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성에 기반한 사유의 전복과 서사 지향성
『그리운 나주평야』는 고정국 시조시인이 30여 년 써온 작품 중에 단시조 55편, 연시조 52편, 시조 스토리텔링 5편을 골라 묶은 시조선집이다.
이 시조선집은 198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의 시조 인생 30년을 반추하는 앨범이자 새로운 30년을 위한 중간 결산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일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일만 시간의 법칙’을 ‘시조 일만 계단 내려 걷기’로 승화시킨 고정국 시인의 열정은 등단 30년을 맞이한 이때 더욱 빛나는 가치로 다가온다. 무엇을 하든지 진정성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면 그 방면에서 일가를 이룬다는 사실은 30년 시작(詩作)을 통해 고정국 시인이 실증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 고정국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많다. 저항과 비판, 참회와 성찰, 구체와 실존, 서사와 스토리텔링 등이 그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마디는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치열함이다. 그 치열함은 그의 30년 시조 세계를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철학이다.
‘시적 명상과 철학적 반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시조선집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세 가지 시어는 ‘꽃’과 ‘섬’, 그리고 ‘시’다. 이들은 고정국 시학이 추구하는 궁극의 지향점을 잘 대변한다. ‘꽃’은 완성을 향한 구도자적 이상을 상징하며, ‘섬’은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이면서 차별적인 자아를 상징한다. 그리고 ‘시’는 시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동반자이자 최종 수렴점이다. 이를 자의적으로 연결해보면 ‘시조’라는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홀로 난바다에 떠있는 ‘섬’ 같은 존재가 바로 시인 자신이라는 것이다. ‘꽃’과 ‘섬’, ‘시’라는 키워드로 고정국의 30년 시조미학을 읽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른 땅을 찍지 않는 곡괭이의 본성과도 같은 고정국 시학의 30년 자취는 우리 시대 시조 문학의 한 성과를 매조질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단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