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의 길에서 바라본 정서적 체현을 담은 혜강 스님의 시집>
첫 시집 <山山 물물>을 시작으로 선(禪)과 시의 길을 함께 걸어온 혜강 스님의 시집으로 밥북 기획시선 25권이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시집에 90여 편의 시를 실었다. 각 부제인 ‘산산물물’, ‘운’, ‘까마귀’, ‘이 언덕에서’는 자연에서 운명, 개인, 그리움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정서적 체현으로 우리를 이끈다.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산산물물’을 주제로 22편의 시를 실은 1부에서는 산문(山門)에 든 몸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깨달음이 곡조 있는 문체로 표현된다. 2부 ‘운’에서는 바람 같은 운에 명을 맡기고 사는 우리의 운명에 대한 위로가 담겼다. 3부 ‘까마귀’에서는 고통에 대한 진실한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터져 나오며, 4부 ‘이 언덕에서’에는 그리움의 시선을 담아냈다.
그저 초연하고 달관한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의 운명과 삶에 대한 현현한 체험과 한 발짝 떨어진 수평적 시선이 얽혀 만들어지는 행간의 풍미는 책 말미에서 현재 혜강 시인이 수련하는 청련사에 대한 세 편의 시로 마치 다짐하듯 아수라 속 세상을 정리하듯 마무리된다.
<멸하는 것 가운데 빛을 발하는 시를 발견하다>
혜강 시인의 삶은 시와 하나다.
“중생은 빛이다//사공이 멸해도/인연이 다해도//영원한 황홀//중생은 사랑//한 찰나도/겁 겁도//모다가/본래 당신인 것을”(<산산물물 9> 전문)
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쓰여지는 것 중에서 가장 참다운 것들을 추려 시집에 담았다.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한지에 우뚝 찍힌 점 하나로 자신의 말을 대신했다. 어쩌면 산문에 들어섰기에 시의 시선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시의 시선이 있었기에 산문에 들어서게 된 걸지도 모른다. 중생은 그저 탄생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바로 보려 애쓰며, 덜어내야 한다. 그것은 끝나지 않는 작업이다. 그런 까닭에 이 시집의 시들은 그만큼 우리 삶의 현장과 밀접하며, 동시에 정좌의 길로 더 나아가 있다. 이런 시들은 삶의 태도야말로 하나의 시적 생산이며, 시 쓰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점 하나로 대체된 시인의 말이 그 안에서 자라난 90여 편의 시와 어우러져 무엇보다 큰 방점으로 자리를 차지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