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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

  • 채웅석
  • |
  • 혜안
  • |
  • 2019-01-30 출간
  • |
  • 379페이지
  • |
  • 160 X 232 X 30 mm /686g
  • |
  • ISBN 9788984946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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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2018년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많은 역사학회와 박물관 등에서 각종 기념학술발표회나 유물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사 연구?교육에서 그동안 존재감이 미미했던 고려시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더욱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및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이 이루어짐으로써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 전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이대로 평화?협력관계가 발전된다면 고려 역사 연구에도 매우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이다. 고려의 수도 개경을 비롯하여 북한 땅에 있는 많은 유적들은 물론 비무장지대 안에 산재한 유적들에 대한 공동 조사?발굴 및 연구의 희망이 현실화 될 수 있다.
고려시대사 연구는 1980년대까지 사회구성체적 성격이나 지배층의 성격 등을 둘러싸고 활발하게 논쟁이 이루어진 이후 개별적이고 세분화된 연구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가 21세기에 새로운 역사적 전환을 맞이하여 거시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고려사회를 바라보는 연구가 매우 절실해졌다. 가톨릭대학교 고려다원사회연구소에서는 그런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였고, 2014년 11월부터 3년에 걸쳐 ‘고려시대 역사?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이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물 중 세 번째가 이 ?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이다.

필자들에 따르면, 10~12세기 동아시아에서는 일원적인 패권국이 등장하지 못하고 다중심적 상황에서 세력 균형을 유지하였다. 고려가 안보 목적으로 거란 및 금과 맺은 조공?책봉관계는 일방적인 지배?종속 관계가 아니라 상호 인정하고 예측이 가능한 외교방식이었으며, 이후 교류가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다중심적 국제질서 속에서 고려와 송, 일본 등은 외교와 문물 교류를 분리해서 취급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특히 상인들이 공식외교관계에 상관없이 활발하게 교역활동을 하였고 그런 상황에서 고려는 거란?금에 안보 목적으로 사대외교를 하더라도 경제?문화 등의 측면에서 국제관계를 다원적으로 운영하였다. 송과는 외교가 중단된 시기에도 경제?문화적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다원적?개방적 국제관계는 고려문화의 성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첫째, 동아시아세계에서 패권을 휘두르는 절대 강국이 없는 가운데 주체적이고 활발한 문화 수용이 용이하였다. 성종대의 경우에 화풍을 추구한 나머지 연등회?팔관회 등을 비야한 풍습이라고 폐지하는 등 중국문화에 경도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성종 자신을 짐(朕)이라고 부르고 3성 6부?중추원 등 황제국의 격에 해당하는 정치제도를 시행한 것 등을 보면 주체적으로 그 문화를 수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 예로, 중국의 청자제조기술을 받아들이면서 순청자?상감청자 등 고유한 양상으로 발전시켰고, 송의 의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향약학을 발전시켰다. 또한 고려는 외교, 유학, 교역, 이주와 거류 등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나라?지역들과 연결되어 물자?정보?기술 등을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특히 송과의 교류가 돋보였다. 거란?여진과는 문물 교류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그만 못하였지만, 외교관계가 열린 가운데 그 문화와 접촉하였다. 거란과 여진은 자기 문화 기반에서 중국문화를 수용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고, 고려의 불교문화, 도자기와 금속공예, 철제 가위 등에서 그 영향을 받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외국인들의 거류와 귀화를 적극적으로 허용하여 그들의 문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한 점도 돋보였다. 송의 문사?의사?악사?화소공?점술가 등이 고려에 와서 활동하고 일부는 귀화하였다. 개경에 거주하던 중국인들이 수백 명이었고, 고려는 그들의 재능을 몰래 시험하여 벼슬을 권유하거나 종신토록 머물게 하였다. 거란과 여진의 포로와 투화인들도 상당히 많았으며 장인들이 포함되었다. 그들은 기술과 노동력을 제공하여 고려의 사회적 분업의 확장과 심화에 기여하였다. 그렇게 다양한 외국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 가능하였던 배경에는 해동천하라는 확대된 경계의식이 작용하였다.
둘째, 교류가 개방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진 가운데 문화의 다원성이 부각되었다. 유교이념과 그에 수반한 문화는 초기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인정되었다. 왕건의 훈요10조에서부터 ‘오래전부터 문물 예악의 제도를 모두 준수해왔다’고 밝혔다. 이후 중국왕조와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유교문화의 새로운 경향에 관심을 갖고 수용하려 하였다. 고려는 송 유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하여 거의 동시적으로 알았고 또 이해의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였다. 유학과 함께 불교?도교 등의 보편성도 인정하였다. 그에 따라 유학을 유일한 사회 지도이념으로 삼지 않았다. 왕건도 유학?불교?풍수지리사상 등을 지도이념으로 제시하였다. 고려중기에도 예종.의종이 서경에 행차하여 국정 쇄신을 밝히면서 민을 보살피고 형벌과 출척을 잘 해야 한다는 유교 정치이념을 강조하는 한편, 음양(陰陽)에 순응하여 받들고, 불교를 보호하고 존숭하며, 선풍(仙風)과 사선(四仙)의 자취를 준수하고 영광을 더하라고 지시하였다. 문화 수용에 개방적이고 다원성을 인정하였다고 하여 극단적인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대한 것은 아니었다. 상대주의가 지나치면 모든 문화요소들을 긍정하여 개혁에 장애가 될 수 있었다. 예컨대 고려초기 집권적 지배체제 정비가 시급하였을 때는 유교 이념?문화와 불교 법안종에 주목하여 수용하였으며, 고려중기 문벌사회의 개혁이 필요했을 때는 북송 신유학과 도교에 주목하고 또 천태종이나 간화선 등을 수용하여 해결하려고 하였다.
셋째, 문화에 대한 보편주의적 관점과 개별주의적?공동체주의적 관점 사이에 긴장을 유지하였다. 유교문화를 선진문화로 받아들여서 사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한편, 중국과는 토성과 인성이 상이하고 독자적인 전통을 지닌 문명국이라는 인식이 그에 못지않게 강하였다. 그리고 화이론의 관점을 지지하더라도 이적(夷狄)에 대해서는 배타성과 포용성 중 어느 쪽으로 대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관료들 간에 견해 차이가 있었다. 이적을 어떤 입장으로 대하든지 간에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는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아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풍조를 단적(丹狄)의 풍속이라고 간주하여 금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문화에 대한 관점의 차이는 성종대 화풍과 토풍을 둘러싼 논의, 인종대 유교정치론과 풍수도참적 혁신론 사이의 갈등, 고려전기 내내 투화여진에 대한 대우를 둘러싸고 이어진 논쟁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 대립?갈등으로 번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런 긴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외래 문물을 수용하여 자기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14세기 성리학 수용은 고려후기 사람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무엇보다도 성리학은 자신을 정학(正學)으로 하고 불교와 도교 등 성리학 이외의 사상과 종교를 이단으로 보았기 때문에 성리학은 다원성보다는 일원성을 추구하였다. 성리학은 정치적으로는 왕권보다는 신권위주의 정치운영을 추구한다. 만약 성리학이 추구하는 질서가 관철된다면 다원성과 통합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는 내부적 변화가 불가피하게 된다. 더욱이 수용 초기의 성리학은 이기론과 같은 철학적 이론보다는 실천 위주의 사회사상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내면화가 진행되면 풍속과 제도에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이 컸다.
성리학의 수용은 고려사회의 문화적 지향성 또한 변화시켰다. 성리학은 문화적 개별성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한다. 때문에 14세기 전반기에는 중국과의 구분이나 역사적.문화적 독립성보다는 원 제국과의 문화적 일치를 지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리학자들은 고려의 문화적 전통에 대해 이중적 입장을 취하였다. 고려의 전통은 비루하다고 여겨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반대로 입성론 등 고려의 국가질서를 저해하고 원 제국과의 극단적 일치를 지향하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저항하였다 성리학자들은 원 제국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 보편성과 고려의 전통에 해당하는 개별성 사이의 절충을 지향하였으나, 문화적 보편성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당위의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전반적으로 살펴볼 때, 고려사회의 다원성은 통합성을 지향하는 왕권을 통해 유지되었으며, 유능한 왕권은 다원적 사회구조 유지에 중심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점지배와 계서적 구조와 지배형태를 통해 문벌귀족과 지방세력을 통제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문제는 향후의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12세기 이후 문벌귀족간의 역학관계 변화와 주현제의 모순 해결이 다르지 못하였다는 것은 결국 다원성과 통합성의 부조화로 볼 수 있다.
고려후기 성리학이 수용되고 원 제국에 의해 중국이 통일되면서 대외관계는 물론 고려사회의 다원성과 통합성은 변화가 불가피하였다. 그렇지만, 다원성을 중심으로 하는 고려적 질서와 사고는 조선건국 이후 15세기까지도 일정 정도 유지되었다. 이는 고려적 전통의 문화적 관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리학이 내재화하는 데 2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게 되면서 나타나는 매우 느린 속도의 의식적, 제도적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신라 하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다원적 사상지형은 이후 고려사회의 성립과 다원성과 통합성의 구조화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성리학 수용 이후까지 한동안 문화적 지향과 국가질서에도 일정정도의 영향은 불가피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앞으로 고려시대 역사?문화의 연구 지평을 넓히는 데 작으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오늘날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국제환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사담론의 형성에 밑거름이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발간사|고려시대 역사.문화의 다원성과 통합성, 개방성을 찾아서

총론1 고려전기의 다원적 국제관계와 문화인식|채웅석
1. 다원적 국제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2. 국제질서의 다중심성과 계서성
3. 국제관계의 다양성과 규율
4. 문화의 보편성과 개별성 인식
5. 맺음말:다원적.개방적 국제관계와 고려문화의 성격

총론2 고려시대 사회 성격론과 다원적 성격의 구조적 이해|최봉준
1. 머리말
2. 고려사회 성격론에 대한 비판적 이해와 새로운 가능성
3. 다원적 사상지형과 국왕 중심의 통합 지향
4. 이중적 자아인식과 다원적 대외관계
5. 고려후기 정치사회적 모순과 사회적 다원성의 변화
6. 맺음말

제1부 국제적 개방성
제1장 고려전기 이방인.귀화인의 입국과 해동천하|한정수
1. 머리말
2. 사신과 교류
3. 상인과 교역
4. 내투와 정착
5. 혜화(惠和)와 해동천하
6. 맺음말
제2장 고려 국상(國喪)에 대한 거란?금?송의 조문사행(弔問使行) 양상과 다층적 국제관계|이승민
1. 머리말
2. 고려의 고애사(告哀使) 파견 양상과 성격
3. 조문사행(弔問使行)의 다층적 체계
4. 맺음말
제3장 고려후기 도기통형호에 보이는 원의 영향|한혜선
1. 머리말
2. 고려후기 원과의 관계와 도자기 교류
3. 한반도 출토 원대 도기통형호의 현황과 유입배경
4. 고려후기 관사명(官司銘) 도기통형호 제작과 그 의미
5. 맺음말

제2부 보편성과 자기인식
제1장 고려전기 역사계승의식과 이중적 자아인식|최봉준
1. 머리말
2. 역사계승의식과 국조 인식의 성격
3. 이중적 자아인식의 형성과 변화
4. 맺음말
제2장 고려전기의 북방 영토의식과 이민족 인식|신안식
1. 머리말
2. 북방 영토의식과 ‘천하관(天下觀)’
3. ‘고려장성(高麗長城)’과 이민족 인식
4. 맺음말
제3장 고려시대 금속제 기물 및 기와의 ‘연호’명 검토-대중국 ‘연호’의 시행과 고려의 다원적 국제관계-|홍영의
1. 머리말
2. 중국 연호명의 기재 유형과 양상
3. 대중국 ‘연호’의 사용과 그 배경
4. 맺음말

제3부 국가의례의 다원성
제1장 고려시기 지고신(至高神)의 존재와 신격(神格)의 다층위성|박종기
1. 머리말
2. 지고신과 다원사회론
3. 이규보 제문에 나타난 제신격(諸神格)
4. 신격의 다층위성
5. 맺음말
제2장 고려전기 연등회.팔관회의 기능과 의례적 특징|한준수
1. 머리말
2. 신라의 불교의례와 궁예 정권의 팔관회
3. 태조의 ?훈요?와 양회(兩會)의 국가의례화
4. 현종의 양회 복설(復設)과 개방적 국가의례의 전개
5. 맺음말
학술연구발표회 종합토론|개방성과 정체성-고려의 국제적 개방성과 자기인식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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