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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알기

대한민국 임시정부 바로알기

  • 이봉원
  • |
  • 정인출판사
  • |
  • 2010-04-08 출간
  • |
  • 184페이지
  • |
  • 176 X 248 X 20 mm /480g
  • |
  • ISBN 9788994273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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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나라 밖 중국에서 27년 간 존재하고 분투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그 기간 동안 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임시정부를 모독하는 건‘8?15 건국절’만이 아니다,
정부는 잘못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바로잡아라.”

■ 추천사

본서는 임시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다루었고 평가한다. 우선 관련 사진의 가짓수에 놀라고, 사진의 치밀한 구성에 감탄한다. 본서에 수록된 3백여 장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27년의 임시정부사, 아니 치열했던 독립운동사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는다. (광복회 회장 김영일)

오랫동안 임시정부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저자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은 읽고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해설자의 내레이션과 체험자의 증언을 함께 엮어 나가는 다큐멘터리 기법을 써서, 보는 이들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으며, 읽고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이제껏 보지 못한 임시정부 관련 귀중 자료들도 다수 있어 임시정부에 관심을 가진 이에겐 ‘발견’ 의 기쁨을 또한 안긴다.
(광복회 회장 김영일)

저자는 여러 해 동안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을 여행하며 기록영화까지 제작하는 열성을 가진 분이다. 금번 출간되는 이 책이 우리 국민이 특히 역사교사와 학생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해하고 항일 투쟁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김자동)

최근 일부 친일 보수세력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잘못된 사관을 저자는 각종 실증 자료를 통해 여지없이 분쇄하였고, 더불어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그 가족들이 보여 준 숭고한 희생정신을 감동 깊게 보여 줬다.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 알기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답

우리나라 국호인 ‘대한민국’은 어디서 따 왔나?

→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의 국호는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사용한 국호를 그대로 따 온 것이고, 제헌 헌법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 헌법이 뿌리가 되었다.
따라서 ‘대한제국’(大韓帝國,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존속한 조선 왕조의 국호)에서 따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 ‘한’은 한자 ‘韓’으로 적고 있지만, 본래 순 우리말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왜 탄핵됐나?

→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돼 임시정부의 진용이 구성되면서, 초대 국무총리에 이승만, 내무총장에 안창호가 선출됐다. 그러나 이승만은 상해에 오지 않고 미국에서 직제에 없는 대통령 행세를 했다. 그래서 수립 초기 임시정부는 어쩔 수 없이 부재 중인 국무총리를 대신해서 상하이에 있던 안창호가 한동안 이끌었다.
그런 중에 이승만은 그 해 9월에 바뀐 임시헌법에 따라 자신의 뜻대로 임시 대통령이 됐고, 이듬해인 1920년 12월에 상하이로 왔다. 그러나 그가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한국에 대한 (국제연맹에 의한) 위임통치 청원 편지(1919. 2.)로 인해, 신채호 등 여러 사람한테서 심한 질책과 공격을 받고는, 1921년 5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마침내 1925년 3월에 이승만은 임시 대통령직에서 탄핵됐다.

【참고 자료】1919년 8월,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안창호와 워싱턴 구미위원부 이승만 사이에 오간 두 통의 전문 내용 <1919. 8. 25. 상하이에서>

구미위원부 이승만 각하;
“초기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국무총리 제도이고, 한성정부는 집정관 총재 제도이며, 어느 정부에나 대통령 직명이 없으므로, 각하는 대통령이 아닙니다. 지금은 각하가 집정관 총재 직명을 가지고 정부를 대표하실 것이요,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 대통령 행사를 하시면 헌법 위반이며 정부를 통일하려던 신조를 배반하는 것이니, 대통령 행사를 하지 마시오.”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대리 안 창호

【답장】<1919. 8. 26. 워싱턴에서>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안창호 씨;
“우리가 정부 승인을 얻으려고 전력하는데, 내가 대통령 명의로 각국에 국서를 보냈고 대통령 명의로 한국 사정을 발표한 까닭에, 지금 대통령 명칭을 변경하지 못하겠소. 만일 우리끼리 떠들어서 행동이 일치하지 못한 소문이 세상에 전파되면 독립운동에 큰 방해가 있을 것이며, 그 책임이 당신들한테 돌아갈 것이니, 떠들지 마시오.”
― 워싱턴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27년 내내 상하이에만 있었나?

→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정부가 처음 수립된 1919년 4월부터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 의거를 벌인 1932년 4월까지 13년 동안만 상하이에 있었다. 그런데 윤 의사 의거로 큰 타격을 받은 일본의 군경이 프랑스 조계지까지 들어와 마구잡이로 한인들을 잡아가는 바람에, 임시정부는 급히 항쩌우로 옮길 수밖에 없었고, 요인과 가족들 역시 항쩌우나 쟈싱(嘉興) 같은 인근 도시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리고 5년 뒤인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터지고 일본군대가 중국 국민당정부의 수도인 난징을 공격하자, 임시정부와 요인 그리고 이들 가족 백 수십 명은 본격적인 피난 길에 오른다. 그러나 임시정부와 대가족은 중국 땅 어디에서도 안전할 수가 없었다. 내륙으로 피난해 잠시 머물라치면 곧 이어 일본군대가 그 곳까지 쳐들어오고, 그러면 다시 안전한 다른 도시로 급히 이동해야만 했다. 이처럼 중국 남부 여러 도시를 전전하는 힘겨운 유랑생활은, 일본군의 육상 진입이 거의 불가능한 내륙 천혜의 요새 도시, 충칭(난징을 탈출한 중국 국민당정부가 전시 수도로 삼은 곳)으로 들어가 중국 국민당정부 곁에 머물기까지 3년이나 계속 됐다.
<임시정부의 이동 순서>
상하이(上海상해 1919. 4.)→항쩌우(杭州항주 1932. 5.)→쩐쟝(鎭江진강 1935. 11.)→창사(長沙장사 1937. 11.)→광쩌우(廣州광주 1938. 7.)→류쩌우(柳州유주 1938. 11.)→치쟝(?江기강 1939. 5.)→충칭(重慶중경 1940. 9.)→서울(1945. 11.)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한 의미는 무엇인가?

→ 나라 안팎의 수많은 학자가 그 존재 의미를 여러 가지로 갈파하고 있지만, 대만국립정치대학의 후춘혜 교수가 한 다음의 말이, 가장 짧으면서도 핵심을 짚은 그래서 우리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존재했던 의미가 아닐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국에서 27년 동안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 업적에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큰 의미는, 대한 민족은 어떠한 어려움에도 꿋꿋이 견디어 나가는 불요불굴의 정신과 일본 제국주의에 결단코 투항하지 않는다는 자주독립의 정신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나라 밖 중국에서 27년 간 존재하고 분투했다는 사실은, 일본이 그 기간 동안 한국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세계 식민지 국가들은 모두 독립운동을 벌였다. 그 목표는 자주국가, 근대국가를 세우는 것이었다. 우리도 독립운동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를 세웠고, 이를 운영할 정부(임시정부)와 의회(임시의정원)를 조직하였다. 27년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정부 조직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식민지 해방 투쟁을 벌인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 지은이의 말

대한민국은 1919년 중국 상하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에서 ‘대한민국’이란 국호와 ‘민주공화제’란 정체를 모두 따 왔다. 그런데 우리 국민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불행히도, 현실은 알고 있는 사람보단 모르고 있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책임은 일반 국민한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는 기득권 세력이 그런 헌법 정신을 외면해 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 전문적인 연구서나 대학 교재용 서적이 급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비록 상식 수준의 지식일지라도, 알기 쉽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전달하자는 목적에서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한 작업을 십여 년에 걸쳐 해 왔다. 가장 먼저 백범 김구에 대한 텔레비전 드라마 16부작을 집필해 방송했고,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3부작을 제작해 방송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때 분실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새를 소재로 해서 쓴 장편소설 ‘국새 1,2’를 출간했다.

오로지 이러한 작업들만을 위해 내가 중국 대륙을 여행한 기간은 모두 네 번에 걸쳐 85일에 이른다. 현지 유적지들을 조사하고 촬영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그리고 이들 작업을 위해 녹화 인터뷰한 관련 인사만도 50여 명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관련 유적지 여러 곳을 내가 처음 발견하는 감격도 경험했고, 귀중한 자료들을 찾아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보람도 거뒀다. 이 책자에는 그러한 사진과 자료 들이 모두 실려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일제 침략자와 부왜역적들에 의한 국권 상실의 역사와 그에 대항해 일어난 한민족의 독립운동사로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그 독립운동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이 근간이 돼야 한다.

이와 같은 취지와 배경에서, 나는 그간 내가 쌓은 경험을 토대로, 이번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한 내 마지막 작업이라 여기고, 이 책을 썼다.
우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표를 넣었고, 그 다음에 임시정부와 관련해서 일반인이 가장 궁금히 여길 만한 것들을 추려, 알기 쉽게, 임시정부 27년의 활동을 문답 형식으로 소개했고, 본문으로, 중국 대륙을 떠돈 임시정부 27년의 역사를 3백여 장의 사진과 20장의 삽화를 넣어 현장감 있게 소개했다. 그 밖에, 임시정부의 국새와 문헌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그 실종 수수께끼의 전말과 임시정부에서 일했던 독립운동가 열여덟 분을 골라 그분들이 남긴 유언들, 백범의 건국 이상이 담긴 ‘나의 소원’ 그리고 내가 조사한 중국 내 임시정부 사적지 실태 등을 부록으로 붙였다.

이 책이 특히 우리 청소년들과 역사 교사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싶다. 한 세기 전 나라가 망했을 때, 누가, 망한 나라를 되살리겠다고 어떻게 애를 썼으며, 그러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어떻게 희생했는지를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목차


1. 주요 사진
2. 추천사
- 광복회 회장 김영일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회장 김자동
3. 책 앞에 (지은이)
4.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련 연표
5. 알기 쉬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답
6. 자존과 투쟁 27년 (다큐멘터리)
- 부록 -
7. 대한민국 임시정부 문헌과 국새 분실 전말기
8.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가 유언
9. 백범의 ‘나의 소원’
10.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 실태 조사
11. [긴급 제언]
정부는 잘못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를 바로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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