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시집 <옹달샘>의 작품을 감상하며, ‘깨달음과 그리움의 정서적 소통’에 놀랍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시인의 감각과 감수성이 무디어지는 것이 일반적 경향인데, 이위근 시인에게는 이 말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새로워지고, 이로 말미암아 그의 작품에서는 ‘정서적 사람냄새’가 자연스럽게 다가섭니다. 이와 함께 단형의 시에 깨달음의 경이(驚異)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이위근 시인의 ‘그리움’은 막연한 대상을 통해서도 발현되지만, 구체적 대상을 노래했을 때 더욱 큰 감동을 생성합니다. 「할머니의 초상」에서 그는 <섣달그믐 날이면/ 대낮 같은 밤이> 좋았다며, <들기름 종지마다/ 가는 한 해의 고마움을 담아> 불을 환히 밝히시던 할머니를 회상합니다. 그 회상은 <아! 가슴에 찍어 놓은/ 꽃물 같은 자국>에 이르러 시인의 가슴에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평생 교육자로서 ‘빳빳하게 달여 놓은 한복’ 같았던 이위근 시인에게 운명의 신이 시샘을 한 것 같습니다. 불청객 위암이 그의 몸에 다가왔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그의 시혼만은 더욱 밝게 빛나고 있으니, 이는 사람살이의 역설(逆說)이라 하겠습니다. 시 「불청객」에서 그는 <암흑이었다.>로 시작합니다. 이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졌다./ 곤두박이치는 내 영혼/ 찢어지는 시간/ 거스를 수도 없는/ 절대의 영역/ 빨갛게 그어진 선>을 만나지만 태연자약(泰然自若)하자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느끼는 것처럼 <정좌할 수 없는 흔들림> 속에 나날을 보냅니다.>
<이위근 시인은 위암으로 투병하며 산수(傘壽, 80세)를 넘깁니다. 때로는 놀람, 울분, 절망에 휩쓸리기도 하였을 터이지만, 그가 다다른 경지는 평정(平靜)입니다. 작품 「여행」에서 그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세상살이가 어떠했느냐고 물으면 <여행은 아름다웠다>고 밝히겠답니다. <세상에 비굴하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굽이쳐 바다를 이룬 강물처럼/ 해로하며 천수를 다했다>면서 ‘한번뿐인 삶’을 긍정합니다.>
- 리헌석 문학평론가의 ‘발문’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