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판 머리말
이 책을 개정하는 일을 제안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법을 공부하는 여성이기는 하지만 여성을 위한 법을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이었다. 학교로 자리를 옮기기 전 10여 년간 변호사로 일하면서는 스스로를 여성 법조인으로 강조하기보다 법조인으로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평가받고자 애썼고, 법학자가 되어서도 기존의 주류 법학의 논의들을 전제로 공부를 해 왔기 때문에 걱정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 역시 가정과 일 사이에서 덜거덕대며 두 딸을 키우는 워킹맘이기에, 이번 개정 작업은 여성의 눈으로 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공부가 되었음을 고백하여야 하겠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성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인 ‘미투(#metoo)’는 우리 사회 여러 분야를 뒤흔들었고, 문화예술계는 물론, 검찰, 정치권 등 권력층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러한 현실은 여성이나 사회의 약자들을 위하여 진보해 왔다는 우리 법과 제도가 현실에서는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성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는 현상이다. 남녀 대결로 치닫는 젠더 혐오는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 성에 의한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법체계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하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첫걸음으로서 이 책은 여성이 생애주기마다 부딪치는 법률문제를 소개함으로써 성과 관련된 전체적인 법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구체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2011년 이후 관련된 여러 법률이 개정되었고, 간통죄가 위헌으로 결정되는 등 주요한 판례 변경도 있었다. 예를 들어 여성발전기본법은 양성평등기본법으로 법명이 변경되었고, 가족법에서도 이혼 후 단독친권자로 지정된 부모 일방이 사망한 때 타방의 친권이 자동적으로 부활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미성년자의 입양시 법원의 허가를 얻도록 하고, 자녀의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친권을 제한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다. 또한 강간죄는 여성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강간 및 유사강간을 처벌하는 것으로 확대되었고, 혼인한 부부간에도 강간죄가 성립되는 것으로 판례가 변경되었다. 이번 개정판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그간에 나온 새로운 법률과 판례를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이은영 교수님은 40여 년간 법을 여성의 관점에서 비판하고 여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학문적, 사회적 노력을 다하셨다. 개정 작업을 하면서 교수님의 뜻과 명성에 반하지 않고자 노력하였으나, 되돌아보니 부족한 부분도 많고 최근 여성 운동이나 법체계의 변화를 충분히 포함시키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관련 공부가 충분하지 못한 나의 책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신 이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부족한 부분을 충실히 채워나갈 것을 다짐한다.
2019년 2월
장 보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