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정 고분자 분야를 쉼없이 개척하며 과학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습니다.
최고의 과학자를 꿈꾸며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을 활용해
우리 사회에 과학을 널리 알리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제 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고분자화학은 고무, 합성수지 등 분자량이 1만을 넘는 거대분자인 고분자에 대한 과학분과로서 고분자화합물의 각종 화학반응 및 메커니즘과 이들의 구조, 성질 등을 화학적으로 밝혀내는 학문분야이다.
고려대학교 화학과 진정일 교수는 이 분야에서 탁월한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인물이다. 액정 고분자의 세계적 개척자로 전도성 고분자, 전계발광 고분자 및 DNA의 재료과학 등의 연구에서 420여 편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학문적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2008년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회(IUPAC) 회장으로 선출되어 전 세계 화학계를 이끌었으며, 2016년 미국화학회(ACS) 석학회원(PMSE)으로 추대되었고, 나노과학과 나노기술 발전에 대한 공로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UNESCO 나노과학 메달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또한 『진정일 교수, 시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교수, 소설에게 과학을 묻다』 『진정일 교수의 교실 밖 화학 이야기』 『진정일 교수가 풀어놓는 과학쌈지』를 집필하고, 『과학자는 이렇게 태어난다』를 엮으며 독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과학과 문학, 과학과 사회 등을 주제로 다양한 융합을 시도해왔다.
<진정일 교수의 저작들>
『오늘도 나는 과학을 꿈꾼다』는 진정일 교수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과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과학적 사고와 과학적 생활방식이 스며들기를 소망하는 뜻을 담은 책이다. 한 과학자가 걸어온 삶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과학계로 진출하려는 청소년 후배들에게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의 자세 또한 들려주고 있다.
2019년 올해로 고분자화학 박사학위를 받은 지 50년이 된 진정일 교수는 고분자화학인으로 ‘남이 잘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가면서 얻은 모험심과 보람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영양분들이라고 말한다. 개척자의 외로움도 있었지만,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모르는 길’도 어떻게 밟아가느냐에 따라 한 인간의 생애가 크게 변화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진정일 교수는 지금도 학회에 참석하면 젊은 과학자들과 사이에서 거침없는 질문과 반론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퇴임한 뒤에도 끊임없이 공부를 해오는데, 국내외 학술대회에도 자주 참석해 강연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많이 배우기도 한다. 전 세계 학회들을 다니며 한국 과학계의 위상이나 상황 등은 아직도 갈길이 먼 것 또한 여실히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과학인들이 연구에 더 몰입하는 환경이 갖춰져야 하고, 연구 외적인 업무와 잡무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전한다. 또한 연구자 개인에게는 자신만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깊게 다룰 수 있는 지구력이 요구되며, 사회적으로는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지원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과학계의 위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볼 때 여전히 분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난 40여 년 간 학부생은 4000여 명, 석?박사과정 제자들도 150여 명이나 키운 진정일 교수는 뒤이어 이공계에 진학할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도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평생을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전공)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학(자연과학)계열과 공학계열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고 선택하는 것이 좋으며, 또 이공계열로 진학하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익혀 융합적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밑바탕을 탄탄히 하는 것도 잊지 말고 짚어준다.
60여 년간 몸담았던 대학 연구실을 떠난 지금, 진정일 교수의 강의 대상은 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한편 그들과의 소통을 글을 통해 해보고자 하는 마음도 생겨 글쓰기도 계속하고 있다. 거칠고 취약한 기반 위에서 과학의 뿌리를 내리고 꽃 피우려 혼신의 노력을 다한 한 과학자의 조그만 발자국이 더 큰 발자국을 위한 밑거름이 되길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