과 결투를 벌였지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검술 유파인 엔메이류圓明流를 창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1612년 4월 13일, 마침내 미야모토 무사시의 최대 숙적인 사사키 고지로佐佐木小次郞와의 전설적인 ‘간류지마巖流島 결투’가 벌어진다. ‘간류지마 결투’에서 무사시는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늦게 나타나 고지로를 초조하게 만들어 심리적 우위를 점하였다.
여기에서 무사시는 고지로의 트레이드마크인 1미터 5센티미터의 장검長劍 모노호시자오物干竿에 맞서 배의 노를 깎아 만든 목검으로 이겼다고 한다. 무사시와 마찬가지로 이때까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고지로는 무사시의 일격에 첫 패배이자 마지막 패배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그런데 무사시는 ‘간류지마 결투’ 이후 다른 유파와의 검술시합은 일체 하지 않았다.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의 마지막 장면이 ‘간류지마 결투’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무사시는 1614년 ‘오사카 겨울 전투’, 1615년 ‘오사카 여름 전투’ 등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추종 세력을 소탕하는 전투에 여러 차례 참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도쿠가와 편이었는지, 도요토미 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오사카 여름 전투’ 이후에는 각지를 돌아다녔다는데 에도江戶에서는 도장을 열었다고도 한다. 나중에 무사시의 양자가 되는 이오리伊織를 만나게 된 것이 이때다.
1637년, 규슈의 시마바라島原에서 아마쿠사 시로天草四郞가 주도한 농민과 기독교도에 의한 반란이 일어났다. ‘시마바라의 난’이다. 마침 규슈의 고쿠라小倉에 있던 무사시도 진압군에 가담했으나 별다른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다리 부상만 입고 말았다.
1640년에는 병법을 좋아하고 무武를 숭상하는 인물인 구마모토熊本의 번주藩主 호소카와 다다토시細川忠利의 초청을 받아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 이듬해 평생 동안 닦아온 병법 니텐이치류의 진수를 기록한 〈병법 35개조〉를 다다토시에게 바쳤다.
무사시는 일개 검객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병법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경제적 이상을 다다토시를 통해 만인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실천해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믿었던 다다토시가 불행하게도 56세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죽자 실의에 빠진 무사시는 모든 세속적인 야심을 버리고 구마모토의 교외에 있는 긴푸 산金峰山의 레이간도靈巖洞 동굴에 들어가 좌선 및 저술 활동에 몰두하였다.
《오륜서》는 이 레이간도 동굴에서 1643년 10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1945년에 집필을 마쳤다. 그리고 1645년 6월 13일, 지바 성의 자택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였다. 향년 62세.
죽기 며칠 전에는 《오륜서》와 함께 〈독행도〉를 제자인 데라오 마고노조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목차


땅의 권_13
서문/병법의 길이라는 것/병법의 길을 목수에 비유한 까닭/병법의 길/이 병법서가 다섯 권으로 되어 있는 이유/나의 병법을 ‘니토류’라 명명한 이유/병법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병법에서 무기의 효용을 안다는 것/병법의 박자
물의 권_47
병법에서의 마음가짐/전투에 임하는 자세/전투 시의 눈매/다치 잡는 법/발 사용법/다섯 방향 겨눔 자세/‘다치의 길’이라는 것/다섯 가지 겨눔 자세 중 첫 번째 자세, 중단/두 번째 자세, 상단/세 번째 자세, 하단/네 번째 자세, 왼쪽 옆구리 자세/다섯 번째 자세, 오른쪽 옆구리 자세/자세가 있으면서도 자세가 없다는 것의 교훈/한 박자 치기/이중 박자/무념무상 치기/흐르는 물 치기/가장자리 치기/벼락 치기/단풍잎 치기/다치로 변하는 몸/치기와 부딪치기/짧은 팔 원숭이의 몸/옻과 아교의 몸/키 대보기/끈기 있게 버티기/몸으로 부딪치기/세 가지 받기/안면 찌르기/가슴 찌르기/기합 넣기/맞받기/다적의 정도/되받아치기의 이점/한 번의 타격/직통直通의 정도
불의 권_93
장소에 따라/선수先手를 치는 세 가지 방법/베개 누르기/도 넘기/판세 읽기/검 짓밟기/무너지는 순간을 놓치지 말라/적의 입장 되기/네 개의 손 풀기/그림자 움직이기/그림자 누르기/옮기기/약 올리기/위협하기/얽히기/모서리 치기/갈팡질팡하게 하기/세 가지 목소리/혼돈 일으키기/쳐부수기/산과 바다의 교차/뿌리째 뽑기/새로워지기/쥐의 머리, 소의 목/장졸將卒 알기/칼자루 놓기/바위 같은 몸
바람의 권_131
다른 유파에서 길이가 긴 다치를 선호하는 이유/다른 유파에서 말하는 강한 다치/다른 유파에서 짧은 다치를 사용하는 것/다른 유파에 다치의 기술이 많다는 것/다른 유파에서 다치의 자세를 이용하는 것/다른 유파에서 주목한다는 것/다른 유파에서 발을 움직이는 방법/다른 병법에서 빠른 것을 중시하는 태도/다른 유파의 기본과 비법
공의 권_155
미야모토 무사시와 《오륜서》_159
미야모토 무사시의 생애/독행도/예술가 미야모토 무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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