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말하자면 일생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게다가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칠거지악(七去之惡) 때문에 여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에게 매어 지내야만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면서 떳떳하게 이름과 자, 그리고 호까지 지니고 살던 여자가 바로 허초희이다.
그러나 다른 여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그에게는 바로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남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가려내는 행위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죽어간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스스로가 평범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는 이 땅 위에서 겨우 스물일곱 해를 살다 갔지만 그 짧은 세월 속에서도 가장 뛰어났던 여자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간 것이다.
자기의 삶과 갈등을 표현한 것이 바로 《난설헌집》에 실린 211편의 시이다. 난설헌은 죽으면서 자기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렸지만, 아우 허균이 자기가 베껴 놓은 것과 자기의 기억을 더듬어 엮어낸 것이다. 이 시집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출판되었다. 특히 중국에는 《난설헌집》에도 실리지 않은 시들이 그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